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입은 지리산, 자연을 말해주네!
하늘과 맞닿은 산동네 '농평'을 가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손이 가면 자연은 인간에게 받은 만큼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요.”
“왜 사람들은 그렇게 조급한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돌아서 길을 내면 될 것을 가지고 우리는 꼭 산허리를 자르고 두 동강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엄사 포교국장인 대요스님의 간절한 설법이 아직도 귀에 울려옴을 뒤로하고 찾아 나선 곳이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해발 650고지 농평 마을. 행정구역상 이곳은 구례군 토지면 농평이다.
어떤 이는 800고지라고 하고, 어떤 이는 700고지라고 우긴다. 그러나 그 높이가 이곳 사람들에겐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그저 지리산 자락 한 곳에 위치한 마을에서 그들만의 삶을 꿈꾸며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옛날이 그립다는 사람들도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봄날의 나른함을 쫓는다. 달포쯤 지나서야 평지의 계절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면서도 한낮의 햇볕은 지리산의 초록과 짝을 이뤄 청단풍의 고운 자태를 뽐낸다.
아득해 보이는 평지의 마을들. 긴 호흡을 내쉬자 지리산 사계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10여 년 전만해도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있었을 만큼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고 농평에 사는 김삼권(50)씨는 자랑한다.
지금이야 외지인들이 들어와 많이 살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엔 6가구의 원주민들만 서로를 의지하며 소담스럽게 살았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고 김삼권씨의 부인인 양미희(47)씨가 말한다.
이곳에서 해발 100m을 더 오르면 통꼭지라는 작은 정상에 다다른다. 지척의 거리에 지리산의 3대 주봉(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의 하나인 노고단(1,507m)이 한눈에 들어오고, 눈을 조금만 돌리면 전남과 전북, 그리고 경남이 한곳에 모이는 삼도봉(1,499m)이 장엄한 자태를 드러내며 삼도의 민심을 모은다.
옛날엔 화개장터에서 장사꾼들이 일을 보고 반드시 이곳 농평을 지나 삼도봉을 거쳐 남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농평의 주막집은 항상 사람들로 붐빌 정도로 오가는 사람들의 포근한 쉼터였단다.
그래서였을까? 이곳에서 조금만 뒷길로 올라가면 조정래씨의 대하 장편소설인 ‘태백산맥’에 나오는 많은 지형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그런 곳 중 하나가 망바위다. 농평에서 뒷산을 한 시간쯤 걸어가면 그렇게 크지 않는 바위가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올라서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 밑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위에 올라서면 아래 상황을 손금 보듯 샅샅이 볼 수 있다. 그렇게 불리한 전투에서도 소수의 빨치산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쉽게 풀리는 곳이 바로 망바위다.
어디 이곳뿐인가? 지리산은 어느 곳이든 우리의 현대사와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아픔과 기쁨, 고난과 슬픔의 역사마저도 고스란히 안고 말없이 우뚝 솟은 산. 그래서 우린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을 안아줄 것처럼 인자하면서도 자연을 거부하는 인간에겐 때론 엄하게 체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지리산의 모습은 엄마 품처럼 그대로다. 언제 다가가도 거부하지 않고 항상 포근하게 속내를 감싸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의 계절은 해발마다 색다름으로 다가온다. 밑자락에 봄이 와도 조금만 올라가면 전혀 봄기운이 없다. 그래서 이곳 농평에서는 새벽이면 여름에도 이불을 찾는다. 봄날에 느끼는 한낮의 따스함은 더위를 느끼게도 하지만, 저녁이면 스멀스멀 찬 겨울 기운이 돈다.
지리산의 봄이 시작할 무렵, 온산에 퍼져나가는 청단풍을 몸으로 느껴보라.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음속 깊이 다가오는 청단풍의 곱고 여린 색의 조화에는 이곳 지리산이 주는 자연의 신비함이 그대로 묻어난 듯 하다.
471㎢의 광활한 면적의 지리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농평 사람들도 지리산의 혜택을 누리면서 감사하며 산다. 결코 오만하지도 자만하지도 않다. 때때로 찾아온 도시 사람들의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비싼 옷은 아닐지라도, 그들은 지리산의 자연색을 벗하며 소리 없이 감사하며 산다.
이곳 농평에도 한바탕 소용돌이가 있었다. 외지인들의 ‘묻지 마’ 투기에 이곳 농평도 비껴갈 수가 없었단다. 정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것은 초등학교를 개인에게 공매 처분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은 아직 사람들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는 인심 좋은 우리 이웃이 사는 마을이다. 졸망졸망한 토끼들이 집 한편을 차지하기도 한다. 비록 지금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가구 수도 늘어났지만, 토박이 농평 사람들과 이웃하며 오손 도손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리산이 너무 좋아 이곳에 살게 되었다는 오길환(63)씨는 언제보아도 인심 좋은 우리의 이웃 형님이다. 욕심이 없다고 했다. "보지 않으니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도 없고, 자연과 벗하며 지내니 함께하는 세상의 기쁨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며 손녀를 안고 있던 하다자(58)씨도 지리산 자랑이 대단하다.
