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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놀아요" 한 마디 때문에 생긴 해프닝

등록|2008.05.13 16:52 수정|2008.05.15 08:59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학교장 재량으로 일부 초등학교에서 단기방학을 실시했었는데, 우리 집 애들 초등학교에서도 어린이날 이후부터 9일까지 단기방학이 있었습니다.

토요일(3일)부터 시작해서 석가탄신일(12일)까지 공휴일을 포함하면 단기방학 기간은 열흘에 달했습니다. 이와 같은 초등학교 단기방학에 대해서 맞벌이 부부 등의 가정에서는 오히려 더 부담이 된다는 얘기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저는 어린이날 이후 6일과 7일, 이틀을 휴가를 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생각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냥 어영부영 지나가 버렸습니다.그래도 어버이날 바로 전날인 7일. 멀리 고향에 계신 어머님은 찾아뵙지 못하지만 가까이 서울에 계신 처가 어른들은 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처가에 갔습니다.

처가에는 처조모와 장모님, 장인어른 이렇게 세 어른들만 지내고 계십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침 우리 애들도 세 명이라 누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 것인지 처가에 가는 동안 정했습니다.

처가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장인어른께서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을 건네셨습니다.

"어쩐 일이야?"

평일인데 회사에 출근도 하지 않고 어쩐 일로 왔냐는 뜻이었겠지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예, 그냥 놀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장인어른의 얼굴에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 애들도 학교가 단기방학이라 휴가를 내었어요."

그제서야 장인어른께서 안도를 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IMF 이후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까 그렇게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을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해프닝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폰을 보니, 처가에서 걸려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으니,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디야?"
"예, 사무실인데요"
"그래, 알았어. 수고해!"

그랬습니다. 몇 마디에 그친 아주 간단한 전화통화였지만, 그 안에는 상당한 내용과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마 장인어른께서는 전날 우리 가족이 방문했을 때부터 그냥 논다는 제 말 한 마디가 계속 해서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가 휴가였다는 것을 사실인지 확인하시기 위해 전화를 주셨던 것이구요.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구조조정에 대한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해프닝은 그저 단순히 한 번 웃고 지나가기에는 뭔가 허전하고 씁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새 정부 들어서 정부부처에 대한 1차 조직 개편이 있었고, 다시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조직 개편이 진행 중인데 그게 정말 정부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면야 누가 뭐라겠습니까마는… 현 정권의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당하는 사람만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다시 한 번 국민을 울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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