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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 <죽음대역배우 모리>

등록|2008.05.12 13:49 수정|2008.05.12 13:49
<지구상에 단 한명뿐인 죽음대역배우 모리>(이하 모리)에서, 주인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할 숙명이지만 정작 드러내놓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죽음'이라는 딜레마를 특정한 인물에게 투영시킨 존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대상이나 초월적인 존재에 대하여 두려움 혹은 경외심을 느낀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이룩해온 '문명'이라는 것도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섭리, 그리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인간의 삶은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마무리되며. 인간의 무한한 욕망조차 이같은 자연의 섭리앞에서 한낱 덧없는 일장춘몽이 되기 마련이다. 모두가 무병장수를 희망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여기서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인생이란 같은 무대를 구성하는 또다른 얼굴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냄새를 가지고 탄생했다는 모리라는 인물과,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모순된 시선은, 곧 우리가 죽음이라는 놈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리를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냄새에는 '공포'와 '연민'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현실의 살아있는 모리와 쉽게 소통하지 못하지만, '죽음대역배우'로서 모리의 연기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애잔한 공감대를 느낀다. 

픽션속의 설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실제로  '죽음조차 상품화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TV드라마나 영화는 하루가 멀다하고 주인공의 안타까운 죽음이나 비극으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CF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인물들을 등장시켜 상품을 홍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객관적 명제 혹은 타자의 상황으로서 죽음이라는 화두를 접하는 것과, 막상 그 죽음이 개별적인 내 삶의 영역을 침범해왔을 때 어긋나는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극중에서 모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을 통해 잘 나타난다.

모리 주변을 배회하는 진짜 망령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담보로 한' 인간들의 빗나간 욕망이다. 모리가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운명의 굴레를 넘어 삶의 생기를 회복하려는 인물이라면, 모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모리)을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그를 통하여 무언가 얻으려고 하는 인물들이다. 모리가 간직하고 있는 어두운 운명마저, 이들에게는 오직 상품으로서 활용가치의 유무에 따라 평가될 뿐이다.

인간은 죽음(=소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신념이나 성공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죽음조차 불사하기도 한다.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았던 파우스트처럼, 모리는 이들에게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가까이해야했던 '위험한 거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성공을 얻은 대신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 이들의 비참한 최후는, 결국 모리가 아닌 스스로의 욕망에 발목이 잡혀 파멸을 맞이하고 만다.

한편으로 모리는 스스로가 아닌 타자에 의하여 왜곡된 정체성에 휘둘리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모리는 태생적으로 죽음의 냄새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설정이지만, 정작 그에게 또다른 인생을 선택할 기회마저 앗아간 채 하나의 틀속에 가두어버린 것은 바로 사회라는 이름의 타자들이다.

죽음의 굴레를 넘어 인간다운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모리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사회와 단절된 감옥 안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된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개인의 삶을 침탈하고 억압할 수 있는 위험성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모리>는 이야기 구성이 썩 탄탄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기에는 작품 전편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너무 어둡게 다가오고, 과장과 비약이 심한 전개는 독자들이 모리라는 인물의 감정에 충분히 몰입하기도 전에 휙휙 줄거리를 건너뛴다. 후반부의 급작스러운 반전이나 저자의 감상적 취향이나 가치관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부분도 이야기 전개를 방해하기 일쑤다.

그러나 적어도 작품내에서 모리와 주변인물(사회)간 끊임없는 관계의 변화를 통해 일관되게 보여지고 있는 것은 , 곧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각기 다른 태도에 관한 묘사다. 모리는 악인이 아니지만 선인도 아니다. 순수함 만큼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를 통해 배운 이기심과 분노, 속물성도 공존하는 평범한 인간이 되어간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역시 그 자체로서는 결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별을 통하여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병마를 극복하며 건강의 소중함을 되새기듯이, 죽음은 우리의 삶의 소중함과 다양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곧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열린 과정'임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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