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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준 사탕에서는 늘 담배 냄새가 났지"

제자 현이가 준 사탕에 얽힌 사연... 율법적 잣대만으로는 아이들 변화시킬 수 없어

등록|2008.05.26 09:11 수정|2008.05.26 14:00
가끔 교무실 통로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봅니다. 무슨 잘못을 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면 지각을 한 아이도 있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아이도 있습니다. 사람을 얼굴이나 용모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전혀 그럴 아이 같지 않은 예쁘장한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걸려 기합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경우, 저는 아이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혹시라도 제 낯빛을 통해 '네가 그런 아이란 말이지'라는 식의 함의가 담긴 묵언의 메시지가 전달될까봐서 그러는 것이지요. 제가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해도 벌을 받고 있는 아이의 처지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니까요.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저를 보고, 다른 아이도 아니고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걸린 아이를 두고 별 걱정 다한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저로서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아이가 내민 사탕

저는 흡연자가 아닙니다만, 담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학교를 졸업한 현이(가명)는 한 마디로 좀 센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때 놀만큼 놀아서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그런 것들이 싱겁게 느껴졌는지 말썽 없이 학교생활을 잘 하는 편이었는데, 그러다가 가끔 한 번씩 일을 저지를 때는 세게 저지르곤 했지요. 자기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센 편이어서 선생님들도 웬만하면 아이와 충돌을 피하려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안 그런 것처럼 보여도 은근히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공책정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제 등살에 못 배겨나 결국은 하게 됩니다. 고집 세기로 유명한 현이도 저한테는 두 손을 들고 말았지요.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어려운 고비 때마다 저는 케케묵은 사랑 타령을 했지요. 너를 사랑하니 너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길에 현이를 만났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의 손에는 사탕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 사탕은 저에게 주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사양하려고 하면 저는 죽일 듯이 노려봅니다. 주먹으로 마구 제 등짝을 내려치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폭력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사탕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내민 사탕에서는 늘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탕을 싼 종이에서 나는 냄새였지요. 종이를 벗기고 사탕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습니다. 그 사탕종이에서 나던 담배 냄새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역겨운 담배 냄새가 나는 종이를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몇 번 더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 고마웠고, 사람에 대한 깊은 정을 지닌 아이를 저도 사랑하고 존중해주고 싶었습니다. 역겨운 담배냄새까지도 말입니다. 물론 저는 아이가 담배를 끊기를 바랐습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고, 학생신분에도 맞지 않는 일이어서 몇 차례 담배를 끊을 것을 종용하기도 하고, 마침 학교에서 운영 중이던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도 해보았지만 그리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담배를 끊지 않는 한 네가 준 사탕을 받을 수 없노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좀 예쁘게 써주지 않고 이게 뭐예요?"

어느 날 아이는 저에게 생일 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생일 시는 제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에게만 써주었던 터라 아이는 그것이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이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이에게 생일 시를 써준다면 다른 아이들도 써달라고 할 것이 뻔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날에는 여학생들의 특성으로 보아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도 현이는 복도에서 저를 기다렸다가 사탕을 쥐어주는 일을 그만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의 생일날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꼭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고 점심시간에 급조한 생일 시를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생일 시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하던 현이의 얼굴 표정이 금세 일그러졌습니다. 바로 이 대목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내민 사탕에서는 언제나 담배냄새가 났지.'

현이는 정말 실망했는지 제게 눈을 흘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예쁘게 써주지 않고 이게 뭐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현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대로 한 아이의 진실적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대목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공책정리 안 한다고 늘 못살게 군 선생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탕을 손에 쥐어주려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 저편에 매복했다가 나를 급습하곤 했던 현이! 그 가슴 따뜻한 아이가 지닌 아름다움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린 아이에게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벌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이어야 합니다. 교칙을 어겼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하지만 그런 율법적 잣대만으로 아이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더욱이 '네가 그런 아이란 말이지'라는 함의가 담긴 냉소어린 눈빛으로는 더욱.

성서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제가 현이에게 배운 것도 바로 그 사랑입니다. 받은 사랑을 조금밖에는 돌려주지 못하고 현이를 떠나 보낸듯 싶어 많이 아쉽고, 그래서 더욱 현이가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은 애기 엄마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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