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미행, 협박이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다?
리저 러츠의 <네 가족을 믿지 말라>
▲ <네 가족을 믿지 말라>겉표지 ⓒ 김영사
그 가족 구성원의 면모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행'으로 만나서 결혼하게 됐다. 그 후로 그들은 사람들의 비밀을 캐고 다니는 일로 먹고 산다. 단순히 그것만 한다면 특이한 일이 아닌데 그들은 그것을 '생활화'하고 있다. 어머니는 딸의 남자가 누구인지 뒷조사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슴지 않고 딸을 미행한다. 아버지는 어떤가. 전직 경찰 출신답게 그는 놀라운 자동차 추격 실력을 보여준다. 물론 그 재주를 가족에게 사용하기도 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미행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녀는 그들의 차로 가서 나이프로 바퀴를 펑크내버린다. 동생이 음모를 꾸미면 달려들어서 협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결코 평범치 않은 이십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동생 레이는 어떤가. 이제 14살인 그녀 또한 언니 못 지 않게 천부적인 미행 능력을 보여줬다. 기막히게도 6살에 미행을 성공했던 것이다.
그녀는 언니를 따라 하기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평범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미행한다. 식구들을 미행하는 건 어떤가. 그러면서 '증거'사진을 찍어서 가족을 협박해 거액의 용돈을 받는 건 어떤가. 악동 중에 이런 악동도 없다. 이 가족에서 그나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장남 '데이비드'다. 변호사인 그는 미행 같은 걸 하지도 않고 협박 같은 걸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빛나는 주인공 중에 한명인데, 그 이유는 그가 있어 가족의 특성이 더 빛나기 때문이다.
<네 가족을 믿지 말라>는 이렇듯 독특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소동으로 가득한데 그 재미가 일품이다. 사실 협박이나 미행 같은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가족 사이에 그런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마디로 보기에 불편할 법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것을 '코믹'하게 그렸기에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협박과 미행이 유쾌하면서도 경쾌하다. 더군다나 작가가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에 읽는데 불편하거나 불쾌할 일은 없다. 웃는데 바쁠 따름이다.
이런 가족들 사이에 '외부인'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네 가족을 믿지 말라>는 그것을 통해서 가족의 특이함을 최대한 부각해 즐거움을 주는데 압권은 이자벨이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왔을 때다. 이자벨은 자신의 직업을 '선생'이라고 속인다.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가족들의 직업 또한 속였다. 가족들에게도 '연기'를 부탁해놓았는데, 잘 될 리가 없다. 소동에 소동이 더해질 뿐인데 이 과정이 퍽 재밌다. 웬만한 시트콤은 흉내 내지 못할 그 소동은 자연스럽게 웃게 만든다.
'불량가족'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시작하지만 <네 가족을 믿지 말라>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며 끝을 맺는다. 결말이 진부한 것 같은가? 맞다. 그 말은 진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처럼 극단적인 소동을 거친 끝에 도달한 경우라면 느껴지는 바가 다르다. 온갖 소동을 거쳐 그것을 알았을 때는 진부하기는 커녕 감사하기만 할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웃게 만들면서 가족을 돌아보게 만드는 <네 가족을 믿지 말라>, 즐거운 소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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