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늙은이, 이젠 사라져야 할 말"
참 용감한 예순 넘긴 경비아저씨들
"강도야! 강도야!"
자정을 넘긴 시간. 절박한 여자의 외침이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렀다. 순찰을 돌던 경비원 이상용(남·67)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달렸다. 순간, 캄캄한 시야 속으로 달음박질치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가 싶더니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한밤중 아파트 광장에서 도망치는 강도용의자….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려가 잡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두려움도 잠시. 이미 이상용씨는 강도용의자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몇 걸음 내달리지도 않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나이 탓이려니 싶다. 손만 내 뻗으면 잡힐 듯 강도용의자가 바로 앞에서 달리고 있다. 불끈하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눈앞의 강도용의자가 땅바닥으로 '퍽' 하고 엎어졌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이상용씨가 재빠르게 땅바닥에 엎어진 강도용의자를 제압하는 순간. 동료경비원 둘이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강도용의자와 어떻게든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경비원들. 잠시의 격투 끝에 결국 강도용의자는 예순을 넘긴 노인 경비원 셋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지난 4월 29일 자정쯤. 김포시 감정동 소재 S아파트에 거주하는 정아무개씨는 늦은 귀가에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걷고 있던 정씨는 순간적으로 누군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정씨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뒤를 따르는 발걸음도 당연히 빨라지는 듯했다. 두려움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호흡도 가빠졌다. 뛰다시피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정씨의 눈에 멀리 초소가 보였다. 날렵한 손길이 정씨의 어깨를 스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정씨는 죽을힘을 다해 내달리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강도야! 강도야!"
결국 정씨의 핸드백은 경비원 이상용(67)·김희경(62)·김용부(64)씨에 의해 무사했고, 강도용의자 김아무개씨는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20여 일이 지났음에도 당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부탁에 세 분 경비아저씨들은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당시 사건을 들려주신다.
이야기를 하시는 간간이 새삼 두려움이 엄습하는 듯 고개를 내젓기도 하신다. 당연하다 싶은 것이 상대는 강도용의자이다. 혹여 자신들이 신체상의 어떤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나 예순을 넘긴 경비원들은 자신들에게로 행해질 수 있는 그런 위험까지도 감수하며 오로지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강도용의자에게 달려든 것이다.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경비원 이상용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안 두려웠겠어요? 그러나 경비원의 임무는 주민의 안전이 최우선 아닙니까"라며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두려움을 잊게 만든 것 같습니다."
강도를 붙잡아 초소에 가두고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10여 분 동안 강도는 달아나기 위해 쉼 없이 몸부림을 쳤다. 그 와중에 강도용의자의 발길에 차여 허벅지에 부상까지 당한 김희경씨.
"초소 문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제 허벅지를 발로 걷어차며 도망치려 했어요. 당시엔 너무 긴장해서인지 아픈 줄도 몰랐는데 그 후 얼마간 고생 좀 했지요. 그래도 전 이 상처가 자랑스럽습니다."
사건 이후 주민들의 감사인사에 요즘엔 더 힘을 내 아파트 경비를 선다는 김용부씨.
"안양어린이 사건이나 또 일산 초등생 폭행 및 납치미수사건 등 흉흉한 사건이 터지고 나서 우리 경비원들은 하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아파트 27개 동을 15명의 경비원이 담당하다 보니 자연 경비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고 더러 주민들의 원성을 사는 일도 있지요. 그렇지만 이번 일로 인해 우리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달라졌어요."
세 분의 경비원이 근무하는 김포시 감정동 소재 S아파트는 지은 지 8년째 되는 아파트로 방범체계가 다소 미흡해 경비원들이 늘 분주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긴 하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경비원들은 15층 아파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발품을 팔아야 한다. 1786세대의 안전이 15명 경비원들에게 오롯이 달렸다 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이상용·김용부·김희경씨는 김포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감사장을 받은 소감에 대해 세 분은 입을 모은다.
"더없이 영광입니다. 사실 나이 들어서 경비 일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고된 만큼 보람도 크지요. 거기다 훌륭한 일 했다며 서장님께서 감사장까지 주시니 요즘 아주 살 맛 납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터로 나와 다음 날 새벽 5시 30분까지 꼬박 24시간의 아파트 경비 근무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예순을 넘긴 이 세 분의 경비원들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말씀하신다.
"뒷방 늙은이라는 말, 이젠 사라져야 할 말입니다. 노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일하는 즐거움은 아마 나이 든 사람들일수록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일을 하면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좋고, 또 자식들에게는 떳떳한 부모가 될 수 있어 좋고, 또 건강에도 좋고 그러다 보니 삶 자체가 그저 즐겁지요. 일하는 즐거움…, 그게 바로 행복 아니겠습니까."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유? "일하는 게 즐겁고 그 즐거움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란다. 하물며 그 단순한 사실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망각하고 사는 것 같아 때론 안타깝기도 하다는 세 분 경비아저씨. 검게 그을린 아저씨들의 구릿빛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하얀 웃음에 행복은 참 가까이에 있음을 새삼 느낀다.
