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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화려한 레토릭' 못 믿겠다

[주장] 인적 쇄신 없는 사과는 하나마나

등록|2008.05.22 19:19 수정|2008.05.22 19:19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담화에서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라며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고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 사과는 '화려한 레토릭(웅변술)'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취임식 때도 국민을 모시는 '머슴'으로 일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 '땅부자' 수석으로 민심과 동떨어진 파행인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나마 파행인사에서 그쳤으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는데, 부적절한 처신과 불법이 드러난 장관과 수석들이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는데도 그들을 감싸고 돌보며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담화 첫머리에 ‘경제만은 반드시 살려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취임 석 달 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 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고 있는데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걸 보니 당혹스럽더라고 말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경제를 살리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취임식이 끝나기 무섭게 부시 대통령을 만나러 갈 게 아니라 국내 경제 동향을 살펴보고 물가를 잡기 위한 대책을 내놨어야 했기 때문이다. 광우병 괴담 역시 한나라당이 주범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국민 기만술이 여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이어 부모님들께서도 걱정이 많았을 것이라면서 학부모들을 걱정했는데,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물귀신 작전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국민과 학생들의 생명권 보장을 허술히 했고, 경찰과 교육기관을 동원, 학생들에게 부여된 집회의 자유마저 빼앗으면서 부모들의 걱정을 걱정하는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추가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을 보장받았다고 하는데 광우병이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에 대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조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이번 담화는 '임기웅변'이요, '국민기만'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진솔한 사과였다면, 인적 쇄신 의지도 밝혔어야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국정과 인적 쇄신 의지도 함께 발표했어야 했다. 그런데 전 정권을 탓하는 대목은 있어도,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거론되고 있는 '강부자 내각'과 '땅부자 수석'들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어 유감이다.

본심이야 어디에 있든,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는 이 대통령을 '의리의 돌쇠'로 봐주고 싶다. 하지만, 의리로 풀어갈 수 없는 게 국정이고 나라 살림이 아니겠는가.

"모두 저의 탓"을 달리 생각하면 모든 책임은 대통령 자신이 질 터이니 문제가 있는 장관과 수석들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라는 얘기로도 해석되는데, 대통령의 한 마디가 곧 법이었던 유신 시절이 떠올라 불안하기까지 하다.

국제 원자재 값 상승으로 고물가 시대로 접어든 요즘, 경제가 살아나려면 이 대통령의 도덕성과 정직성을 회복해서 실정법을 위반했거나 몰염치한 짓을 저지른 측근들을 물갈이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적극대처', '엄정수사', '현장지도' 등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막으려는 경찰과 교육 당국의 힘이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권력에서 나왔으므로 '쇄신'이 빠진 사과는 하나 마나였다는 생각이다.


전 정권에 책임 전가하는 이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담화문 중간에서 "지난 10년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동안, 우리 경제는 그 흐름을 타지 못했습니다"라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구차한 변명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다면 취임 이후 무역수지가 매달 적자를 기록하는 것도 전 정권 탓이라는 것인지… 이 대통령 주장대로라면 후보시절 무슨 일이 있어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하긴 도곡동 땅을 비롯한 수많은 부동산 투기 의혹과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모진 난관(?)을 뚫고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점을 생각하면 그 정도 떠넘기기야 조족지혈로 볼 수도 있겠지만….

지난 정부가 세계 경제의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에 경쟁국들은 턱밑까지 쫓아왔고 선진국들과의 격차는 벌어졌다는 대목은 이 대통령의 기억력을 의심하게 한다. 임기 동안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 달러 보유 세계 4위 국가로 만든 정부에 대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타지 못했다니 무식한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그야말로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라고 했는데,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대운하 공사 추진과, 혁신도시 건설 등을 보면 지난 10년 동안 쌓아놓은 경제를 까먹는 길로 가는 분기점에 서 있는 것 같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지금 세계 경제는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원자재 값 상승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는데, 군부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권언유착 등이 불러온 외환위기는 김경준에게 사기당한 것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대통령은 담화를 마치며 국정 초기 부족했던 점은 모두 자기 탓이라며 "앞으로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께 다가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경찰력을 총동원해가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대통령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말로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할 게 아니라 집회에 참석하는 학생과 직장인들을 감시하고 막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부터 보장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실용'을 외치고 출발한 이명박 대통령은 전 정권이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면서 받아들일 것은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좌파정권이 어떻고 미국과 관계 회복이 어떻고 하는 뜬구름 잡는 식의 선동정치를 계속한다면 국민과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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