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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여 번의 이력서를 쓴 여자를 만나다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발전 노트> 펴낸 전업작가 윤정은

등록|2008.05.23 21:55 수정|2008.05.23 21:55

▲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발전 노트> 표지 ⓒ 북포스

20대 청춘의 터널에서, 백조가 물 위에 우아한 모습으로 떠 있기 위해서는 물 밑에서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 지혜로운 여자. 그런 우아한 모습의 백조가 되기 위해 20대에서만 900여 번이 넘는 이력서를 썼고 10여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던 옹골찬 여자. 

서울에서 태어나 20대의 터널을 막 통과한 지금은 하이힐을 신은 커리어우먼(전문직업을 가진 여자)이지만 스니커즈(굽이 없고 바닥이 고무로 된 형태의 신발)에 면 셔츠를 입고 사람들 속을 거니는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여자. 책 읽는 것을 밥 먹는 것처럼 좋아하는 독서광으로 실패의 순간마다 책의 힘으로 버텨낸 여자.

그 여자가 전업작가 윤정은이다. 윤정은은 요즈음 자기계발이나 처세술 분야의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소설·에세이·여행기 등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윤씨는 글이 농익지 않는다면 10년에 1권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고만고만한(?) 글은 결코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것이니 책을 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섣불리 설익은 글을 내놓는 것을 조심하려 합니다. 얼마 전 박완서 선생님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고 그분의 문장력과 위트와 인간의 이중성에 관한 구성에 연신 감탄을 했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제 글도 함께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어요."   

전업작가 윤정은이 20대가 이 세상을 대처하며 사는 법과 위기의 순간마다 돌파구를 찾게 하는 해법을 담은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발전 노트>(북포스)를 펴냈다. 이 책에는 20대에 취업을 하기 위해 900여 통의 이력서를 썼고 10개 이상의 직업을 가졌던 글쓴이가 겪었던 희망과 좌절, 새로운 도전 등이 씨줄과 날줄로 꼼꼼하게 엮여져 있다. 
윤정은은 "사업을 하시는 바쁜 부모님과 역시나 바쁜 두 언니들 밑에서 생활하다 보니, 혼자서 밥을 챙겨 먹고 혼자서 숙제를 하고 혼자서 필요한 일들을 해결하며 자랐다"며 어릴 때부터 독립심이 자연스럽게 길러졌다고 말한다. 이는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 일부가 반항심으로 가출을 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살아갈수록 깨달음과 얻는 것이 많아 생이 참 재미있다고 여기는 전업작가 윤정은. 그이는 자신의 글을 김치찌개와 같이 먹을 편안하고 맛있는 밥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느끼는 모든 것들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남기고 싶어 한다. 자신의 흔적에 따른 모든 것을 글로 모두 남기고 말겠다는 듯이.  

"남녀의 성별 여부를 막론하고 25세가 지났다면 필수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에 하나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울음 터뜨리기'이다. 설마 그거야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여자의 무기라는 '눈물'이라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를. 엄마와의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 우리는 울음부터 터뜨리며 떼를 썼다. 엄마는 우리 손에 원하는 것을 쥐어준다. 연애할 때에도 남자친구와의 싸움에서 뜻대로 되지 않아 눈물을 흘린다. 남자친구는 안절부절 못하며 싸움의 이유가 어쨌건 간에 자기가 잘못했다며 화해를 시도한다."  (130~131쪽)

사회는 '울음'이 통하지 않는, 실력만으로 냉정하게 판단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순간적으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화를 마구 내다가 왕따를 당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때 무조건 울기만 한다고 해서 그 어떤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신의 실수나 나쁜 행동 혹은 습관을 하루속히 고치려 노력하지 않고 울고만 있다면 오히려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설령 직장 상사의 실수가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은 자신에게 떠넘겨졌다 하더라도 억울하다고 울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글쓴이는 울고 싶다면 화장실에 가서 실컷 울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상사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혼이 난 것에 억울해하며 울고 있는 무능한 직원이라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컷 울면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킨 뒤 자료나 말로써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하라는 것.

글쓴이는 "세상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될 때 경험이 하나도 없으므로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는 것. 하지만 새로운 일이 두렵다고 해서 피하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글쓴이가 "프로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입에 딱 들어맞는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는 당돌한 여자 윤정은의 말에는 도전정신이 아주 강하게 묻어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생각처럼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힘들게 노력해도 끝까지 이뤄지지 않는 일도 더러 있다. 때문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란 옛말이 나왔지 않겠는가.

30대 초반의 윤정은이 20대의 여러 가지 체험을 걸러내 20대 여자에게 말하는 이 책의 급소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 속에 900번의 이력서를 쓰고, 10번 이상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가 솔직 담백하게 담겨 있는 게 아니라 너무 훈교적인 글들이 많아 아쉽다는 그 말이다.  

다음은 전업작가 윤정은과의 일문 일답이다.

전업작가 윤정은 서울에서 태어난 윤정은은 이십대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 이종찬


-자신을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치열하고 방황하는 20대의 청춘의 조급증 대표인물이다. 올 초까지 전시기획자로 살아가다 다음 책의 집필을 위해 전업작가로 전향했다. 스스로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집필기간은?
"2007년 9월부터 시작하여 2008년 3월에 끝냈다."

-스스로 20대에 900통의 이력서와 10개의 직업을 경험했다고 했는데?
"요즘은 온라인 취업사이트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원하는 직업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라인 입사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면 900번의 입사지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전에는 50번 정도만 입사지원을 해도 취업이 됐었는데 그 시기는 150여 번의 입사지원을 한 끝에야 취업할 수 있었다. 직업 횟수는 직업을 가져 보았던 기간이 길지 않았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원하는 일이 있다면 한 곳에서 집중을 했어야 성공을 했을 텐데… 사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20대 초반을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이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이 길이 꽃길이라고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서 내용을 알 수 없는 시들을 끄적이곤 했었다. 2007년 목표를 재정립 하다 보니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완성시킨 글이 없어서 2008년까지는 우선 쓰자! 를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 소재를 찾다가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머리에 번뜩 들었다. 특히 요즘의 20대 청년들이 노력하지 않고 편안한 것만 이루려고 하는 현상이 안타까웠고, 자기계발서 대부분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라' 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책에서 목표를 세우라 했다. 글쓴이의 목표는?
"프랑스에는 미술이, 아르헨티나에는 탱고가, 영국에는 해리포터가 있다. 문화가 발전해야 나라도 발전하고 튼실해지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어떤 문화적 아이콘을 가질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작은 나라가 세계 경제대국 11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치열함을 그대로 말해준다. 문화를 통해 나라가 부강해지는데 이바지하고 싶은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보고, 듣고, 쓰고 있다."

-책 곳곳에 '책을 읽자'라는 말이 나온다. 글쓴이의 독서방법과 한 달 책 구입 비용은?
"종교와 역사와 예술과 철학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 분야만 읽는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피터드러거는 한 분야의 책을 3년 동안에 걸쳐 읽어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3년을 한 분야만 꾹 참고 읽기엔 지겹지 않을까? 저의 독서법은 무식하게도 전방위 무작위 독서이다. 한 달 책 구입비용은 10만 원~30만 원 정도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청춘의 나날들을 거닐고 있는 우리들은 꿈을 향해 올라가는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계단을 밟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또 다른 계단이 있을지, 그 안에 다른 길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것이 삶이 아니겠는가. 계단은 오르내리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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