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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안전 주장하는 '광우병 권위자'가 괴담 진원지?

미 쇠고기에 대한 입장 바뀐 이영순 서울대 교수 "우리가 너무 예민"

등록|2008.05.09 21:12 수정|2008.05.16 16:42

▲ 이영순 서울대 교수 ⓒ 서울대 수의학과 홈페이지

국내에서 광우병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인수공통질병연구소장)의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8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광우병은 5년 내에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며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몇몇 언론에 '광우병 최고 권위자'로 소개되고 있는 그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05년에 "미국에서 연간 44만마리의 소가 광우병 유사 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영순 교수, 2005년 보고서엔 미국산 쇠고기 위험 지적했지만...

이같은 주장은 당시 그가 연구총괄책임자로 정부에 낸 정책용역 보고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 청문회가 열린 지난 7일치 <경향신문>에 공개됐고,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교수는 9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확신한다"면서 "미국 검역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미국의 검역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주는 영상이 잇따라 공개되는 것과 관련해 "진짜로 (불법 도축이)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우리만 예민하다"고 그는 말했다.

3년 전 보고서 때 담았던 자신의 주장을 정면을 뒤집은 것이다.

▲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강기정 통합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15일에 미국산쇠고기 합의문을 고시한다는 정부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005년 1월 당시 농림부에 보고된 '쇠고기 특정위험부위 관리 및 도축검사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영순 교수팀의 보고서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은 연간 44만6000마리가 고위험 우군(High risk cattle population)에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위험 우군'에는 광우병(BSE)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소가 포함되며, 여기엔 ▲중추신경과 관련한 이상 증상으로 도축 금지된 소 ▲원인불명의 증상으로 농장에서 죽은 소 ▲걷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안락사된 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어 보고서는 "44만6000마리 중 원인불명 또는 광우병 관련 의심 증상으로 농장에서 죽은 소가 25만1500마리, 미국 농림부 식품안전검사국(FSIS)의 도축금지 범주에 속하는 소는 19만4200마리, 뇌 이상을 보이는 소는 129마리"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미국 예찰(surveillance, 검역) 프로그램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예찰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광우병 상태를 보증할 수 없고, 진단의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광우병 예찰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했으나, 일본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국에서는 워싱턴 주의 기립불능 소(주저앉는 소, downer)와 텍사스 주의 중추신경상의 의심 있는 소의 취급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는 "미국에서 한 해 44만마리가 광우병 유사 증세를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 아니다"며 "미국이 2004년 6월부터 2006년 8월까지 광우병 고위험소 78만7000 마리를 검사한 결과 2마리를 제외하고 광우병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광우병 유사 증세 소는 광우병 위험소가 아니다?

자신의 보고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 이영순 교수는 9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가 아닌' "정부의 말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사에서는 '광우병 위험소'라고 나와있는데, '광우병 위험소'가 아니라 '고위험군'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소의 뒷다리를 못 쓰는 질병은 59가지나 있다"며 미국 소와 광우병과의 연관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영순 교수의 자기 부정과는 달리, 농식품부조차도 반박자료에서 '광우병 고위험소'라는 표현을 썼다. 그의 보고서에도 '고위험 우군은 광우병과 유사한 임상 증상을 보이는 소가 포함된 우군을 말한다"고 적혀있다.

기자가 이 교수에게 이 사실을 지적했지만 그는 '광우병 유사 증세≠광우병 위험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지 않다는 게 내 소신"이라며 "미국은 97년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시행한 후, 10년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광우병 발병을 안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게 입장이 바뀐 이유를 묻자 그는 "2003년 당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처음 발생했던 때다, 우리 정부와 학계 모두 수입 중단 조치를 요구했고 그 와중에 그런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보고서 내용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보고서에 대해 "논문은 내가 2003년 쓴 것으로, 2004년에 검토하고 2005년 1월에 농림부에 제출했다"며 "난 정년퇴임이 다 됐는데 그 보고서 다 버렸다, 찾아보니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미국의 검역 프로그램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예찰(검역) 프로그램이 광우병 안전을 보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리콜하면 신뢰 얻는다? "최고 권위자라는 사실관계도 모른다"

▲ 지난 2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The 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가 미 캘리포니아에서 주저앉는 소(downer)들이 불법 도축되는 동영상을 공개해 미국 역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 휴메인 소사이어티

최근 '광우병 관련 최고 권위자'라는 이 교수의 말과는 달리, 미국 검역 시스템의 허술함을 엿보게 해주는 동영상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The 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가 미 캘리포니아에서 주저앉는 소(downer)들이 불법 도축되는 동영상을 공개해 미국 역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단체는 7일엔 주저앉는 소가 미국의 여러 주에서 가축거래소 주차장에 버려지거나 가축경매소에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영순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소들은 광우병 증상이 의심되는 고위험 우군에 속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공인된 기관이 아닌 곳에서 이런 거 하나, 저런 거 하나 들고 나온 것에 대해 답변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진짜 이뤄지는 것인지 알 수 없고, 고발됐다면 미국사회에 더 문제가 될 것 아니냐, 우리나라만 예민해졌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쇠고기 리콜 사태에 대해 그는 "도축장 사고가 어느 나라인들 없겠냐"면서 "우리나라 사람은 식품을 리콜하면 굉장히 두려워하지만, 미국에서 리콜하면 (리콜 조치한) 그 회사를 신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그 회사는 망했다, 최고 권위자라는 분이 제대로 된 사실관계조차 모른다, 8일 토론회 자료를 보니 오히려 그가 괴담을 유포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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