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힘강당을 메운 사람들. ⓒ 한미숙
▲ 강당이 꽉 차자 영상실에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 한미숙
"5월 20일 대전에 꼭 가야 한다고 정신이 몸에게 명령하고 몸이 들었다."
충남대학교에서 진행된 대전 인문학 포럼 <인문학에서 미래를 보다>에서 연사로 나온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씨는 한 주 전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일주일 후 대전에 가야 한다는 의지를 몸에게 말했다고 한다. 실은 날짜를 일주일 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한 주 동안 불편한 몸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문학이 삶의 방법이라고 느낀 것, 주워들은 우화 같은 것과 문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왔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삶의 나누기가 더 적합할 듯싶습니다."
몸이 정신의 말을 들었다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말문을 연 그는 '문학의 힘'이 어떻게 우리에게 호소하고 감동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제시하는지, 그리고 왜 문학이어야 하는가를, 어느 가을 날 노틀담 성당 앞의 거지소녀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저는 눈이 안 보이니 도와주십시오'라는 푯말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던 소녀에게 사람들은 아무도 돈을 놓고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어떤 남자가 다가와 '잠깐 푯말을 내게 주겠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난 후 지나가던 사람들은 소녀에게 돈을 주거나 힘내라는 인사까지 하고 가는 것이다. 소녀가 궁금해서 '어떤 말을 적으셨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고 갈까요?'라고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저는 당신들이 즐기는 이 아름다운 가을날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적었을 뿐이라고 말했단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왜 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문학은 지긋지긋하다"라고 답한다고 한다. 아마 논술의 영향과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물음에 위의 사소한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문학이란 무엇일까?'에 답을 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가을날을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글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 그래서 선생의 역할은 사실만 전달해서는 안 된다. 장영희 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작품 분석한 것을 읽다보면 줄거리만 써 놓은 경우를 흔히 본다고 한다.
"예전엔 영어 발음이나 문법이 조금 허술해도 학생들이 분석해놓은 것을 보면서 '아,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내가 배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를 보고 줄거리 흡수만 합니다."
"컴퓨터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며 바보스러운 정보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합니다. 나의 정신건강과 지식함양에 별로 필요 없는 정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연예인들의 몸에 관한 것들이 참 많아요."
그는 컴퓨터에 시간을 많이 내기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자신이 책과 익숙했던 어린시절을 얘기했다. 영문과 교수로 공부하면서 '읽고 쓰는' 삶은 어릴 때부터 책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는 한옥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이웃들이 그리 넉넉지 않았어요. 우리도 형제들이 단칸방에서 지냈는데 한쪽에선 놀기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동생이 똥을 싸기도 했어요. 학자인 아버지는 그 좁은 방에서 등을 돌리고 앉은뱅이 책상에서 항상 뭔가를 읽고 쓰셨어요. 책이 자주 눈에 띄던 환경에서 나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읽고 쓰면서 살겠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장영희 교수는 찰스 디킨스 소설 <어려운 시절>의 내용을 얘기하면서 사실과 숫자만을 강조해서 가르친 인생이 얼마나 감옥 같은 삶을 살게 되는지를 들려줬다.
그는 자신이 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칼럼에서 '문학의 힘'이라는 글을 읽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유방암과 척추암으로 힘들었던 자신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글이었다. 그 일부를 싣는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 목발을 짚고 강의를 들으러 온 대학원생 조순영씨 (현대문학). ⓒ 한미숙
2008년 1학기 무료강좌인 '대전 인문학 포럼'은 2005년 4월 1회를 시작으로 현재 40회에 이르고 있다. 충남대학교과 대전시가 후원하고 인문대학, 인문과학연구소가 주관하며 격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인문학 포럼은 대학이 인문학을 활성화 하고 시민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는 필요와 공감으로 시작되었다.
다음 41회 강좌는 6월 3일(화) 김갑수(문화평론가)씨의 '두 개의 생'이라는 주제가 이어진다. 시간은 오후 2시~4시이고 장소는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문원강당에서 있다.
▲ 프로그램 안내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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