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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지면서 배운 사진

[사진말 (2) 사진에 말을 걸다 7∼10]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등록|2008.05.16 14:44 수정|2008.05.16 14:44

서울 누하동 <대오서점>에서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꾸려나가는 헌책방인, 서울 누하동 골목길에 자리한 〈대오서점〉에서. 할머니는 헌책방 책살림을 돌보기는 힘들고, 당신 한삶을 돌보고 계신데, 오랜 세월 돌보아 온 헌책방 발자취는 살림집 구석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당신 삶과 책과 일이 고루 섞인 모습을, 책손이자 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러 찾아온 말동무로서 느끼며 사진 한 장을 담았습니다. ⓒ 최종규


[7] 정작 자기 사진은 못 찍는데: 사진을 찍다 보면 정작 자기 사진은 거의 못 찍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사진을 못 찍는 일이 하나도 아쉽지 않습니다. 남 사진을 찍으면서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자취를 오롯이 담아내는 일이 훨씬 즐겁고 반갑습니다.

자기 눈으로 자기 얼굴을 바라볼 수 없고 다른 사람들 얼굴만 바라보듯, 사진기는 우리 눈이 지닌 이런 빛깔을 고스란히 옮겨 가 세상을 담아내는 연장이라고 봅니다. 이리하여 내 눈으로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고 둘레를 보듯, 사진기로 이웃을 담고 세상을 담고 둘레를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비비 꼬는 아이행사장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림 나오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영 내키지 않고 달갑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앞에 나와 부지런히 펑펑 불을 터뜨리며 찍을 때면 뒤에 멀찌감치 물러나서,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 얼굴을 찍든지, 행사장에 아버지 어머니 손 잡고 온 아이들을 담습니다.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ㅅ시인 강연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데, 한 시간 가까이 지루한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저도 지겹고, 이날 시읽기를 해야 할 아이도 지겨워해서, 아이가 지겨워하며 몸을 비비 꼬는 모습을 슬쩍 담았습니다. ⓒ 최종규


[8] 어떤 사진기를 고를까 생각하기 앞서: 어떤 사진기를 고를까 생각하기 앞서 어떤 사진을 찍을 생각인지를 먼저 잡아야 합니다.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가 서 있어야 이에 알맞는 기계를 고를 수 있어요. 대충 찍다가 자기 사진감(주제)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찍을거리를 안 잡았을 때는 정작 좋은 기계를 손에 쥐었다 해도 제구실을 못하고 말지요.

골목집과 꽃그릇제가 쓰는 셈틀 바탕화면에는 제가 찍은 사진을 깔아놓습니다. 지난주부터 이 사진을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있습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찍은 사진으로, 쉰 해 남짓 묵은 기와집 분들이 담벽에 늘어놓고 키우는 꽃그릇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기와 지붕이 아닌 슬레이트나 개량 벽돌 지붕이지만, 벽이며 집안 얼거리며 기와집 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이 골목에 무척 많은데, 어느 집도 ‘문화재’ 대접을 못 받습니다. ⓒ 최종규


[9]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만 찍으면 된다. 남이 찍는 사진을 흉내낼 까닭도, 부러워할 대목도 안타깝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가 사진을 간수하는 법어떤 분들은 소중한 사진이라면서 비싼 사진틀에 꽂아 놓고 고이 모시기도 합니다만, 저는 아무리 소중한 사진이라고 해도 따로 사진틀에 모셔 놓지 않습니다. 그냥 빨래집게로 집어서 집이나 도서관 한켠에 꽂아 놓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만져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04년 1월, 경상도 안동에 계신 권정생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슬그머니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지 않는 권정생 할아버지였지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몇 장 남겨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옆에서 중형사진기로 찍었습니다. 이때 권정생 할아버지는 왼발이 붓는 병에 걸려 제대로 못 걸으셨습니다. ⓒ 최종규

[10] 분통이 터지면서 배운 사진 : 50mm 렌즈 하나만으로 사진을 찍던 때 일이다. 가끔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나 사진작가라 하는 이들이 헌책방을 취재한다고 와서 엄청나게 좋은 장비로 사진을 찍어 가는데,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헌책방을 그저 기삿거리나 작품거리로 생각하고 찍어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네들이 찍은 사진은 퍽 그럴듯하게 보인다. 게다가 나로서는 돈이 없어서 사 쓰지 못하는 넓은각렌즈나 멀리보기렌즈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한편, 헌책방 일꾼과 책손들 앞에서 불까지 펑펑 터뜨리며 거리끼지 않고 마구마구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흔한'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라고. 자기가 헌책방을 찍는다면 헌책방을, 들꽃을 찍는다면 들꽃을, 공장 노동자를 찍는다면 공장 노동자를, 가을 들판 농사꾼을 찍는다면 가을 들판 농사꾼을 '작품'이나 '기사'로 찍을 일이 아니라고. 그 사람이나 그 자연과 하나가 되는 가운데 저절로 녹아들면서 찍지 않는다면 겉보기로는 더욱 그럴싸해 보이고 예술 값어치가 있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나는 내가 믿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기는 사진을 찍을 뿐이라고.

이리하여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헌책방 구석구석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담는 한편,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른 헌책방 삶을 담고, 헌책방은 사진을 찍는 곳이 아니라 '책을 사고파는 자리'인 만큼 나부터 책을 즐기는 가운데 한두 장 사진을 찍을 뿐이요, 헌책방은 나 혼자만 책을 즐기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책 구경 하는 다른 책손들 비위를 거스르거나 귀찮게 하거나 번거롭게 하는 짓은 말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헌책방은 '사진 찍는 곳이 아니'고, 헌책방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사진을 '찍어대기만' 할 뿐, 자기가 찍는 곳을 속깊이 헤아리거나 마음 쓰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헌책방에서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은 셈이네.

옆지기 사진옆지기가 도서관에서 고무조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살짝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옆지기는 이런 모습을 왜 찍느냐고 한소리를 합니다. 저는, ‘나중에 아이들한테 너네 어머니가 이렇게 살았단다’ 하고 보여주려고 찍는다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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