"이 대통령 욕할 것 없어요, 국민이 정신 차려야지"
[인터뷰] '5·18 28주년기념행사위원회' 위원장 맡은 지선 스님
▲ 10년 동안 선방을 전전하며 수행에 진력해오던 지선 스님이 5.18항쟁 28주년 행사위원장을 맡으며 간만에 절문 밖을 나섰다. ⓒ 이주빈
80년대와 90년대에 '재야 스님'으로 유명했던 지선 스님이 간만에 절문 밖을 나섰다. '5·18민중항쟁 28주년기념행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6·10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마지못해 받아들인 터였기에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지선 스님은 5·18행사위 위원장을 수락한 까닭에 대해서 "할 사람이 없다고 찾아와서"였다고 가볍게 넘겼지만 "아직도 5·18은 현재진행형"이라면서 의기를 다졌다. 발포명령자도 밝히지 못하는 등 5·18의 진실규명이 아직 제대로 안 됐다는 것이다.
지선 스님은 "5·18도 세계화해야지만 그 전에 전 국민이 5·18정신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은 (5·18진상규명 등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교육자들은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5·18행사가 비슷하다? 진행형이고 미완성이기 때문"
미국 쇠고기 수입 논란 등 최근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지선 스님은 "세상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나"고 통탄했다. 그는 특히 "국민피해 생각해서 이명박 정부가 잘 되면 좋은데 바닷물을 다 먹어봐야 아나"라며 새 정부에 대한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지선 스님은 특히 최근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중·고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과 관련 "대학생들이 중·고등학생들도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현재 전남 장성에 있는 백양사의 유나(사찰의 수행을 총괄하는 큰스님)를 맡고 있는 지선 스님은 "부처님이 오신 참뜻은 양극화 해결을 하려고 오신 것"이라며 "맺힌 것을 먼저 풀어줘야 서로 살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바른 정리를 당부했다.
지선 스님과의 인터뷰는 8일 스님이 기거하고 있는 백양사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지선 스님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바닷물을 다 마셔 봐야 아나"하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 이주빈
- 한동안 바깥활동을 하지 않다가 이번에 5·18 28주년 행사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한 10년 동안 선방(禪房)에서만 살았지. 재야 활동한 15년 동안 중노릇 제대로 못했으니까 중노릇 제대로 해보려고, 허허. 선원에 있으면서 수행자인 내 신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앞에서 하는 일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후원인 역할이나 제대로 해야 겠다고 있는데 할 사람은 이미 다 해버렸고 할 사람이 없다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정을 하는데…. 나는 항상 뒤치닥거리나 해요. 옛날 전민연할 때도 그랬고. 안 해주면 섭섭해 할까봐 맡았어요, 하하하."
- 이번 28주년 기념행사의 큰 방향은 무엇인가요.
"슬로건을 시민공모 했는데 '오월의 희망으로 세상을 보라'가 당선됐어요. 나는 이 말이 아주 좋아요. 오월의 희망이라는 것은 태어날 가치가 있는 것은 다 태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희망차고 푸르른 모든 의미가 이 말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 일각에서는 5·18기념행사가 매년 비슷하고 시민참여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5·18기념행사의 주제가 매년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5·18이 현재 진행형이고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발포명령자도 밝히지 못하는 등 5·18의 진실규명이 아직 안 되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를 아직도 상전으로 모시고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이 있어요. 그 뒤로 들어선 정권이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지만 5·18을 가볍게 대했습니다.
5·18진상규명이랄지 이런 것은 정치권이 나서서 시비를 가려주고, 국민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데 못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5·18에 대해 기피와 나름의 소외감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시민참여가 떨어지고 행사를 위한 행사가 반복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요. 안타깝습니다."
- 5·18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즘 역사와 민족·민중을 말하면 구태의연하고 편협하다고 그러는데 민족이라는 것은 그렇게 편 가르는 뜻이 아니에요. 민족은 민주며 자주고, 평등평화며 공존공영입니다. 남의 민족을 해치치 않고 불이익 주지 않고 자기민족 운명과 똑같이 여기는 것이 민족이에요.
