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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장군님' 미소에 마음을 두고 오다

강화 마니산엔 장군봉이 있고, 그곳에 '장군바위'의 미소가 있다

등록|2008.05.23 09:50 수정|2008.05.23 14:35
뒷산의 맑은 새소리가 산행을 부추긴다

▲ 마니산 장군봉 정상의 기기묘묘한 바위. 마니산을 지키는 장군님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 전갑남


이른 아침, 감자밭 고랑을 매기 시작했다. 감자밭 김을 이번에 잡아놓으면 풀과의 씨름은 끝날 것 같다. 감자꽃이 피고, 밑이 들기 시작하면 풀 자라는 것은 겁나지 않다.

밤늦게까지 울어대던 개구리소리가 잠잠하다. 목청껏 노래를 불렀으니 지치기도 했으리라. 뒷산에서 휘파람새가 목청을 다듬는다. 무슨 신나는 일이 있어 아침부터 휘파람을 불까? "구구구우! 구구구우!" 산비둘기도 휘파람새 소리에 맞장구를 친다.

나를 부르는 건가? 쉴 새 없이 들리는 새소리 유혹에 김매는 일이 짜증난다. '그래 산에 오르자! 밭일이야 내일 하지 뭐!'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집 뒷동산 마니산에나 올라보자. 어떤 녀석들이 불러대는지 가까이 만나보자. 신록이 뿜어내는 맑은 기운을 받고 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함께 할 길동무가 없을까? 옆집아저씨가 생각났다. 아저씨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산길을 걸으면 얻는 게 많다. 아저씨는 세상사는 이치며 내가 모르는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마침 밭에서 아저씨도 일을 하고 계신다. 아저씨께 여쭈었다.

"아저씨, 오늘 바쁘셔요?"
"뭐 좋은 수 있남?"
"저랑 장군봉이나 오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왜 밭일 안하고?"
"만날 밭일에만 매달리나요."
"그래 맞아. 가끔 쉬기도 해야지. 장군봉? 좋지! 장군님의 미소를 또 보겠구먼."

산에 가자면 마다할 아저씨가 아니다. 막걸리 한 통에 마른 오징어 한 마리, 그리고 떡을 준비했다. 간단히 배낭을 꾸려 발걸음 가볍게 출발했다.

고샅길을 따라, 나무꾼이 나무하던 길을 따라

민족의 영산이라는 마니산. 마니산은 전국적으로 기(氣)가 가장 세기로 유명하다. 정상에는 단군께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유서 깊은 참성단이 있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마니산 산행은 우리 동네 화도주차장에서 오르거나 정수사·함허동천 쪽의 왼쪽 능선을 타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오른쪽 능선에 있는 장군봉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정상에 표지석이 없으니 '장군봉'이란 이름도 생소할 수밖에. 요즈음 마니산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늘고부터 장군봉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 우리 동네에서 올려다 본 마니산 장군봉이다. 왕복 2시간 남짓 산행으로 아주 좋다. ⓒ 전갑남


아저씨한테는 우리 동네 뒷동산인 장군봉이 놀이터나 다름없다. 이른 새벽엔 운동 삼아 오르고, 또 틈이 나면 심심해서 오른다.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길을 개척하여 타기도 한다. 그야말로 마니산 장군봉은 아저씨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봄에는 진달래 꽃구경을 가고, 각종 산나물을 뜯기도 한다. 신록이 우거진 여름엔 계곡에서 가재를 잡는다. 가을에는 도토리며 밤을 줍기도 하고, 가끔 머루, 다래를 딸 때는 신이 나신다. 그리고 눈 오는 날엔 산에 올라 설경을 즐긴다.

동네 고샅길이 고즈넉하다. 죄다 들녘으로 나갔는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모내기철이라 농부들은 들로 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장군봉에 오르는 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였고, 호젓해서 참 좋았다. ⓒ 전갑남


산행 들머리 오솔길부터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지난해 가을 떨어진 나뭇잎들이 길을 덮었다.

내가 아저씨께 물었다.

