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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평양 가고, 북핵은 미국으로 가고?

[심층진단 ②] 미국 대선과 부시의 레임덕, 큰 변수는 아니다

등록|2008.05.15 17:15 수정|2008.05.15 17:15

▲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13일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중 6차회담의 최근 진전상황에 관해 말하는 도중 자신이 수일전 북한에서 가져온 북핵 관련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핵 신고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교착 상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9.19 공동성명의 2단계 이행조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분위기이다. 작년 10.3 합의로 표현되는 2단계 이행조치는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와 핵 신고, 그리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에너지 지원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를 골자로 한다.

핵 신고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보유 및 시리아 핵개발 지원 의혹은 지난 4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비밀 의사록'에 미국의 의혹 제기를 북한이 접수(acknowledge)하는 것으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UEP와 관련해, 이미 부시 행정부는 정보 판단 수준을 '중간 수준'으로 낮춘 상황이다.

또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의 UEP 보유설의 유력한 증거로 거론되어온 고강도 알루미늄관과 관련해 "북한이 UEP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2년 10월 미국의 의혹 제기 당시 국무부 정보조사국 국장을 맡고 있었던 칼 포드는 14일 카네기 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나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이 증거를 입증하지도 않고 믿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미국은 UEP 의혹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그러한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며, 북한의 UEP 보유 주장은 신빙성이 강하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 안팎에서 UEP에 대한 자신감이 크게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그러자 대북 강경파들은 북한-시리아 핵협력설을 반격의 카드로 삼고자 했다. 의회의 강한 압력에 직면한 부시 행정부는 결국 북한의 핵확산을 입증할 증거를 의회의 핵심 의원들에게 브리핑하면서 한때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이에 분개한 북한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감으로써 북핵 협상이 좌초될 것이라는 강경파의 기대와 협상파의 우려가 교차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문제삼지 않으면서 미국의 강경파들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최근 북한이 가장 실질적인 문제인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관련해 핵관련 자료를 미국에 제공함으로써 협력 의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 역시 이를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하면서 북한이 검증에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박한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과 7월 '이벤트'

이처럼 핵신고를 둘러싼 큰 고비를 넘기면서 관심의 초점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시점으로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핵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검증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테러지원국 해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은 '과정'이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북핵 신고의 신뢰도가 일정 부분 확보되면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밟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제출한 핵관련 자료의 신빙성이 일정 정도 확보되고, 5월 말이나 6월 초로 예정된 6자회담에서 검증 방안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제외하기 위해서는 45일 전에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데, 이 때 의회가 별도의 입법을 통해 반대하지 않으면 45일 경과 후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발표할 수 있게 된다.

공화당 강경파들이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이 호의적인 입장이어서 의회가 입법권을 행사해 이를 가로막을 가능성은 낮다. 이에 따라 늦어도 7월 말-8월 초까지는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와 거의 동시에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조치도 마무리될 예정이다. 2단계 조치 마무리를 경축한다는 의미에서 라이스의 참관하에 북한이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를 전세계에 생중계하는 대형 이벤트도 거론되고 있다.

물론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복병은 있다. 바로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에 대한 '불일치 발생 가능성'이다. 국무부는 북한의 핵관련 자료 분석이 일단락되면 의회에 설명을 하고 협조를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자료 분석 결과 미국의 추정치와 큰 차이를 보이면, 미국 의원들은 이를 따져들게 될 것이다.

힐 차관보를 비롯한 협상파들은 UEP와 북한-시리아 핵협력 문제는 플루토늄과 비교할 때 지엽적인 문제라며, 플루토늄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해왔다. 이는 불일치 문제가 불거지면 힐의 입지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UEP와 시리아 문제도 은근슬쩍 넘어가더니 정작 중요하다던 플루토늄까지 얼버무릴 작정이냐'는 비난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강경파들은 이 문제를 '마지막 반격의 카드'로 삼고자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가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 정보기관이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에 대한 추정치를 높였다고 보도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신문은 정보기간의 추정치가 최소 35kg에서 최대 60kg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30kg과는 최소 5kg에서 최대 30kg까지 차이가 난다. 플루토늄 검증이 험난하고 민감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 3단계 협상부터는 북한의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 못지 않게 한, 미, 일 3국의 전략적 결단도 핵심 변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첫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동맹을 '전통적 우호관계'에서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본게임'은 차기 6자회담부터