자정을 넘긴 시간. 절박한 여자의 외침이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렀다. 순찰을 돌던 경비원 이상용(남·67)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달렸다. 순간, 캄캄한 시야 속으로 달음박질치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가 싶더니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몇 걸음 내달리지도 않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나이 탓이려니 싶다. 손만 내 뻗으면 잡힐 듯 강도용의자가 바로 앞에서 달리고 있다. 불끈하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눈앞의 강도용의자가 땅바닥으로 '퍽' 하고 엎어졌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이상용씨가 재빠르게 땅바닥에 엎어진 강도용의자를 제압하는 순간. 동료경비원 둘이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강도용의자와 어떻게든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경비원들. 잠시의 격투 끝에 결국 강도용의자는 예순을 넘긴 노인 경비원 셋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지난 4월 29일 자정쯤. 김포시 감정동 소재 S아파트에 거주하는 정아무개씨는 늦은 귀가에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걷고 있던 정씨는 순간적으로 누군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정씨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뒤를 따르는 발걸음도 당연히 빨라지는 듯했다. 두려움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호흡도 가빠졌다. 뛰다시피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정씨의 눈에 멀리 초소가 보였다. 날렵한 손길이 정씨의 어깨를 스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정씨는 죽을힘을 다해 내달리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강도야! 강도야!"
▲ 노익장으로 한밤 중 강도용의자를 현장에서 제압한 경비아저씨들. 좌로부터 김희경(62), 김용부(64), 이상용(67)씨 ⓒ 김정혜
결국 정씨의 핸드백은 경비원 이상용(67)·김희경(62)·김용부(64)씨에 의해 무사했고, 강도용의자 김아무개씨는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20여 일이 지났음에도 당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부탁에 세 분 경비아저씨들은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당시 사건을 들려주신다.
▲ 이상용(67세)어르신 ⓒ 김정혜
그러나 예순을 넘긴 경비원들은 자신들에게로 행해질 수 있는 그런 위험까지도 감수하며 오로지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강도용의자에게 달려든 것이다.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경비원 이상용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안 두려웠겠어요? 그러나 경비원의 임무는 주민의 안전이 최우선 아닙니까"라며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두려움을 잊게 만든 것 같습니다."
▲ 김희경(62세)어르신 ⓒ 김정혜
"초소 문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제 허벅지를 발로 걷어차며 도망치려 했어요. 당시엔 너무 긴장해서인지 아픈 줄도 몰랐는데 그 후 얼마간 고생 좀 했지요. 그래도 전 이 상처가 자랑스럽습니다."
사건 이후 주민들의 감사인사에 요즘엔 더 힘을 내 아파트 경비를 선다는 김용부씨.
▲ 김용부(64세)어르신 ⓒ 김정혜
세 분의 경비원이 근무하는 김포시 감정동 소재 S아파트는 지은 지 8년째 되는 아파트로 방범체계가 다소 미흡해 경비원들이 늘 분주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긴 하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경비원들은 15층 아파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발품을 팔아야 한다. 1786세대의 안전이 15명 경비원들에게 오롯이 달렸다 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 이번 일로 어르신들은 김포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좌로부터 이상용어르신, 김포경찰서 노혁우서장, 김희경어르신 ⓒ 김정혜
이번 사건으로 이상용·김용부·김희경씨는 김포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감사장을 받은 소감에 대해 세 분은 입을 모은다.
"더없이 영광입니다. 사실 나이 들어서 경비 일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고된 만큼 보람도 크지요. 거기다 훌륭한 일 했다며 서장님께서 감사장까지 주시니 요즘 아주 살 맛 납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터로 나와 다음 날 새벽 5시 30분까지 꼬박 24시간의 아파트 경비 근무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예순을 넘긴 이 세 분의 경비원들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말씀하신다.
▲ 일하는 즐거움이 곧 행복이라며 오래 오래 경비일을 하고 싶다는 어르신들. ⓒ 김정혜
"뒷방 늙은이라는 말, 이젠 사라져야 할 말입니다. 노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일하는 즐거움은 아마 나이 든 사람들일수록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일을 하면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좋고, 또 자식들에게는 떳떳한 부모가 될 수 있어 좋고, 또 건강에도 좋고 그러다 보니 삶 자체가 그저 즐겁지요. 일하는 즐거움…, 그게 바로 행복 아니겠습니까."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유? "일하는 게 즐겁고 그 즐거움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란다. 하물며 그 단순한 사실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망각하고 사는 것 같아 때론 안타깝기도 하다는 세 분 경비아저씨. 검게 그을린 아저씨들의 구릿빛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하얀 웃음에 행복은 참 가까이에 있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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