"아저씨 소싯적 나무하러 다니던 생각나세요?"
"나다마다. 예전엔 죄다 긁어 군불을 지폈잖아. 뭐든 귀하게 여기고 살 때가 그리워!"

낙엽 밟는 발걸음이 푹신푹신하다. 나무하러 다녔을 법한 산길이 호젓해서 좋다.

신록의 푸르름과 함께 만난 자연들

작은 계곡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물소리와 함께 좀 전에 들은 휘파람새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 산딸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꽃은 6월에 피고, 한여름에 빨간 열매를 맺는다. ⓒ 전갑남


조금 오른 뒤, 길옆에 가시넝쿨을 보며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이거 뭔 줄 알아?"
"산딸기넝쿨 같은데요. 이거 빨갛게 익으면 맛있는데…."
"맛만 있어? 이걸로 술 담그면 복분자술 저리 가라지!"
"그래요?"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은 산딸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저씨는 해마다 산딸기에 눈독을 들였는데 한번도 자기 차지가 못되었단다. 산딸기가 익을 무렵 이곳에 와보면 한발 앞선 사람이 있어 허탕 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며칠 있으면 산딸기 하얀 꽃망울이 터질 것 같다. 한 여름에는 붉은빛의 산딸기가 열릴 것이다. 올해는 기필코 따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주 산에 올라야겠다고 한다.

▲ 애기나리. 둥굴레와 잎은 비슷하지만 꽃 모양은 다르다. ⓒ 전갑남


산에 오르면 궁금한 게 참 많다.

"아저씨, 여기 둥굴레가 이렇게 많이 있죠?"
"그거 둥굴레가 아냐. 애기나리라고 하지!"
"잎은 둥굴레와 똑같은데요."
"둥굴레와 비슷하지만 꽃 모양이 다른 걸!"

애기나리가 정말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 완만한 경사진 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애기나리꽃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러고 보니 꽃 모양이 둥굴레와 확연히 다르다. 둥굴레는 꽃이 아래로 마디마디 대롱대롱 달리는데, 애기나리는 나리꽃을 닮은 것 같다.

이번 산행에서 둥굴레와 애기나리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는 것도 큰 수확이다. 건성으로 지나치는 자연을 하나하나 익힐 때 산행에서 즐기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장군님의 미소는 여전하네!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벌써 정상이 코앞이다. 마니산 장군봉 정상은 큼직한 바위가 겹겹이 쌓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장군봉 정상 오르기 전의 이정표. 마니산 오른쪽 능선을 타다보면 만날 수 있다. ⓒ 전갑남


▲ 장군봉에서 바라본 마니산 정상. 정상엔 사적 제136호의 참성단이 있다. ⓒ 전갑남


▲ 발 아래 펼쳐진 마을, 들, 바다, 그리고 섬. 한 폭의 그림 같다. ⓒ 전갑남


푸른 신록과 들판, 그리고 들판 너머 바다와 섬.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하가 한 폭의 그림이다. 바람결에 담긴 싱그러움이 등허리의 땀을 씻어준다. 가슴이 확 뚫린 기분이다.

아저씨가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장군봉의 거대한 바위를 보고 말한다.

"전 선생, 이곳이 장군봉이니까 나는 저 바위를 장군바위라고 부르지. 장군바위에서 잔잔한 장군님의 미소가 느껴지지 않아?"

아저씨가 가리키는 바위가 참 기기묘묘하다.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연상된다.

한 가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다. 두 딸을 데리고 온 가족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아이들도 예사롭지 않은 바위를 보며 재잘거린다.

자매가 나누는 이야기에 아저씨가 슬쩍 끼어든다.

"장군님의 미소가 보이지? 너희들도 늘 웃음 띤 얼굴로 바르게 커야하는 거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은 미소를 짓는 장군바위처럼, 알았지?"

아저씨 말씀에 애들이 미소로 답한다. 마니산의 신록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뻐꾹뻐꾹!"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장군님의 미소가 자꾸 떠올라 내려오는 길 내내 뒤를 돌아본다. 장군바위에 마음을 두고 오는 것은 아닐까? 다음엔 산행을 즐기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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