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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가 강을 잡아먹지 말았으면..."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 ⑤] 청소년, 37일만에 만장일치로 운하 반대 결정

등록|2008.05.31 11:44 수정|2008.05.31 11:44

강강수월래단도보중인 강강수월래단. 맨 앞서 안전봉을 들고 걷는 이가 14세 용훈이. ⓒ 변형석



5월 19일 21시 54분, 37일간 고민한 결과

강강수월래단 청소년들이 한반도 운하 건설을 반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만장일치의 결과다. 서울 강서 습지공원에서 시작하여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 걸은 지 37일만의 결정이다. 지나가다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운하 반대하는 거냐?"라고 물을 때마다 "그건 아니고 청소년들이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하자는 취지에서 걷는 거다"라고 말을 흐렸었다.

말을 흐렸다기보다 그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본 적도 없는 일을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말하기 싫었다. "어린 것들이 뭘 아느냐?"는 비아냥도 싫었다. 내가 나 스스로 의견을 만들고 싶었다. 찬성이든 반대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는 강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찬성이든 반대든 어떤 고민의 실마리가 풀릴 것 같았다. 강강수월래단 청소년들은 그렇게 출발했다.

26명으로 시작한 전구간 참가자는 현재 24명. 1명은 중간에 포기했고, 다른 한 명은 부상으로 그만두었다. 24명의 청소년들은 40일째 걷고 있다. 그 걸음걸음의 결론이 내려졌다. 물론, 운하 찬성측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수차례 운하 건설의 이유를 들려달라고 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유인촌이 나오는 홍보물이 전부였다. 그리고 세상은 쇠고기 수입 파동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종교인 지도자급의 어르신들이 먼저 순례를 한 탓인지 청소년들이 하는 이 일에 예상보다 관심도 별로 없었다. 하긴 비교가 되겠는가, 그 어르신들 십여명의 영향력과 무명의 십대들 이십여명의 영향력이.

도움을 주는 많은 어른들과 지원단이 있었지만 강강수월래단 친구들은 외롭게 걸었다. 디딤돌(대표의 역할을 맡는 이) 슬비는 이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넌지시 말한다. 나는 애써,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으니 힘내라 해보지만 힘이 빠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슬비와 한시간 쯤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쉬는 장소에서 슬쩍 도망쳤다. 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난감해서였다.

'밥팀'의 심각한 문제제기

그런 분위기는 생활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지난 기사에서 참가한 십대들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서 칭찬했던 일이 무색하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챙기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지원단의 꽃빛은 이렇게 할 거면 뭐하러 계속 이 여행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강한 회의감을 표현했고, 느티나무는 우다다학교 학생들은 오자마자 첫날부터 설거지를 도와주러 오더라며 그간의 서운함을 표현했다. 지원단의 개똥은 떠난 자리 뒤치다꺼리를 해야하는 상황에 대해서 오래전에 한 번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했던 터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긴 했지만 역시 스스로 챙기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청소년 단원들에 대해 언급을 했다.

'밥팀'이라 표현하는 것부터가 괴로운 일이다. 청소년들은 걷기만 하고 밥을 따라다니면서 만들어주는 이들이 있어야하는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 초등 대안학교의 교사였던 꽃빛과 돌멩이가 말했듯이, 초등학생들도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책임지도록 하는데, 중고등학생 나이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이면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이 맞다. 일정이 문제이면 다 같이 사서 먹든가 해야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은 계속 밥만 하고, 어떤 사람은 계속 잡일만 해야하는 구조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 철저하게 분업이 되어있다보니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너무 선명하게 경계지어져버린 탓에 아무도 설거지를 도울 생각을 안했던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여행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뚜렷한 자기 목적을 조금씩 잃어가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확인할 수 없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찌 보면 거의 될대로 되라는 식의 생각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팽배해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데도 물을 챙겨온 사람은 거의 찾기 힘들었고, 밥그릇만 달랑 들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도 몇 있었다. 도보 중에 내내 기타를 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구문화제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일도 힘이 빠지게 했던 것 같다. 대구에 있는 단체들이 준비를 주도적으로 해주겠다고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신들은 들러리가 되어있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대구에 있는 단체들은 단체들대로 쇠고기 촛불집회 때문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환영한다는 플랭카드 하나 없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 저런 일들이 합쳐져서 어떤 우울한 분위기가 강강수월래단을 감돌고 있던 터였다.

그날의 회의는 모두가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할까를 논의하다 돌아가며 조를 짜서 하자는 말에, 그러면 또 자발성과 진정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역시 '자발적'으로 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음날 내가 떠나오기 직전까지는 여러 친구들이 설거지도 돕고 뒷정리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나는 "여러분들의 자발성을 못믿겠소"하고 회의 자리에서는 강하게 말했지만 믿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다.

