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쌀' 지어 북녘동포·우리집 밥상 함께 살리세
안동 '통일 쌀 모내기 체험 행사' 참가기
▲ 통일쌀로 맺을 모이 모가 그 빛깔만큼이나 싱그럽고 튼실하게 알곡으로 익어 북녘 동포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은 겨레의 화해와 상생으로 이어지리라. ⓒ 장호철
5월 중순을 넘기면서 경북 안동시 외곽의 논밭에도 모내기가 한창이다. 안동시 송하동 '솔밤다리’(송야교)에서 봉정사로 들어가는 송야천 옆 왕버들 고목 그늘에 하얀 찔레꽃이 소담스레 피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이 나무그늘에 인근의 농민·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자리 잡은 농민들은 드럼통을 잘라 만든 숯불화덕 위에다 철망을 얹고 이날 잡았다는 돼지고기를 수북이 올려놓았다. 왕버들에서 떨어진 포자들이 눈처럼 날리는 가운데, '통일 쌀 모내기 체험행사'가 시작되었다.
▲ 숯불구이행사를 위하여 농민들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 장호철
▲ 리플렛통일쌀 짓기 홍보 전단 ⓒ 장호철
대구 경북에서의 통일 쌀 짓기는 참가자 2만 명을 목표로, 1회 1구좌 1만원 모금사업 형식으로 꾸려가게 된다. 7만평의 통일 경작지를 확보해 참가자들이 모내기, 추수 등의 체험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수확한 쌀의 반(45톤 예상)은 신청자에게 햅쌀(1구좌 1.5Kg)로 나눠주고, 반(50톤 예상)은 북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천 평 논을 기준으로 해서 평균 17가마(1가마 80Kg)를 수확한다고 가정하면 7만 평이니 1190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
이 양은 모두 95톤쯤으로 추정할 수 있고 금액으로 환산(가마당 17만원)하면 약 2억 원에 이른다. 수확한 쌀은 11월께 북녘 동포에게 보낼 계획이다.
간단한 약식 행사를 거쳐 돼지고기와 막걸리, 떡을 들며 안부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숯불로 기름을 싹 뺀 돼지고기는 썩 맛이 좋아서 농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들도 연신 나무젓가락을 분주히 놀리고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 몇이 다리를 걷고 신발을 벗은 뒤 '통일 쌀 경작지'라는 현수막이 쳐진 도로 아래 무논에 들어갔다.
이날 모내기 체험 행사를 벌일 논은 이수갑 안동농민회장(53)이 경작하는 논인데 이앙기 작업을 부러 하지 않고 남겨둔 곳이다. 이수갑 회장은 트랙터로 작업 구역을 고르는 등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빨강, 파랑, 주황의 원색 옷을 입은 시민 몇 사람이 논에 들어가자 논이 꽉 차 보인다.
▲ 펼침막통일쌀 경작지 위 길가에 걸린 펼침막 ⓒ 장호철
▲ 모내기통일쌀 모내기 체험행사가 시작되었다. ⓒ 장호철
▲ 이앙이수갑 안동농민회장이 이앙기로 반대편에서 모를 내고 있다. ⓒ 장호철
그이가 걸친 조끼 등판에 인쇄된 'NO FTA'라는 글귀에서 'TA'가 지워져 있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한미 FTA 반대 투쟁의 흔적이다. 한미 FTA 문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비준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의심 받는 쇠고기 수입 문제가 전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면서 빛이 바랜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장차 이 땅과 농민들에게 미칠 파장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하다.
막걸리를 기울이면서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전날 치른 5·18 기념 주먹밥 나누기, 광우병 쇠고기 전면수입 반대 촛불문화제, 민심과 역행하는 정부 정책, 대운하를 거쳐 대북정책을 넘나든다. 섣부른 대북 관련 발언으로 야기된 남북 관계 경색과 식량 지원조차 옹색하게 된 상황에 대한 비판도 예외는 아니다.
▲ 통일쌀 짓기 모를 내는 농민의 뒷주머니에 전단이 꽂혀 있다. ⓒ 장호철
설움 중에 가장 큰 게 '배곯는 설움'이라 한다. 그래서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 라고 말하는 형식을 통하여 그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생존은 물론이거니와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며 출발점이다. 굶주림은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기본 감정조차도 뛰어넘게 하는 극한의 경험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북한의 식량부족을 예고한 이래 UN세계식량계획은 북한이 지난해 여름의 폭우로 곡물 생산량이 급감, 외국의 지원이 없을 경우 대량의 아사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등허리가 서늘한 느낌을 받은 것은 그 같은 이유에서다.
기관에 따라 부족량 추정은 다소 엇갈리지만, 식량부족이 심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가운데 지난 16일 미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는 50만 톤 규모의 대북 식량지원 계획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2005년 말 중단됐던 대북 식량지원을 2년 반 만에 전격 재개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 정부는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약 120만 톤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나 뉴스는 아니지만,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은 90년대 중반의 아사 상황으로 재연될 수도 있는 수준이라 한다. 다소 눅어지긴 했지만 현재 우리 정부는 '지원 요청 선결'이라는 조건에 발목을 잡혀 있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인도적 지원'이란 조건이 없어야 한다. 그 지원의 목적이 인도적이라면서 서툰 조건을 붙이는 것은 지원의 진정성만 훼손할 뿐 남북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 냉전적 보수세력에게 영합하는 형식의 ‘선결 조건’은 결국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만 일조할 뿐이다.
1847년, ‘아일랜드 대기근’(The Great Hunger)으로 800만 인구 중 150만 명이 굶어죽어 갔지만,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인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영국에 대한 저주와 증오의 역사로 남았다. 우리의 경우와 반드시 같지는 않지만 그 역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 NO! FTA조끼 등판에 새겨진 'NO! FTA' 구호가 외롭다. 논을 한 바퀴 돌아보는 농민의 어깨는 무겁고 안쓰러워 보인다. ⓒ 장호철
모내기는 한 차례 휴식을 거치면서 쉬엄쉬엄 진행하였지만, 4시께 끝이 났다. 안동시 농민회가 확보한 통일쌀 경작지는 모두 2천 평. 이제 시작 단계여서 아직 시민들의 참여가 많지 않아 아쉽다. 이 사업이 목표로 하고 있는 ‘식량과 농업의 위기 극복’과 ‘대중의 통일에 대한 인식 제고’는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질 터이니 말이다.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세계의 식량 위기를 다룬 프란시스 라페의 저작 <굶주리는 세계>(창비, 2003)의 결론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한쪽은 먹을 것으로 가득한 반면 다른 한쪽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이 모순적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분명 먹을 것이 모자라서는 아니다. 지금 세계는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 자연재해 탓도 아니다. 굶주림의 원인은 식량과 토지의 부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이다."
라페의 결론을 한반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를 '미래에 대한 의지', 즉 '평화와 통일의 의지'로 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통일 쌀'이 지어내는 것은 따뜻한 한 끼 밥이면서 동시에 갈라진 겨레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화해와 상생의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연맹에서 마련한 통일쌀 짓기 모내기 행사는 5월 27일 오전 10시, 의성군 봉양면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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