만약 불일치 문제가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조기에 수습책을 찾는다면 6자회담은 그야말로 '본게임'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경수로 제공,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한반도 정세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사안들이다. 그 만큼 6자회담 참가국들, 특히 북한과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이들 사안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는 2단계 조치가 완료되기 전에도 가능하다. 이미 9.19 공동성명을 통해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이들 사안을 해결한다는 기본 원칙에 동의한 바 있고, 북한과 미국은 양자 접촉을 통해서도 3단계에 관해 논의해왔다. 이에 따라 5월 말-6월 초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에서는 북핵 검증 방안과 함께 3단계 이행조치 논의가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부시 임기 내에 핵폐기 완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임기가 불과 7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미국 대선도 예정되어 있는 반면에, 핵폐기 협상은 지난한 과정을 밟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꼭 이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 북핵 폐기를 우선 핵무기와 핵물질로 한정하고 폐기 완료 시점을 '해외 이전'으로 잡을 경우 핵폐기 시점은 획기적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 시간과 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부시 임기 내에도 실질적인 핵폐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이에 대한 상응조치들에 있다. 우선 9.19 공동성명에서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한 경수로 제공 문제가 있다. "별도의 포럼"을 구성해 논의하기로 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북미관계 정상화도 협상 타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북일관계 정상화 논의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가 남아 있다. 남북관계의 경색 역시 큰 변수이다.

따라서 3단계 협상부터는 북한의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 못지 않게 한, 미, 일 3국의 전략적 결단도 핵심 변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임기 내에 북핵을 해결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이 있다.    

미국 대선, 6자회담의 변수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임기 내 북핵 해결이 어렵다는 전망의 핵심적인 근거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이 있다. 8월 말, 9월 초에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결정되면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접어들어 부시 행정부가 과감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볼 때, 미국 대선이 6자회담 프로세스의 큰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선 북한이 차기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선호할 것이냐의 여부가 중요한데, 최근 북한이 핵관련 자료를 미국에 건네 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이 차기 정부를 선호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해 보인다. 또한 북한도 미국과의 양자회담에서 '2단계를 빨리 마무리짓고 3단계로 넘어가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에도 북미간의 협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클린턴 행정부 임기 말이었다.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은 미국 대선 열기가 정점에 달했던 10월 초순과 하순의 일이었다. 비록 공화당과 부시 당선자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도 합의했었다.

클린턴의 경우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파적 갈등과 부시의 당선으로 큰 제약을 받았다면, 부시는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다수당이자 야당인 민주당은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소수당이자 여당인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불만을 품고 있지만, 6자회담 프로세스를 좌초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시 임기 내에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차기 정부의 큰 부담 하나를 덜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북핵 해결 및 북미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낮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등 중동문제에서부터 러시아와의 전략적 갈등 및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처 방안에 이르기까지 각종 외교안보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차기 미국 정부는 '고난의 행군'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부시 임기 내 북핵 해결은 차기 미국 정부의 큰 짐 하나를 덜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6자회담 프로세스가 원만하게 진행될 경우, 북핵 문제가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낮다. 여당 후보인 매케인이 이를 비난하기도 쉽지 않고, 힐러리와 오바마는 부시의 대북정책을 대체로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미 대선 후보들 역시 부시 대북 정책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의원,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 의원.. ⓒ 연합뉴스

김정일과 부시, 손 맞잡을까?

관심의 초점은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이 직접 만나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여러 정상이 함께 만나든, 둘이 만나든 북미정상회담은 양국 사이의 적대관계의 종식 및 한반도 평화시대 개막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이미 김정일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공은 부시 대통령에게 있다.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은 엇갈린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6-7년에는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전제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정상회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김 위원장을 만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없이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부시 대통령이 실용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천명할 경우, 부시의 귀국편에 핵무기와 핵물질도 실어보내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일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귀국길에 5명의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을 함께 송환했던 사례에서 이와 같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환상적인 시나리오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일방적 대북 상호주의와 선미후북(先美後北)라는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가져야 할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다음에 이어질 글: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과 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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