그날 우포늪에를 갔었고, 바로 그날 저녁 "한반도 운하 반대" 입장을 정리했다. 아마 지금쯤은 "한반도 운하 반대" 깃발을 만들어서 들고다니는 지도 모르겠다. 깃발은 들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결정은 다른 동력으로 그들의 마지막 일정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청소년들이 한반도 운하를 반대하는 이유

강강수월래단 청소년 단원들이 직접 밝힌 운하 반대 이유다. 있는 그대로 옮겨 보겠다.

동훈 : 한달 넘게 도보하며 더러운 강, 깨끗한 강을 보며 강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보았다. 강에 운하가 생기면 강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 할 것 같다. 인간이 강의 모습을 바꾸어선 안된다. 강은 소중하다. 순례를 통해 느낀다. 운하가 강을 잡아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성 : 강을 사랑한다. 그냥 왔었는데 걷다보니 강이 멋지다. 골재채취를 보며 맘이 아팠다. 운하로 인해 강이 상처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슬한 : 엄마가 엄청난 환경주의자라서 그런 교육을 받아서 인지 처음부터 운하는 반대하고 있었다. 여기 와서 보니 강이 너무 예쁘고 강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운하가 생기면 강은 가식적이게 될 것 이다. 싫다. 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산하 : 강을 많이 볼 기회가 없었다. 걸으면서 강이 너무 예쁘다는 것을 알았다. 강을 지날 때 악취가 나거나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는 건 싫다.

양갱 : 별 생각 없이 왔는데 와서 보니 강은 정말 아름다웠다. 더러운 강을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운하가 생기면 강의 솔직한 모습을 보지 못해서 싫다. 다음 세대도 생각하자. 콘크리트 벽이 아닌 그대로 흐르는 맑은 아름다운 강을 보여주고 싶다.

민강 : 운하는 말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반대 이유도 알겠다. 앞으로 물도 아껴야겠다.

종현 : 집이 낙동강 근처라 운하가 생기면 직접적인 피해가 와서 참가하게 되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운하는 아니다.

명주 : 운하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운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로사 : 기수를 서거나 맨 앞에 서서 갈 때 단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운하를 만들면 강의 생물이 많이 죽고 산도 많이 깎여 있는데 운하가 건설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마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나쵸 : 반대 입장. 왜 운하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쓸데없다.

다희 : 반대. 단순한 환경 파괴가 아닌 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는 게 싫다.

둥실 : 자연은 사람을 보호하고 그 보호아래 사람은 살아간다.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자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운하는 안된다. 강의 모습이 변하는 게 싫다

노디 :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강이 너무 예쁘다. 운하와 강에 대해 글을 더 쓰고 싶다. 강이 변하는 게 싫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한다.

예솔 : 반대이긴 한데 많이 흔들리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운하를 찬성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그것에 희망을 걸었다. 그 희망을 우리가 짓밟는 것 같아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운하는 반대한다.

예진 : 주민 인터뷰를 할 때 주민 분들이 운하 반대하는 거냐고 많이 물어보시기도 했었다. 솔직히 그 분들은 운하가 좋아서가 아닌 운하로 인해 개발 되는 걸 희망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도 한번 훼손하면 되돌리기 힘들고 모래를 파는 것도 싫다. 생물이 죽는 것도 싫다. 운하 반대한다.

성희 : 반대한다. 정부에서 주민들이 운하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했는데 우리가 희망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흔들리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자연 훼손은 복구가 힘들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이다. 자연 훼손은 자살과도 같은 행위다.

하은 : 자연 훼손은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많은 생물이 죽는 건 안된다. 언제까지 인간의 욕심만을 채울 텐가. 말도 안된다.

혜지 : 모두 동의하는 얘기다. 평화라는 건 나무는 나무의 숨을 쉬고 땅은 땅의 숨을 쉬고 사람은 사람의 숨을 쉬는 것이라고 홍순관씨가 이야기 했다. 각자가 자기의 숨을 쉬는 건데 인간은 너무 자기 욕심만을 챙기고 있다. 안타깝다. 다 죽는 게 싫다. 운하 반대.

솔비 : 개인적으로 햇빛이 강에 비춰져서 강물이 반짝반짝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는데 운하를 건설하면 그것을 보지 못한 다는 것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 생태계에서 적은 수의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자연들이 파괴되어 되돌릴 수 없고, 많은 생명체들이 숨을 거둔다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욕심은 그만 부리고 자연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운하는 절대 건설되어서는 안되는 악마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원 : 인간이라는 그런 위치에서 사람들이 너무 욕심을 많이 부린다고 생각한다. 자연훼손을 함부로 하는 게 싫다. 이기적이다. 강에 살고 있는 생물과 자연스러운 강을 없앤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싫다. 죄 짓는 느낌이다. 마음이 아프다.

