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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구멍 송송... 광우병 걸린 남북관계

강경자세 취하다가 미국 대북 식량지원에 당혹... 이러다 '왕따' 될라

등록|2008.05.15 09:09 수정|2008.05.15 09:09

▲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13일(현지 시각)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 중 6차회담의 최근 진전 상황에 관해 말하는 도중 자신이 수일 전 북한에서 가져온 북핵 관련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북미 관계는 순조롭게 진행 중인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꼬이기 시작한 남북관계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주저앉아 일어설 줄 모르고 곳곳에서 구멍이 난 남북관계의 모습은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표현하면 마치 '광우병에라도 걸린 듯' 하다.

성 김(Sung Kim)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13일(현지 시각) 북한이 미국에 넘겨준 북핵 관련 자료를 "완전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1만8822 쪽, 314권 분량의 자료를 가지고 왔다.

그는 "이번에 가져온 자료들은 영변에 있는 5㎿ 원자로 및 핵연료 재처리공장 운영과 생산에 관련된 일련의 완전한 자료로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검증에 있어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한 미국 정부 대표단의 방북 협의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대북 식량지원계획을 조율하고 있다"며 "아마도 수일 내로 모종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량 배분 모니터링 문제에 대해서도 "대체로 우리가 보기에 보다 개선된 식량 배포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북한에 50만t의 식량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 대북 식량지원에 남한은 '꼽사리'

북한이 미국에 넘겨준 핵 관련 자료는 진짜인지, 누락된 부분은 없는지 등을 놓고, 특히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이 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논란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자료를 받아온 지 불과 3일 만에 '완전한 자료'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북한에게 식량 50만t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할 것이라는 얘기는 지난 3월부터 나왔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았다. 식량이 제대로 북한 주민들에게 배분되는지 관찰하는 모니터링 문제에서 북한과 미국이 끝내 타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보수진영 전문가들은 모니터링 문제 때문에 절대로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 또는 기대(?)는 빗나갔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협의는 북미 간에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지난 8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북미간 협의가 진지하게 잘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가 미 정부의 식량지원 협상 대표단의 방북 사실을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

이같은 보도가 나온 뒤 한국 정부 쪽에서는 국제기구를 통해 남한도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일에는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워싱턴에서 만나 북한의 식량난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협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현실화되기 전까지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먼저 식량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는 우리가 먼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이전 좌파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다르다는 증거로 활용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자 방금 전까지의 말을 뒤집을 수 없어 아주 궁색하게 간접 대북 식량지원 방안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정부는 지난 4월 말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해야 했다"며 "그 시점을 놓치고 이제 와서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에 한국도 '꼽사리' 끼겠다니 너무나 우습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알기로는 북한이 먼저 남한 정부에 식량지원을 요청할 계획은 없다"며 "청와대의 무능하고 아마추어적 대북 전략과 인식이 남북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6자회담에서 남한만 '왕따'?

북한에 보내는 남한 정부 당국자들의 '충고성 멘트'도 되레 역효과만 내고 있다.

한 예로 현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지난 2일 기자 간담회에서 "남북간 대화를 위해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중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북한 매체는 이명박 대통령을 "체질적으로 동족대결 근성이 골수에까지 들어찬 호전광" "북남대결과 북침전쟁을 부르짖는 친미 보수세력의 대변자" "외세와 야합해 북침전쟁 도발책동에 미쳐 날뛰는 호전분자" 등으로 맹비난했다.

남북 관계는 이 모양인데 북미 관계는 슬슬 풀려 나가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박사는 "현재 북미간 진행 속도로 볼 때 7월 초면 북한의 테러지원국이 해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적성국 교역법 적용 배제는 미 행정부가 발표만 하면 되니 간단하다"고 밝혔다.

이 때쯤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이벤트를 위해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더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후 한반도 평화포럼이 진행되고 6자회담에서 북한 핵 검증이 논의될 때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과거 6자회담에서 일본을 사실상 배제시켜 골탕을 먹였듯 한국을 '왕따'시키면서 아주 괴롭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나중에 북한 핵 폐기 비용이 많이 든다, 흑연감속로 한 개 폐기하는데도 5억 달러가 든다"며 "이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지 않고 1994년 경수로 건설 비용을 덤터기 씌웠듯이 한국에 물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동맹만 하면 통미봉남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인식은 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고 남한은 봉쇄하는 전략)은 어림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1일 브리핑을 자청해 "한미 간에는 당연히 상시 정책협의와 대화와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며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거래로 한반도 주위 문제를 해결하려는 통미봉남 전략에 의지하려 한다면, 이는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국을 통해 북미 대화의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통미봉남이 안 된다"는 주장 자체부터 이미 통미봉남이 이뤄지고 있음을 실토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2일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남북 정부 간 대화는 안 되고 있지만 민간 교류는 전 정권보다 더 활발하다"며 "따라서 통미봉남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일부 기자들은 "'통미봉남'은 남북 당국간 대화에 적용되는 용어이지 민간 부문을 끌어들인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바로 반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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