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그루의 해송에서 느끼는 더불어 사는 삶
기장군 일대로 문학기행을 떠나다
▲ 여섯 그루의 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자라는 기장죽성리해송입니다.해송이 보여주는 것처럼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는 듯해요. 전경이 좋아요... ⓒ 김순희
▲ 오월 햇살아래 고즈넉한 해안가 마을 전경!그 주위로 두모포진성과 죽성리왜성, 황학대, 해송이 있어요. ⓒ 김순희
▲ 기장죽성리왜성입니다.짚으로 덮혀진 곳은 예전에 우물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세 군데가 있었는데 현재 두 군데만 있고, 나머지 한 곳은 못 찾았다고 합니다. ⓒ 김순희
▲ 왜성을 둘러보고 있습니다.장기간 주둔하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괴롭혔을까.... ⓒ 김순희
▲ 윤선도가 자주 오른 황학대에서 바다를 바라봅니다.조용하고 마음이 넉넉해옵니다. ⓒ 김순희
▲ 왜성과 해송, 생각하면 좀 이색적인 푯말입니다.떠올리고 싶지 않은 왜성과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전해주는 해송이 그 갈길을 알리고 있습니다. ⓒ 김순희
▲ 대변항 어물전!오월 햇살 아래 노곤함을 달랩니다. ⓒ 김순희
그렇게 넓은 터는 아니지만 저 멀리 바라다 보이고, 가까이 작은 어선들이 다니는 아주 평화로운 해안마을. 강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시조 '어부사시사'가 생각났습니다. 일행은 '황학대'에서 잠시 고산 윤선도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고 '죽성리왜성'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죽성리왜성'은 1959년 일본이 장기간 주둔한 곳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았습니다. 그때 일본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보았을 사람들의 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왜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죽성리해송'을 향했습니다.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온 6그루의 소나무가 한 곳을 향해 자라면서 그 모습은 마치 한 그루의 소나무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놀랄 만한 천연기념물이며, 수령은 약 250년~300년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 대변항의 명물! 멸치회!점심은 우럭매운탕에 멸치회 한 그릇입니다. ⓒ 김순희
이 척화비는 원래 대변항 방파제 안쪽 동해 바다가 굽어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항을 넓히면서 일본 관리들이 비를 뽑아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후 1949년경 마을의 청년들이 인양하여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 삼성대!고산이 기장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고산유고에 나와 있는 지명입니다. ⓒ 김순희
그동안 인근에 접해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유적들을 보고 난 후, 점심은 우럭매운탕과 멸치회였습니다. 모처럼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문학기행이라는 색다른 느낌도 들고, 참여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 현장!그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 김순희
현재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의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의 한가운데쯤에 있어서 그 곳을 지난다면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 윤선도는 자신을 찾아온 동생과 만난 뒤, 헤어지면서 멀리 떠나가는 동생을 바라보았다는 곳이었습니다.
▲ 해순이가 살았다는, 일부분만 남았어요!소설 속 배경을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 김순희
있어도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라면 뭔가 머릿속이든 마음속이 가득 하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회원들은 말이 없습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회원님의 문학을 향한 그 길에 오월 햇살처럼 따뜻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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