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소라껍데기로 소주 한 잔, 바다 숨소릴 듣다

[제주여행] 한라산 등반을 위해 제주행 배에 몸을 싣다

등록|2008.05.20 16:32 수정|2008.05.20 16:32

▲ 출항하기 전 배이서 찍은 유달산과 주변 풍경 ⓒ 김현


목포에서 배를 타고 5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저녁 어스름 속에 한 섬이 보입니다. 탐라 제주도입니다. 오후 2시 3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탔으니 도착시간은 저녁 7시 30분입니다.

함께 간 동료들과 배 안에서 복분자 한 잔 했습니다. 파도에 흔들거리는 선실에서 한숨 자고 책을 읽었습니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라는 책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읽을 만한 책으론 바다이야기와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기록한 글이 제격이라 생각하여 배낭 속에 넣어두었던 것입니다.

한라산 등반. 이게 제주에 간 목적입니다. 지난해부터 몇몇 사람이 계획했던 것인데 실행엔 옮겼으나 결국 등반은 하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함께 간 동료 한 사람이 몸살에 배탈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셈이지요. 대신 편하게 가볼만한 곳으로 몇 군데 들러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제주

▲ 배에서 바라본 유달산 ⓒ 김현


제주에 대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딱 두 번 있습니다. 10여 년 전 겨울과 7,8년 전 우연찮게 들렀던 주상절리입니다. 10여 년 전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 왔던 것 같습니다.

아침, 숙소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본 밖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습니다. 길가 야자수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는데, 모습이 왜 그리 색다르게 보였는지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제주라는 곳이 있다는 건 참으로 크나 큰 행복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 기억 속을 지배했던 것은 아닙니다.

차 안에서 본 눈 속 붉은 꽃입니다. 가로수 겸 울타리용으로 심어져 있어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입니다. 명자꽃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땐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해 잠시 차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솜털 같은 백설을 가득 담고 깊은 홍조를 띠며 생글거리는 꽃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처연해 보였습니다. 아마 눈 속을 뚫고 피어오른 복수초 같다고 할까요. 그러나 그 꽃들은 서로 어깨를 의지하며 무리지어 피어 있어 복수초 같은 외로움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모습 ⓒ 김현


주상절리도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곳입니다. 그땐 지금처럼 관광지로 개발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던 때입니다.

포장되지 않은 길, 홍위병처럼 서 있는 야자수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바라보이는 바다와 저 멀리 떠있는 배들이 왜 그리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절벽을 따라 내려가 해녀가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을 했습니다. 소라껍데기를 소주잔 삼아서요.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를 늘 그리워한다 - 장 콕도, '귀'

바다엔 두 개의 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도의 소리고 또 하나는 소라고둥이 내는 소리입니다. 파도 소리는 변덕이 심합니다. 기분에 따라 소리를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라는 늘 같은 소리를 냅니다. 악보도 없이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엄마처럼 자장가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때론 시인처럼 그윽한 시를 읊어주기도 합니다. 소리만 들려주는 게 아닙니다. 바다가 품은 것들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맛도 보여줍니다. 바다가 그립거나 외로운 사람은 소라껍질을 귀에 대보세요. 바다가 보이고 외로운 가슴을 달래주는 노래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 해변에서 바라본 구름 사이의 빛 ⓒ 김현


바다 내음을 기분 좋은 웃음으로 마시고 해녀의 삶을 바다에 실려 보내면서 조금 걸어 올라오면 주상절리의 그 아름다움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검은 기둥을 시샘하듯 솟구쳐 오르는 파도와 부서져 흩어지는 포말은 주상절리의 백미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건지 근래엔 그 거세면서도 아름다운 파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관광하기 좋게 길을 만들어 놓은 후론 파도의 몸짓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다가 인간의 마음을 안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잔잔한 바다만이 나그네를 맞이할 뿐 바다는 파도의 몸짓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주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들르는 곳이 주상절리입니다. '예전에 보았던 그 파도와 물보라의 몸짓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아니 소라 껍데기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바다는 가슴을 부르고, 가슴은 바다를 향해 선다. ⓒ 김현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누가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새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게 좋다 - 정호승 '바닷가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속에 그리운 섬 하나씩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섬에 자기만의 바닷가를 만들어 놓고 삶이 외롭거나 고달플 때 그 바닷가에 달려가 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바다가 언제나 기다려주는 건 아닌가봅니다. 바다는 그대로이고 싶은데 사람들이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현실 속에 또는 마음속에 섬 하나와 바다 하나쯤 지니고 사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바다에 가면 바다의 숨소릴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라고둥에서 들려오는 바다의 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