그래서 민족은 내셔널리즘도 아니고, 나치즘도 아니고, 파시즘도 아니에요. 또 동족과 민족은 달라요. 민족은 생명과 운명공동체입니다. 민족은 외세의 지배가 오면 저항하지만 동족은 바로 빌붙어요. 그게 친일파에요. 친일파는 동족·동포는 될지언정 절대 민족은 되지 못합니다.
5·18정신이 무엇입니까. 민족자존을 지키고 민중생존권을 지키고 통일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5·18도 세계화하고 국제화해야지. 그러려면 우선 내부적으로 5·18의 진상과 본질이 가려져서 전 국민이 5·18정신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법과 제도를 만들고, 교육자들은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야 해요. 그런데 안 하더라고요."
"이명박 대통령 욕할 것도 없어요, 찍은 사람이 반성해야지"
-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이명박과 박근혜를 절대 반대했습니다. 포교하러 미국 가서 교민들에게도 말했어요, 두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한 명은 '반공'을 국시로 삼는 군사정권의 딸이고, 한 명은 사업가로서 망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정권 잡아서 다시 개발독재국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돌팔매 맞아가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씨가 되더라고….
한반도 대운하로 온 땅을 파헤치겠다고 하질 않나, 학교자율화 한다고 한바탕 뒤흔들어놓질 않나, 미국 쇠고기를 막 들여오질 않나, 과거청산은 못하겠다고 그러고…. 세상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나. 이것은 필연적인 일이니까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욕할 것도 없어요. 찍은 사람이 반성해야지.
국민피해 생각해서 이명박 정부가 잘 되면 좋은데 바닷물을 다 먹어봐야 아나. 도토리 껍질에 조금만 떠서 마셔봐도 짠 줄 다 아는데. 그 머리에서 나올 거 다 나와버렸으니…."
▲ 지선 스님은 "맺힌 것을 먼저 풀어줘야 서로 잘 살 수 있다"며 과거사에 대한 바른 정리를 당부했다. ⓒ 이주빈
- 그렇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사회는 변화를 계속 추구해야 하고 개혁을 해야 하는데 개혁이 안 되면 혁명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죠. 국민들이 다른 건 몰라도 선거혁명은 해야 하는데 선거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표현하는 거니까 국민들이 잘 선택해서 제대로 된 정부를 확실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생과 청년들이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깨어있어야 하는데 취직걱정에 바쁘고…. 그런데 하나 희망이 있어, 중고등학생들이 촛불시위에 나서더라고. 어떤 사람은 누가 시켜서 그런다고 하는데 5·18, 4·19를 보더라도 그것은 아닌 것 같아요. 대학생들이 중·고등학생들도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지."
- 곧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부처님이 오신 참뜻은 양극화 해결을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조금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은 본래가 양극화입니다. 살고 죽는 생사문제가 양극화의 본질이고, 가진 자와 못가진자, 선과 악, 미와 추, 강대국과 약소국 등 결국에 상대적인 것으로 양극화 되어 있어요.
부처님이 오신 3천년 전 인도나 지금의 한국이 똑같아요. 부처님이 태어난 네팔도 강대국 틈에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4대(미·러·일·중) 강국 틈에서 고통스러운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잖아요. 또 지금의 실직·비정규직·교육문제 등 민중이 고통당하는 것은 3000년 전 인도나 지금 한국이나 마찬가지죠.
해결 방법은 중도와 화쟁사상을 배워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화쟁은 일체가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부처라는 공존과 공생·공영사상입니다. 더불어 잘살려면 해원상생(解寃相生)해야지요. 맺힌 것을 먼저 풀어줘야 서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역사에 맺힌 죽어나간 약자의 마음을 풀어주면서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한국도 수많은 전변과 사변을 겪은 만큼 확실하게 풀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원상생해서 자비한 마음으로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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