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학생들이 거기 있으니 교사인 나도 거기 있을 것

등록|2008.05.10 10:26 수정|2008.05.10 10:26
소가 초식 동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는 풀을 먹고살아야 정상이다. 개는 잡식동물이다. 하지만 개가 풀을 뜯어먹고 사는 경우는 좀체 보기 힘들다. 그래서 아주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을 때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이 속언에 비추어 보면 '소 삼겹살 구워 먹는 소리'라는 말이 생겨났을 법도 한데 그런 말은 없다. 드물게나마 '개가 풀을 뜯는' 경우는 있어도 '소가 고기를 먹는' 경우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죽은 소나 돼지 등을 갈아 육골분 사료로 만들어 소에게 먹였다고 한다. 풀을 먹고살아야 할 소가 '고기'를 먹으니 '미치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겠는가? 미친소를 한자로 쓴 것이 광우(狂牛)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어 '정신적으로' 미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몸뚱아리에 '하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소가 스스로 고기를 먹고 '미친' 것이 아니라, 이윤에 눈이 먼 인간들이 소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사실, 광우병이라는 용어는 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미친 것은 소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소가 풀을 먹고사는 것이 정상이라면 학생들은 무엇을 먹고 자라야 할까? 교과서적으로 얘기하면 그들은 꿈과 희망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을 먹고 자라야 한다. 그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그러면 실제 우리나라 학생들이 과연 그 꿈과 희망을 먹으며 성장하고 있을까?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교과서에, 전국적으로 동일한 평가에, 12시가 넘도록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면서 과연 다른 꿈과 자아를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학벌이라는 하나의 길과 오로지 '더 나은 성적'만을 강요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아이들이 소처럼 '미치는 않는'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더 나은 육질의 쇠고기를 얻기 위해 철분을 제한하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놓으며 옴짝달싹 하지 못하도록 비좁은 우리에서 소를 키우는 공장형 축산과, 더 나은 성적을 위해 휴식 시간을 제한하고 심화보충수업에 야간자습을 강제하며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하도록 '지도'의 눈을 부릅뜨는 학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터넷 댓글을 보니 '살다 살다 여중고생들과 싸우는 정권은 처음 본다'는 비아냥이 있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나 또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고 있다. '공장형 교육'으로 비판 의식과 공동체 정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아이들이 '나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들은, 이기심과 개인주의에 물든, '약삭빠르고 계산적인' 젊은이들 때문에 나라가 무너질 것을 걱정하던 보수주의자들의 근심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자칭 이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고자 하는 젊은 학생들의 외침에 박수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되지도 않을' 훈계를 늘어놓고 있다. 진실을 말하니 불편해서 그런가? 아니면 나라 걱정에도 왕후장상이 따로 있는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학생들이 토론과 비판적 능력을 키우고 현실 참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 역동성은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와 같은 학벌 구조와 입시구조를 혁파하고 대학서열화를 개혁하여 말 그대로 다양성과 창의력에 기반한 교육 환경을 만든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단언한다.

'산이 거기 있으니 산에 오른다'고 했다. 내가 평생을 함께해야 할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기 있으니, 교사인 나 또한 촛불을 들고 그들 곁에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조용식 기자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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