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아픈 기억도 '아름답다'
보리밭을 거닐며 옛 추억에 잠기다
보리가 익어간다. 푸르기만 했던 청 보리밭이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고 아침 바람에 넘실거린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농부가 금방이라도 나타나 보리를 몽(덧말:夢)땅 베어 버릴 것만 같다.
▲ 보리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보리 ⓒ 임재만
이때는 나물이며, 나무껍질 등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모두 먹어야 했던 매우 배고프고 힘든 시절이었다. 먹을 것이 얼마나 없었으면 어린 보리 싹을 잘라 죽을 끓여 먹었을까! 그래서 굶주림에서 벗어나 배부르게 잘 살아 보려고 '새마을운동'이라는 국민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되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촌에서는 마을마다 풀을 깎아 퇴비를 만드는 퇴비증산운동이 한창이었다. 비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모자란 식량을 증산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날마다 풀을 깎아 마을 한구석에 풀 더미를 쌓아 놓곤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꾸 풀 더미가 가라앉아, 마을 사람들에겐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느 마을이 풀 더미를 더 크고 높이 쌓았는가에 따라 정부(면)에서 심사하여 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풀 더미 높이가 자꾸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육지책으로 풀 속에 넣었던 것이 바로 보리 짚이다. 보리 짚을 풀 더미 안에 넣고 쌓으면 풀 더미가 바로 주저앉지 않고 오래 모양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정당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일등을 해보려는 애향심으로 그런 묘안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렇게 전국방방곡곡의 마을에서 시작된 퇴비증산운동이 땅을 기름지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 않게 되었나 생각된다.
그리고 요즘 별식으로 먹는 밀가루 음식을 그때는 참으로 많이도 먹었다. 개떡, 수제비, 칼국수 등등, 저녁에는 아주 메뉴가 칼국수 아니면 수제비로 고정되었고, 밥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 보리오월의 보리밭 모습 ⓒ 임재만
또 이때는 모기가 많아 모기를 쫒기 위해 모깃불을 가끔 피웠는데, 젖은 보리 짚을 태우며 모락모락 피어나는 매운 연기 속에서 맛있게도 먹었다. 하지만 지금 어느 곳에서도 옛날의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아마도 보릿고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카메라를 메고 길을 나서면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저런 많은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관심은 또한 발전의 기회가 되어주기도 한다. 풀한 포기 흙 한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오월이면 왠지 고향이 더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유포터 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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