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앞산이 해발 810미터 백아산이다. 아내와 해강이 솔강이도 주말에는 함께 한다. 타잔놀이를 하려나? ⓒ 김규환
그제 일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지요. 아침부터 단단히 채비를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곤달비 뿌리를 나누고 인부를 가득 싣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곤달비가 무려 29박스를 손질했더니 양이 꽤나 되었답니다. 곤달비 식재는 이번이 두 번 째입니다.
해발 450미터에서 인부들은 맨몸으로 산을 오르라 하고 차에 곤달비를 듬뿍 싣고 가파른 산길을 서너 차례 시도 끝에 가까스로 기어오르는데 성공했습니다. 어찌나 경사가 급한지 차에서 고무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산죽 밭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 1km 정도 오르자 숲가꾸기(기계톱으로 작은 나무와 죽은 나무를 베고 가지런히 치워놓은 상태)를 해놓은 반반하고 너른 숲에 이르렀습니다. 해발 550미터에 짐을 풀고 할머니 인부들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 한 숨을 쉬고는 짐을 들고 산을 기어올랐습니다.
11명이 30여 분 심게 하고는 주위를 살폈죠. 심기 좋은 자리를 더 확보하기 위해섭니다. 비탈을 끼고 옆으로 돌아 약간 오르며 바닥을 살폈습니다. 골짜기가 대개 그렇듯 피나물이 즐비했습니다. 잠시 후 깜짝 놀랐습니다. 곤달잎이라고 하는 곰취가 몇개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소리쳤습니다.
"아짐(아주머니)! 곰취가 있어요. 곰취 밭이라니까요."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니 하나 둘 보이던 곰취가 간간히 보이는 조릿대(산죽) 사이로 근 200여 포기가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번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답니다. 곰취나는 데 사촌 격인 곤달비를 심고 있으니 내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하며 자화자찬을 하게 된 거지요. 바로 옆자리에 곤달비를 심고 있으니 이 희열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예정지가 아니었던 땅을 더 늘려 인부를 불러 상단부에 심었습니다.
▲ 백아산 골짜기에서 곤달비를 심다가 발견한 곰취 군락. 층층나무 하얀꽃이 한창 필 무렵 야들야들한 곰취를 된장에 싸서 먹으면 이보다 나은 향기를 구할 수 없다. ⓒ 김규환
산채원 촌장은 이렇습니다. 산나물을 심는 원칙말이지요. 적재적소 식재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 말입니다. 즉, 두릅 있는 곳에 두릅 심고, 고사리 자라는 옆에 고사리를 심으며 딱주가 몇 개 보이면 잔대(딱주)를 심고, 더덕 넝쿨이 뻗어 있으면 더덕 뿌리와 씨앗을 심습니다.
숲을 면밀히 분석하여 햇볕이 많으면 양지 식물을, 약간 그늘지고 응달이면 음지 식물을 심는 것까지 곁들이면 더 잘 자라지 않겠어요? 도라지도 마찬가지고 참나물도 매한가지입니다. 50여 가지 산나물을 심는 원칙에 충실하였던 거지요. 그래야 숲이 차기 전 그러니까 십수 년에서 20여 년 전 취나물 밭이었다면 약간만 더 심어주면 다시 취나물이 즐비하여 낫으로도 벨 수 있어 수확량도 훨씬 늘게 될 게 아니겠습니까.
곤달비 2만 여 포기를 심으며 곰취밭을 찾아 다니는 기분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기쁨이 있기에 넉달 째 깊은 산골짜기에서 매일 같이 살았던 힘이 나지 않은가 싶구요. 해발 810미터 백아산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500~600미터 대를 오르내리는데도 지치지 않았던 까닭이라고 봅니다.
▲ 산에서 곤달비를 심고 있는 장면. 곤달비는 곰취에 비해 덜 쓰지만 향기는 약간 부족하다. 작업하고 나서 한 봉지씩 나눠드렸더니 다음날 조물조물 된장에 무쳐 오셨고 쌈으로도 맛나게들 잡수셨다. ⓒ 김규환
곰취 3ha(9천평), 곤달비 3ha에서 내년에 쏟아질 양이 얼마나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하우스도 아니고 밭에서 기른 것도 아닌 산 속, 숲 속, 높고 깊은 나무 아래서 자란 나물,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깝게 심어 향이 그윽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으며 각종 효능이 그대로 살아있는 나물이 비를 맞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밭에서 기른 것보다야 양은 적을 게지만 대한민국 어디에 내놓아도 단연 1등을 차지할 산나물은 이렇듯 부엽토가 기르고 약간의 해가 키우고 찬이슬과 적당한 습기가 어우러져 살피고 있답니다. 대판골 100ha(30평)을 이렇게 가꾸고 있답니다.
3개년간 작업을 마치고 나면 5500여 빨치산이 살았던 백아산 깊은 골짜기는 산나물 세상, 산나물 천국, 산나물 박물관, 산나물 백화점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정자 몇 동 짓고 길을 조금 다듬으면 산나물가(歌)를 제작하여 판소리 한마당을 추가하여 여섯 마당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가지 산나물을 하나하나 심으면 밟히는 게 산나물이요, 뜯는 것마다 산채(山菜)며 씹는 것마다 향기 그득한 산나물, 약초가 될 겁니다. 수도권 도회지에서 몰려오는 뭇 벗님네들 모시고 노랫가락 들으며 산나물 향을 음미하는 한량 시대를 열고 싶답니다. 작은 단위 포장으로 집 근처 가게에서 쉽게 구입하여 드실 수 있게 하는 것은 기본이구요.
▲ 산채원이 열 산나물과 산양삼 세상! 백아산 깊은 골짜기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 김규환
산채원은 이렇듯 찬찬히 느긋하지만 한국 농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답니다. 유기농을 뛰어넘어 미처 몰랐던 산의 가치를 재창조하여 산이 곧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 오늘도 산마늘 심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나설 채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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