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하느님·부처님, 이 땅에 '대운하' 대신 '살림'을"

대운하 반대 '생명평화순례단' 99일만에 서울 도착... 4대 종단 여성성직자 공동기도

등록|2008.05.20 22:10 수정|2008.05.21 01:19

▲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 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입성, 한강을 따라 걷고 있다. ⓒ 남소연


▲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입성, 한강을 따라 걷고 있다. ⓒ 남소연


찬바람 부는 겨울에 길을 떠나 꽃피는 봄날 돌아왔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대운하 반대 생명평화순례단'이 20일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지난 2월 12일 김포 한강 하구를 떠난 지 99일 만이다. 그동안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등을 따라 걸었다.

그 사이 얼었던 강은 몸을 풀었고, 꽃은 피고 졌고, 다시 피고 있다. 그리고 강산은 푸르게 바뀌었고, 99일 동안 이 땅을 걸었던 순례단의 얼굴은 검게 그을렸다.

4대 종단 여성성직자들의 기도 "죽임의 굿판 대신 살림의 굿판을"

서울에 도착한 순례단을 맞이한 건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여성 성직자들이었다. 이들 4대 종단 여성 성직자 300여 명은 서울 한강시민공원 잠실선착장 옆 잔디밭에서 순례단을 맞이했다. 그리고 각자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함께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과 소태산 대종사님의 마음에 연하여 오늘 4대 종단의 종교 여성이 일심으로 간구하오니, 부디 이 땅에서 죽임의 굿판 대신에 신명나는 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종교를 초월한 이들의 기도 소리는 작게 한강변으로 퍼졌다. 두 눈을 감은 원불교 성직자가 있었고, 두 손을 모은 수녀가 있었다. "나무아미타불"과 "아멘"이 동시에 나왔다.

"이제 4대 종단의 종교여성들이 가부장적 개발의 망령에서 벗어나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가 한 데 어우러지는 후천개벽의 새 세상을 열기로 결단하오니, 모쪼록 이 믿음의 싹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지키고 돌보아 주십시오. 받들어 비옵나니, 당신의 뜻이 이뤄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아멘."

▲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입성, 한강을 따라 걷고 있다. ⓒ 남소연


공동 기도회에 앞서 각 종단의 대표자들은 짧은 '말씀'을 순례단에게 전했다.

김인경 원불교 교무는 "이 강산은 우리들만의 국토가 아니라 후세에게 물려줘야 할 국토이고, 강은 우리의 젖줄이고 생명의 근원이다"며 "순례단의 99일 발자취가 상생과 화합 그리고 모든 생명이 더불어 다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결실이 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유근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양성평등위원장은 "현 정권이 국민의 마음과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큰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교의 도연스님은 "강을 살리는 일은 나와 너 모든 생명들이 함께 살기 위한 거룩한 행위"라고 짧게 말했다. 

오순복 마리아 수녀(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사무국장)는 "뒤엎는 발상을 개인도 아닌 국가가 하고 있다"며 "그것도 하느님을 믿는 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입성, 한강을 따라 걷고 있다. ⓒ 남소연



이런 4대 종단 여성 성직자들의 격려와 지지 발언에 순례단장을 맡고 있는 이필완 목사는 "무지하게 아름답다, 대단히 아름답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 목사는 "99일 동안 기도를 하며 걸었다"며 "하지만 운하 반대 여론이 높음에도 이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다소 맥이 풀린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명평화순례단 오는 24일 대장정 마무리

이어 이 목사는 "(운하 반대운동은) 돌 들고 싸우는 일이 아닌 종교인들이 책임지고 앞장서서 풀어가야 할 일"이라며 "더 부지런히 겸허하게 나아가며 기도를 하자"고 밝혔다.

또 이날 현장에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 이미경 의원, 조승수 전 의원 등도 찾아와 순례단을 격려했다.

손학규 대표는 "오늘 오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이제 운하를 접으라'고 말했더니 '이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더라"며 "그 말이 '이제 운하를 안 하겠다'는 말인지 '내 마음대로 계속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순례단에게 전했다.

이어 손 대표는 "그동안 함께 걷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이번 운하 반대운동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가 한 단계 품격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2월 전국 국토순례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이 20일 서울에 도착하자,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 이미경 의원, 조승수 전 의원 등이 4대 종단 여성성직자 공동기도회에 참여해 순례단을 격려하고 있다. ⓒ 남소연


짧은 기도회를 마친 순례단과 4대 종단 여성 성직자들은 한강을 따라 동호대교까지 도보행진을 벌였다. 일렬로 걸은 이들의 행렬 길이는 약 1㎞에 달했다. 한강변에서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를 하던 많은 시민들은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순례단은 오는 24일 서울 잠수교에서 보신각까지 걷는 '생명과 평화의 강 모심 대행진'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