용훈 : 강을 보면 대부분 똥물이라서 싫다. 여러 매스컴에서는 강이 참 깨끗하고 예쁘게 나오는 게 그게 사실이 아니라서 안타깝다.

슬비 :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먹고 살기위해서 만을 위한 것이라면 아닌 것 같다. 운하는 단지 투자자들 외에는 이득이 되는 것이 없는 사업인 것이다. 짧든 길든 우리가 먹고 사는 것도 아니다. 많은 생물이 죽는 것도 싫다.

의장 : <강강수월래 단은 2008년5월19일 21시 54분에 전체 순례단의 만장일치로 한반도 운하를 반대하는 입장을 결정합니다.>

람사르 지정 습지 우포늪

만장일치 한반도 운하 반대 결정이 내려지던 날 낮에 강강수월래단이 갔던 곳은 우포늪이었다. 람사르 총회 개최로 한껏 인지도가 높아진 우포늪(소벌)은 1000여종의 생물이 사는 생명의 늪이다. 어쩌면 위에 있는 반대 의견에는 우포늪의 영향도 조금은 있었을 테다.

돌아본 우포늪은 1억 4천만년이라는 역사는 좀 과장인 것 같지만 '태고'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느낌은 충분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늪지대인 이곳은 소양호나 청평호 같은 인공호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명과 자연경관의 어우러짐이 일품이었다. 관람객의 수도 적지 않고, 사진을 찍으러 오는 작가들도 부지기수라 한다. 덕분에 우포늪의 터줏대감인 수리부엉이는 뜨거운 취재열기에 시달림을 받을 정도란다.

올해 10월 한국에서 람사르 총회가 열리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람사르 협약은 애초에 습지보호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물새 보호 협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협약의 정식 명칭도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The convention on wetland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이다. 그렇게 제정된 것이 1971년. 그 후 40여년이 지난 지금 람사르 협약에는 158개 국가, 1743개의 습지가 지정되어있다. 주요의제도 물새 서식지에서 수자원 및 어족자원관리,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1997년 한국이 101번째 국가로 람사르 협약에 가입하면서 습지로 지정제안한 곳이 대암산 용늪이었고, 그 이듬해 창녕 우포늪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그러니까 우포늪의 중요한 한 측면은 물새 서식자로서의 측면이기도 하다.

그 많던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물새들은 대부분 철새들이다. 철새들은 철이 바뀜에 따라 길게는 1만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하여 번식과 서식을 번갈아하는 새들이다. 개중에는 겨울을 한국에서 나는 '겨울새'도 있고, 여름을 나는 '여름새'도 있고, 잠시 쉬었다 떠나는 '나그네새'도 있다. 그 물새들이 서식하거나 쉬어가는 곳은 대부분 습지들인데, 그 중 중요한 곳으로 한강 하구, 새만금, 순천만 등이 있지만 낙동강 줄기를 따라 놓인 해평습지, 달성습지, 우포늪, 주남저수지, 을숙도 등이 중요한 철새 도래지로 꼽힌다. 특히 을숙도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다.

람사르 협약의 계기는 철새들에게는 국경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철새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경계선을 훌쩍 넘어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데, 때문에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 철새들은 거꾸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미국은 이미 54%의 습지가 사라졌고, 뉴질랜드는 90%의 습지가 사라졌다. 전세계적으로 1987년에서 1998년까지의 단 11년 동안 25%의 갯벌이 사라졌고, 한국에서만도 지난 20년간 서울 면적의 3배에 해당하는 습지가 개발의 명목으로 매몰되었다.

유전자에 각인된 메시지를 따라 매년 같은 곳으로 날아오는 철새들에게 습지가 사라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번식지이거나 서식지인 새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을 중간기착지로 하여 시베리아로 날아갔다가 다시 동남아시아 등지로 날아가는 나그네새들은, 한국의 습지가 사라지면 쉴 곳을 찾지 못해 쇠진한 기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동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관측하는 철새들의 개체 수는 끊임없이 줄고 있다.

때문에 맺게 된 국제 협약이 람사르 협약이었다. 다른 환경적 문제들도 그렇지만 이것 역시 국제적 공조의 노력이 없다면 실효를 거두기 힘들었던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홍수철마다 범람하는 지역으로 '개발'이 어려웠던 덕에 우포늪은 다행히 뭇 철새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어주었다.

낙동강은 전체가 보호해야할 습지

낙동강의 전 구간에서는 하얀 모래가 깔린 백사장을 볼 수 있다. 덕분에 포클레인과 중장비들이 끊임없이 '준설'을 하고 있지만, 퍼내고 퍼내도 끝도 없을 것 같은 백사장을 따라 강강수월래단은 오랜 시간을 걸었다. 그렇게 지나온 곳에 구미 해평습지가 있었고 대구 달성습지가 있었다. 지나고보니 그곳이 습지였다는 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낙동강 전체가 습지의 연속이다.

