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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온 세상을 돌아다닌 방랑자의 모험담

[리뷰] 우에무라 나오미 <청춘을 산에 걸고>

등록|2008.05.14 10:37 수정|2008.05.14 11:28

<청춘을 산에 걸고>우에무라 나오미의 자서전 ⓒ 마운틴북스

'20세기의 모험가'를 몇 명 꼽으라고 하면 아마 그 중에는 일본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포함될 것이다. 우에무라 나오미는 5대륙 최고봉을 세계에서 최초로 등반한 인물이다.

유럽 최고봉 몽블랑(4807m),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남미 최고봉 아콩가과(6959m), 아시아 최고봉이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가 바로 그 5개의 봉우리다.

더욱 독특한 점은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봉우리를 단독으로 등반했다는 점이다. 단독등반이라고 해서 특별한 장비가 별도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합동등반보다 더 많은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함께 몸을 묶을 로프 파트너도 없고, 또 어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도움을 청할 동료도 없기 때문이다. 산행에 따르는 모든 위험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더라도 가장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바로 외로움이다. 고산지역의 광대한 자연 속에서 혼자 고립되어 간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주위에 야생동물 한 마리 없는,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의 한복판. 그곳에서 혼자 숙식을 해결하면서 정상 공격에 필요한 모든 계획을 세우고 외롭게 한걸음 한걸음 정상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우에무라 나오미는 이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다행히도 그에게 외로움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본래부터 혼자있기 좋아하는 체질인지 그는 혼자가 되었을 때 더 큰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에무라는 혼자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대륙의 고봉들을 차례로 오른다. 5대륙 최고봉 등반을 모두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29세였다.

6년간 4천미터가 넘는 봉우리 13개를 등정한 우에무라

우에무라 나오미의 자서전 <청춘을 산에 걸고>는 이 장엄한 모험의 기록이다. 타고난 방랑가이자 모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메이지 대학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등산과 인연을 맺게 되고, 대학을 졸업한 1964년 무작정 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을 떠돌게 된다.

우에무라가 미국으로 떠날 때 가지고 있던 돈은 고작 110달러였다. 세계의 산을 돌아다니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그가 미국으로 향했던 이유는 오직 산행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잘사는 나라 미국에서 몇 개월 일하며 돈을 모으면, 그 돈으로 유럽과 남미를 돌아다니면서 꿈에 그리던 세계의 산을 밟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미국에서 그의 행보는 난항의 연속이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데다가 노동허가증없이 관광비자만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외국인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몇가지 되지 않는다. 우에무라는 호텔에서 객실청소, 접시닦이 등을 하며 돈을 모으고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의 농장지대로 숨어들어 포도따기에 매달린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그는 프랑스로 향한다.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신세지만 타고난 체력과 성실함으로 그는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스키장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한다. 그곳에서 돈을 모으면서 틈틈이 스키를 배우고 결국 혼자서 몽블랑 정상 공격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우에무라의 모험은 이후에도 거침없이 이어진다. 그는 스키장에서 여행경비를 마련할 당시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감자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일요일에도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다른 승객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주워모아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우에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타국을 떠돌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는 세계의 산을 정복한다는 꿈에 부풀어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을 것이다. 우에무라는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남미의 아콩가과를 단독으로 등정한다. 아콩가과 등정 이후에는 아마존 강을 따라 6000km를 혼자서 두 달동안 뗏목으로 주파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산넘고 물을 건너는 탐험을 자유자재로 해나간 셈이다.

수직의 세계를 벗어나서 수평의 세계로 나아가다

우에무라의 단독 산행도 에베레스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만큼은 제아무리 우에무라이지만 단독으로 오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에무라는 일본 산악회 원정대의 일원이 되어서 에베레스트로 향한다.

1차 정상공격의 임무를 맡은 그는 선배 한명과 함께 눈보라 속에서 텐트를 치고 산소통을 짊어지고 오른 끝에 결국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다. 우에무라는 기쁨도 잠시, 함께 고생했으면서도 정상에 서지 못한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해하고, 정상공격조를 위해 애써준 팀원과 셰르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혼자서 북미의 매킨리를 등정해 5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세계최초의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우에무라의 모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등산이라는 수직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앞으로는 수평의 세계를 탐험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린란드 3000km 개썰매 단독종주, 북극권 12,000km 개썰매 단독 완주 등에 차례로 도전해서 모두 성공한다.

세계의 오지에서 일반인은 엄두도 내지못할 모험을 이끈 그는 언제나 혼자이길 원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서 혼자 움직여야만 만족할 만한 모험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험길에도 어려운 점들은 있었다. 몽블랑에 단독으로 오르면서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지기도 하고, 남미에서는 준비해간 식량을 지나가던 소떼가 전부 먹어치운다. 장기간의 항해도중에는 고향에서 고생하실 늙은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우에무라의 대장정은 1984년에 종지부를 찍는다. 세계 최초 매킨리 동계 단독등반에 나선 그는 정상공격에 성공한 이후 교신이 끊긴다. 그가 파놓은 얼음굴도 발견되고 몇몇 장비들도 찾았지만, 그의 시신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짐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우에무라 나오미, '진정한 모험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언제나 더 커다란 꿈을 좇았던 우에무라 나오미. 어쩌면 그는 매킨리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구의 오지 한구석에서 남모르게 또다른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모험을 꿈꾼다.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모험을. 홀로 길을 떠나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우에무라의 모험담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가 매킨리에서 실종되자 세계의 산악인들은 모두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우에무라 나오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설이었던 인물이다.
덧붙이는 글 <청춘을 산에 걸고>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 김성연 옮김. 마운틴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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