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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엄마아빠 일찍 퇴근시켜 주세요"  밤 늦도록 홀로 거리 돌아다니는 아이들

[빈곤리포트①] 경기도 안산 선부동 아리랑

등록|2008.05.21 13:51 수정|2008.05.21 14:04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실종됐던 이혜진·우예슬양이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 건 올 3월이었다. 5개월간 이미 이 사건은 머릿속에서 지워졌지만 저소득 맞벌이가정의 방치 아동들은 여전히 밤늦도록 놀이터에서 논다. <오마이뉴스>는 경기도의 후원을 받아 경기도에서 가장 취약한 안산 선부동 아이들의 방임 현황을 취재했다. 앞으로 모두 4차례로 나눠 저소득 맞벌이, 한부모, 조손가정 아이들의 방임실태를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안산 선부동 저소득 계층 아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내실있는 통합보육시스템 속에 안착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말]

▲ 박상우 안산 석수초등학교 선생이 16일 오후 방과후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 및 방과후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엄마는 주점에서 주방 일을 하세요. 오후 4시에 나가면 이튿날 새벽에야 오세요. 주중에는 엄마 얼굴을 거의 못 봐요.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날엔 주무시느라 정신없고. 저는 외할머니, 친척오빠, 언니, 엄마 이렇게 살아요. 친척오빠는 고2 자퇴생인데, 지금은 스무 살이라 속이고 엄마 회사에서 '알바'해요. 그런데요, 우리 엄마 좀 집에 일찍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안산 석수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소희(11·가명)는 학교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간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 차에 몸을 싣느라 바쁘지만 소희는 마땅히 갈 데가 없다. 집에 가면 TV 보고 낮잠 자는 게 전부지만, 엄마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는다. 다른 애들처럼 피아노학원에 가고 싶다고 해도 엄마는 별 말씀이 없다. 아마도 어려운 집안살림 때문이겠지, 했다. 

선주(11·가명)네 엄마는 대형마트 계산원이다. 아빠는 반월공단 종이회사에 다닌다. 엄마는 밤 12시 넘어야 퇴근하고, 아빠는 저녁 8시쯤 온다. 선주는 밤 9시가 넘어야 저녁밥을 먹는다. 퇴근한 아빠가 찌개를 끓이는 동안 선주가 밥을 지어 함께 먹기 때문이다. 선주는 방과 후엔 늘 '나 홀로'다. 밤늦도록 집에 혼자 있으면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건 이제 지쳤다. 그래서 주로 하는 놀이는 '길거리 돌아다니기'.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재밌다. 

광호(11·가명)도 방과 후 홀로 지내기는 마찬가지다. 엄마가 밥을 차려놓고 나가시면 학교 다녀와서 혼자 먹는다. 밥맛은? 완전 별로다. 숙제도 혼자하면 재미없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채점도 못한 채 선생님께 그냥 낼 때도 많다. 

'구로동 벌집'을 닮은 옛 주택들... 인구 5.6%가 수급대상

▲ 박상우 안산 석수초등학교 선생이 16일 오후 방과후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 및 방과후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지난 16일 안산 석수초등학교에서 만난 박상우 선생님은 "안산 선부2동은 반월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부모님들이 많다"며 "삶에 찌든 어른들이 제대로 아이들을 챙길 겨를이 없기 때문에 방치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부모님의 조력을 받지 못한 채 홀로 지내는 아이들은 기초학력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며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간혹 범죄에 노출되거나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나서서 이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이 동네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의 배경이 됐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관내에서 최초로 5일장(산대장)이 섰을 만큼 북적대던 곳이다.

일제와 한국전쟁, 산업화 이후에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을 축으로 공단지대가 형성됐다.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구로공단에서 안산 공장지대로 이주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터전을 일구고 살기 시작했다.

'구로동 벌집'을 닮은 옛 주택들. 방 하나, 부엌 하나, 공동화장실 시스템의 주택들 가운데는 최대 18가구까지도 산다. 사람들은 이런 집들을 '토끼장 형태'라고 이름붙이기도 했다. 선부2동 전체주민은 2만7000명. 가구 수는 1만2249가구다. 절반 이상이 단독가구다. 독거노인의 비율이 높고, 소년소녀가정, 한부모 가정의 밀집도가 높다.

