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미국에 'SOS' 외쳤으나 '퇴짜'
미 상무장관 "재협상 필요없다"... 강재섭 회동도 미루고 만났는데
▲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쿠티에레스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급했다. '광우병 파동'의 여진은 더욱 거세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를 탈출할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방문했다가 16일 오전 한국에 '들른' 카를로스 쿠티에레스 미국 상무장관과 마주앉은 이 대통령이 "오늘 중요할 때 잘 오셨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것도 그러한 절박함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쿠티에레스 상무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많은 협조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쿠티에레스 상무장관은 즉답을 피한 채 고개만 끄덕였고, 면담은 곧바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미 상무장관 "재협상은 필요하지 않다"
두 사람의 면담이 끝난 뒤, 동석했던 김은혜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브리핑을 했다. 이 대통령의 당부에 대한 쿠티에레스 상무장관의 반응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은혜 부대변인은 "미 상무장관도 공감을 표시했다"면서도 "차후에 미 상무장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밝힐 수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실제 쿠티에레스 상무장관은 이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난 뒤 1시간쯤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과 관련해 "'재협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쿠티에레스 장관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명문화하는 것을 포함해 포괄적인 미국 쇠고기 재협상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 "안전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주권은 보장돼야 하겠지만 WTO규정까지 거스르며 재협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쇠고기 수입 고시가 7일에서 10일 정도 연기된 것과 관련해 "애석하게 생각한다"며 "(최근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은) 감정적인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의회에서의 (한미FTA) 비준 연기 가능성 등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랐지만, 그는 "미국 쇠고기 품질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며 안전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쿠티에레스 장관은 사실상 이 대통령의 '긴급 구조요청'에 '퇴짜'를 놓은 셈이다. 탈출구를 찾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더 큰 부담을 떠 안고 말았다.
"뭘 또 바꾸냐?"... 청와대, 여당측 인적 쇄신 요구에 거부감
미국 상무장관과의 면담은 그동안 이목이 집중됐던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의 정례 회동까지 미뤄가며 만든 자리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15일) 밤 늦게 "미 상무장관 면담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어 정례 회동 일정이 조정됐다"며 강 대표와의 회동 연기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해명에도 이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정례 회동이 전격 미뤄진 배경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강재섭 대표와의 회동은 오전 7시 30분이었고, 미국 상무장관과의 면담은 오전 9시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강 대표와의 회동이 연기된 이유가 이번 회동에서 강 대표가 제안할 예정이었던 '국정 쇄신안'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강 대표는 '총리 역할 강화', '정책특보 신설', '인적 쇄신안' 등이 담겨 있는 '국정 쇄신안'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우병 파동'으로 촉발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우선 청와대가 쥐고 있는 부처간 정책 조정 기능과 홍보 기능 등을 국무총리실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국정 쇄신안'이다. 특히 여당 측은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의 14일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가 지난 5일의 28.5%보다 더 떨어져 23%대로 추락했다는 점에서 여당측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측의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청와대측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대통령도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지난 8일 "뭘 또 바꾸느냐"고 일축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이번에 세게 훈련했는데, 바꾸면 또 새로 (훈련)해야 하고…"라며 "내가 기업 CEO할 때도 느낀 건데 사람이 시련을 겪으면 더 강해지는 게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당측이 마련한 '국정 쇄신안'에 대해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이번 회동 연기의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자칫 당이 인적쇄신을 건의했다가 청와대가 거부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경우, 또 다른 큰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탐탁치 않은 당측의 쇄신안을 두고 논의를 하느니, 마침 한국을 방문한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뭔가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물론 이 대통령도 "재협상 수용"까지는 바라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이 대통령의 협조 요청에 대해 "본국에 돌아가 한국의 상황을 전달하겠다"는 정도는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쿠티에레스 장관은 단박에 "재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며 연일 '반성'만 하고 있는데, 정작 '국민과의 소통'을 하려는 실천적 조치보다는 미국측의 도움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로 연기된 이 대통령과 강 대표의 회동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관련기사 | 미국 쇠고기 수입 후폭풍]
☞ 과천시민들 집집마다 '미국소 반대' 현수막
☞ [댓글늬우스] MB는 초중고와, <조선>은 촛농과 싸운다
☞ [방담] 촛불 원더걸스 "대통령은 떼쟁이인가"
☞ "하면 할수록 망치잖아요, 하지 마세요"
☞ [포토갤러리] 한눈에 보는 촛불문화제
☞ [특별면] 미국쇠고기와 광우병 논란 기사 모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