더 이상의 물음은 그 분의 삶에 대한 간섭인 것 같아 따스한 차 한 잔에 소리 죽인다. 오늘은 정말 마음공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에 왔다는 기쁨을 자랑할 만하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조급한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돌아서 길을 내면 될 것을 가지고 우리는 꼭 산허리를 자르고 두 동강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800고지라고 하고, 어떤 이는 700고지라고 우긴다. 그러나 그 높이가 이곳 사람들에겐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그저 지리산 자락 한 곳에 위치한 마을에서 그들만의 삶을 꿈꾸며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옛날이 그립다는 사람들도 있다.
▲ 민방 집(김삼권씨 댁) 해질 녘 풍경하루 해가 저물어 가자 봄날의 따스함은 뒤로 숨기 시작하고... ⓒ 윤병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봄날의 나른함을 쫓는다. 달포쯤 지나서야 평지의 계절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면서도 한낮의 햇볕은 지리산의 초록과 짝을 이뤄 청단풍의 고운 자태를 뽐낸다.
▲ 집도 아니고.시원한 청단풍 사이에 피죽 지붕으로 민들어 놓은 야외 간이 숯불구이 마당. ⓒ 윤병하
▲ 고사리와 산나물기나긴 겨울을 위해 이른 봄부터 산나물과 고사리 등을 채취하여 말려 둔다고 한다. ⓒ 윤병하
아득해 보이는 평지의 마을들. 긴 호흡을 내쉬자 지리산 사계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10여 년 전만해도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있었을 만큼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고 농평에 사는 김삼권(50)씨는 자랑한다.
지금이야 외지인들이 들어와 많이 살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엔 6가구의 원주민들만 서로를 의지하며 소담스럽게 살았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고 김삼권씨의 부인인 양미희(47)씨가 말한다.
이곳에서 해발 100m을 더 오르면 통꼭지라는 작은 정상에 다다른다. 지척의 거리에 지리산의 3대 주봉(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의 하나인 노고단(1,507m)이 한눈에 들어오고, 눈을 조금만 돌리면 전남과 전북, 그리고 경남이 한곳에 모이는 삼도봉(1,499m)이 장엄한 자태를 드러내며 삼도의 민심을 모은다.
옛날엔 화개장터에서 장사꾼들이 일을 보고 반드시 이곳 농평을 지나 삼도봉을 거쳐 남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농평의 주막집은 항상 사람들로 붐빌 정도로 오가는 사람들의 포근한 쉼터였단다.
그래서였을까? 이곳에서 조금만 뒷길로 올라가면 조정래씨의 대하 장편소설인 ‘태백산맥’에 나오는 많은 지형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그런 곳 중 하나가 망바위다. 농평에서 뒷산을 한 시간쯤 걸어가면 그렇게 크지 않는 바위가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올라서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 밑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위에 올라서면 아래 상황을 손금 보듯 샅샅이 볼 수 있다. 그렇게 불리한 전투에서도 소수의 빨치산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쉽게 풀리는 곳이 바로 망바위다.
어디 이곳뿐인가? 지리산은 어느 곳이든 우리의 현대사와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아픔과 기쁨, 고난과 슬픔의 역사마저도 고스란히 안고 말없이 우뚝 솟은 산. 그래서 우린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을 안아줄 것처럼 인자하면서도 자연을 거부하는 인간에겐 때론 엄하게 체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지리산의 모습은 엄마 품처럼 그대로다. 언제 다가가도 거부하지 않고 항상 포근하게 속내를 감싸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의 계절은 해발마다 색다름으로 다가온다. 밑자락에 봄이 와도 조금만 올라가면 전혀 봄기운이 없다. 그래서 이곳 농평에서는 새벽이면 여름에도 이불을 찾는다. 봄날에 느끼는 한낮의 따스함은 더위를 느끼게도 하지만, 저녁이면 스멀스멀 찬 겨울 기운이 돈다.
▲ 하늘보다 푸르게해발마다 그 색을 달리하는 지리산의 풍경은 언어 이상의 의미를 담고있는 듯. ⓒ 윤병하
471㎢의 광활한 면적의 지리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농평 사람들도 지리산의 혜택을 누리면서 감사하며 산다. 결코 오만하지도 자만하지도 않다. 때때로 찾아온 도시 사람들의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비싼 옷은 아닐지라도, 그들은 지리산의 자연색을 벗하며 소리 없이 감사하며 산다.
▲ 고냉지 농지세석평전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높은 고지에 있으면서도 이곳엔 고냉지 농작물들이 잘 자라는 편이라고 한다. ⓒ 윤병하
▲ 올망 졸망 토끼토굴에서 나온 아기 토끼가 너무나 귀엽기만 하다. 하긴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어미 토끼가 시샘하지 않을는지…. ⓒ 윤병하
지리산이 너무 좋아 이곳에 살게 되었다는 오길환(63)씨는 언제보아도 인심 좋은 우리의 이웃 형님이다. 욕심이 없다고 했다. "보지 않으니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도 없고, 자연과 벗하며 지내니 함께하는 세상의 기쁨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며 손녀를 안고 있던 하다자(58)씨도 지리산 자랑이 대단하다.
더 이상의 물음은 그 분의 삶에 대한 간섭인 것 같아 따스한 차 한 잔에 소리 죽인다. 오늘은 정말 마음공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에 왔다는 기쁨을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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