인구의 5.6%가 기초생활수급자인 선부2동은 안산에서 3번째로 수급자가 많이 사는 동네다. 월세도 안산지역에서 제일 싸다. 보증금 50만원에 월 15만원이 평균. 사정이 이러니 조금만 돈이 생기면 너도나도 떠나려는 동네가 됐다. 따라서 이주도 잦다. 전출입신고에 따른 전입학도 자주 발생한다. 엄마들은 1명이라도 더 급식비를 지원해주는 학교를 찾아 '위장전입'도 감행한다. 강남 땅 투기꾼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지만, 이 동네에도 위장전입은 있다.

"급식비 못 내요" 한 반에 1/3... 과천은 모든 초등학교가 급식비 무료

안산 선일초등학교 교사 이호득씨는 '선부동 아이들' 얘기를 꺼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공단점수 때문에 이 학교에 왔지만 학생들로부터 오히려 공동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단 하나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급식비 못내는 것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 배불리 밥을 먹었으면 하는 것이란다.

"매월 몇몇 친구들에게 봉투를 나눠주면 아이들이 벌써 눈치 채요. 급식비 내라는 청구서구나. 저도 그거 줄 때 속이 불편하지요. 그동안 누가 한 번도 묻지 않아서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우리 아이들, 급식비 안내고 밥 좀 편안하게 먹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 반에 급식비 못 내는 애들이 1/3정도 돼요. 오늘 점심에 콩나물밥이 나왔는데 어찌나 잘 먹던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따뜻한 점심 한 끼 공짜! 안 될까요?"

이웃도시 과천은 전체 초등학생들에게 무료로 학교급식이 제공된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공짜로 학교급식을 먹는다. 따라서 매월 급식비 청구서를 받아들고 선생님 눈치, 친구 눈치 보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귀가할 이유도 없다. 

공단지역 특성상 부모님들이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침밥을 굶고 등교하는 경우도 있다. 아침밥을 차려주지 못하는 부모님들은 간혹 용돈을 주시는데, 애들은 이 돈으로 학교 근처에서 불량식품이나 과자를 사먹는다. 건강에 좋을 리 없지만 애들은 그냥 먹는다.

수철(13)이와 수정(10)이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동네 소형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100만원을 받는다. 아빠는 택시운전을 하는데 월급이 40만원이다. 엄마 말로는 세금과 4대 보험 떼면 20만~25만원선이란다. 매일 2만~3만원을 벌어오지만 아빠 술값 하면 끝이다.

수철이 엄마는 아침밥은 물론 저녁밥도 못 챙겨줄 때가 많다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애들끼리 있을 때는 주로 저희들끼리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월세 35만원 내고, 수철이 학원비 5만원 내고나면 한 달이 휘청한다고 했다. 저축은 엄두도 못 내고 한달 벌어 한달 쓰기 바쁘단다. 수철이 엄마 김연실(39)씨 얘기다.

엄마들이 집을 나가버린 이유

▲ 초등학생이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유성호



"집에서 다 해줄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요. 하지만 우리처럼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한달 벌어 한달 먹고살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도움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급식비, 현장학습비 같은 것 무상지원해주면 참 감사하지요."

안양에서 끔직하게 비명횡사한 혜진과 예슬이를 생각하면 늘 불안하고 걱정된단다. 일하다가도 번뜩 우리 아이들이 지금 안전하게 있는 것일까 이상한 생각이 가슴을 엄습해오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당장 입에 풀칠하려면 하루종일 서서 하는 힘든 노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다.

"차라리 학교에 가있는 시간엔 안심이 돼요. 방과 후부터 제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각지대 시간동안이 제일 불안하지요. 저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 맞벌이, 한부모, 조손가정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다들 저처럼 불안에 떨면서 살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책임지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나라와 사회가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수철이 엄마는 그간 쌓였던 서러움과 불만을 봇물처럼 터뜨렸다. 남들처럼 척척 학원비 내고 사교육시키지 못하니 공부도 많이 떨어져 속상하다고 했다. 집에 돈이 없으면 경쟁에서 뒤진다는 게 무슨 법칙처럼 돼버렸으니 살기는 더 갑갑해졌다며 혀를 찼다.

주중에는 돈 버느라, 주말에는 애 아빠의 무능력 때문에 싸우느라 애들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고백했다. 낳아놨으니 책임은 져야 하지만, 하루 하루 지내기는 너무나 고단하고 버겁다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이 동네에 살다 도망가는 엄마들도 많아요. 살기 어려우니까. 아이들끼리 공공연히 얘기해요. 쟤네 엄마 나갔대요, 이렇게. 마트에서 일하다보면 꼬맹이들이 와서 전부 라면 사가요. 다른 동네 애들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게 해줘야 하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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