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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0대를 자극하지 마라!

등 떠밀어도 집 밖을 안나가던 아이들이 오죽하면 제 발로 나갈까

등록|2008.05.09 12:21 수정|2008.05.09 17:00
청소년에서 촛불 문화제의 주역까지

월드컵도 4.19도 아닌데 10대들이 교복차림으로 거리에 뛰어 나갔다. 그들은 바로 386세대의 자녀들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젊음을 바친 어른 덕에 최루탄 없는 하늘아래 태어난 그들은,  IMF 시기에 부모들이 허리 졸라 맨 비용으로 놀이터 대신 유치원과 학원 차에 실려 다니며 차창밖에 진열된 온갖 첨단 소비재와 거리의 명품 광고의 유혹에 면역성을 키워온 세대이기도 하다.

비보이에 열광하고 MP3를 귀에 꽂고 랩을 흥얼거리며 텔미 율동으로 몸을 풀면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미래를 위해 ‘별보기 운동’을 하는 10대들이, 요즘 밤거리로 뛰쳐나가 정부를 비난하고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른다. 

그들은 미래를 담보로 정체불명의 입시제도 실험실에 살면서 점수와 등수와 시험이라는 세 박자의 숫자놀이를 감수하고 있는 우리의 희망이요, 미래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변덕스런 입시에 대한 강박증 해소는 부모와 교사들보다 컴퓨터 게임과 대중스타라는 실체 없는 가상의 존재들에게서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으며 입시와 취업이라는 암울한 터널을 걷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이 거리로 뛰어 나온 것을 비유하자면, 긴 터널 속의 전등마저 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어쩌면 신뢰할 수 없는 터널에서 칠흑 같은 암흑의 공포와 위기감을 예민하게 예감했기에 본능적으로 뛰쳐나갔는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당장 학교 급식에 오를 음식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악몽 같은 일상이, 그들에게 일생일대의 입시보다 더 다급한 현실이 되다보니, 학생에게 높아 보이기만 하던 학교 담을 문지방처럼 훌쩍 넘어 촛불 문화제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거리로 내 몬 것은 전교조도, 연예인도 아닌 현 정권이 아니고 누군가.

10대 이상은 믿지 마라?

이런 본질을 파악 못한 채 우리나라에 청소년 놀이 문화가 없어서, 혹은 선동하는 세력이 있다는 둥, 거기에 이미 야간 자율학습으로 새벽길을 다니는 것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귀가시간을 종용하는 정부와 교육감과 경찰의 속 보이는 대응에 10대들은 실소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의 메시지를 우경화 해석해서 이미 주눅 들어 버린 20대, 개혁실패로 어눌해진 386세대 그리고 그 이상의 기성세대가 대선과 총선 때 잘못 선택한 대가가, ‘입시’라는 한국에서의 중요한 통과의례를 앞둔 10대의 코앞에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바로 그들에게 직격탄으로 돌아온 불안한 현실에 청소년들은 개탄하고 감히 대통령 탄핵 운운하며 여린 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촛불시위에 나선 10대들은 국정과 국가의 질서에 혼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 문제와 광우병 소 수입 문제에 대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도구적 합리성’의 폐해에 대해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피선거권자라는 원죄없는 조건으로 기성세대를 대신해 솔직하고 절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철없는 어른, 애늙은이 청소년

10대들을 들끓게 한 원인 제공자들에 대한 단상을 떠올려 보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내각은 미국 방문 시 미 상공회의소 주체 연설에서 ‘쇠고기 걸림돌’을 해치웠다고 좋아하고 그들보다 먼저 박수치지 않았던가! 그것이 속 깊은 대통령의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뒷전이었다는 사실에 구차한 토를 달 필요가 없다.

그러니 광우병 쇠고기 협상에서는 한마디로 실용과 성과는 고사하고 한 국가의 정부를 대표하는 기구로서의 정체성을 망각한 굴욕 협상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점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철없는 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 이제까지 정치에 무심해서 거리로 떠밀어도 안 나갈 10대들이 급기야 거리로 나가서 애를 태우고 있다.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발발한 이 상황을 <PD 수첩> 탓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공정택 교육감의 '전교조 종용'설이라는 10대 진단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도리어 10대들에게 조소를 자아내게 한다. 소중한 꿈과 미래를 앞두고 '대학입시'라는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흑색우민과 괴담에 선동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각 수뇌부들은 지금의 10대가 현 정부 내각 세대의 암기식 위주의 수험생이 아니라 하루에 몇 개의 신문 사설을 읽어내고 분석하고 비판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 가는 ‘논술 세대’라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교육감은 철지난 추측 대신 10대들과 직접 대화하라

그러니 그 앞에서 망신살 뻗친 '꼴통'이 안 되려면 명령과 협박 그리고 경고 따위는 집어치우고 구세대 독재자였던 군인 출신의 이미지가 아닌, 유연한 CEO 출신답게 교육감, 경찰청장과 함께 10대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바란다.

따라서 기성 세대로서 가부장적 권위를 벗고 이제까지 겁주고 윽박지르던 10대들에게 새정부답고 어른답게 책임감 있는 사과와 해명을 통해 10대의 반란을 잠재울 용의는 없는지 묻고 싶다.

각 부서의 수뇌부이자 책임자로서 그런 대처가 구차하고 번거롭다면, 10대들의 교육과 광우병에 대한 분노와 반란이 ‘음모’가 아닌 ‘본질’ 그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시인하는 것이 현 정권의 무사한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10대들은 피곤하다. 0교시 부활과 영어에 대한 노이로제 그리고 변덕스런 대입정책으로  꿈 꿀 시간도 부족한데 잠시 나마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급식에 조차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정부의 뇌부구조를 의심하고 있다. 와중에 10대들은 현 정권의 일 거수 일 투족에 까지 개입해야 하는 애늙은이가 어느 새 다 되어 버렸다.

이런 광경을 보고 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현 정부는 교육문제든, 쇠고기 문제든 살아갈 앞날이 많은 구김살 없는 10대들을 부디 자극하지 말기를 학부모로서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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