한강과 비교해서 유난히 넓은 강의 수역에는 나무가 가득하기도 했고 갈대밭이 수킬로미터씩 이어져있기도 했다. 모래사장에는 새와 들짐승들의 발자국이 가득하고, 곳곳에 자연 웅덩이와 언덕들이 있어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내 그런 곳을 걸어왔으니 그중 특별히 어떤 곳이 습지라 불리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중 유명했던 것이 해평 습지와 달성 습지였다.

우포늪도 낙동강의 습지라 부를 수 있는데, 그곳의 생명력이 낙동강의 범람에 있기 때문이다. 갈수기에는 갇힌 호수이지만 홍수철에는 낙동강의 물이 범람하여 수위를 4-5미터 가량 높인다. 이때 공급되는 양분이 늪에 가라앉고, 수생식물과 동물의 교체를 가능하게 하여 몇몇 종이 생태계를 독점하는 것을 막아 다양한 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 범람으로 낙동강의 동식물 생태계는 고스란히 우포늪과 연결되어 동일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 자연적 습지들은 운하가 건설될 경우 모두 소실될 위험에 처해있다. 항상 일정수위를 유지해야하는 운하용수의 특성상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습지는 말라버리거나 수몰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생태계는 단조롭게 변할 것이다. 낙동강을 찾아 날아오던 철새들은 갈 곳을 잃어 서식처를 옮기려 할 것이나, 모든 강이 운하가 되었으니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결국 굶어 죽거나 지쳐 죽을 것이다. 한국을 찾아오는 266종의 철새 수십만 마리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내몰릴 것이다.

우포늪 자산가치 570억?

강강수월래단 아이들과 우포늪 전망대에 올랐을 때 벽면을 장식한 문구가 눈의 띄었다. "우포늪 자산가치 570여억원."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던 슬한이가 묻는다.

"570억이 얼마쯤 돼요?"
"글쎄, 서울에 있는 작은 빌딩 한 채 값?"
"......"

대답을 한 나도 한동안 어이가 없었다. 우포늪의 가치가 서울에 있는 작은 빌딩 한 채 값밖에 안된단다. 보잉 747 항공기가 2500억원쯤 한다고 하니 비행기 한 대 값의 1/5 수준이다. 조금 커보이는 그 돈은 막상 얼마나 형편없는 돈인가.

대체 뭘 기준으로 570억일까가 무척 궁금했다. 알고보니 창원대 김명용 교수가 경제적 가치를 환산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름대로는 이 습지의 가치를 지표화해서 보여주려는 좋은 의도였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터무니없다. 한 몇 달 뚝딱하면 나오는 비행기 한 대가 1억 4천만년 이상된 자연의 값어치보다 다섯배나 높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포늪이 70만평이라고 하니 평당 가격이 8만원이라는 소린데, 인간들이 틀어쥐고 올려놓은 서울 아파트 평당 가격만 2000만원이다. 우포늪이 5조 7천억쯤 한다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 570억이라니 대체 뭘 기준으로 계산했을까. 그런 식으로 계산해서 생태비용을 책정하면, 2조원이면 우포늪 같은 자연습지 20개를 없애고도 경제적으로 타당하다는 주장이나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그 비용을 들였을 때 대체가능한 것에 대해 환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인간의 힘으로는 복원 불가능한 것이 있다. 멸종한 생물을 되살릴 수 있는 힘 따위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다. 0에다가 아무리 큰 수를 곱해보아도 결과는 0이다. 가능성 0%인 일에 수천조원을 쏟아부어도 가능성은 0이다. 그러니 자연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따위의 일은 잘못된 숫자놀음이다. 그것은 다른 가치로 보아야 하며, 절대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오죽 우리들의 관념이 형편없으면 경제적 가치를 동원했겠냐만 그것을 다른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이상 개발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산 을숙도, 이제 앞으로 8일

남은 8일 동안 강강수월래단은 또 다른 습지인 주남저수지와 철새도래지 낙동강 을숙도를 한 번 더 마음에 담을 것이다. 그리고 5월 31일이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한반도 운하 반대 입장을 정한 강강수월래단에게는 자신의 48일을 정리하는 시간이 남았다.

사회가 쇠고기 파동으로 정신이 없더라도 강강수월래단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 잠복되었지만 언제 다시 터져 나올 지 모를, 그리고 광우병 보다 더 심각하고, 더 파괴적이고,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그 이야기, 한반도 운하와 우리 생명의 근원인 강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에 꺼내놓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실 분들은 5월 31일 오후 2시 부산디자인센터 이벤트홀로 오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일주일에 힘을 실어주실 분들은 다음 까페(http://cafe.daum.net/Songriver)로 와 격려의 한마디를 남겨주시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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