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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본관 앞 집회신고서 반려는 위헌"

29일 헌재 '위헌 결정'... 장소 선점용 '유령집회' 제동

등록|2008.05.30 14:45 수정|2008.05.30 14:45

▲ '삼성에스원 노동자 부당해고 규탄 및 해고자 복직을 위한 결의대회'가 2007년 1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앞에서 삼성에스원세콤영업전문직노동자연대 주최로 열렸다. 그동안 많은 단체들이 삼성본관앞 집회를 시도했으나, 삼성측의 집회장 선점으로 인해 무산됐으나, 이날 집회는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측이 남대문경찰서에서 꾀를 짜내서 삼성측의 방해를 무산시키면서 성사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산하 한국합섬 HK지회는 지난해 4월 25일부터 5월 17일까지 총 9회에 걸쳐 삼성본관 앞 집회신고서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접수했다.

HK(한국합섬 자회사)의 최대채권자인 삼성석유화학이 추가자금 지원에 동의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삼성석유화학을 비롯해 산업은행·신한은행 등 채권단이 155억여원의 추가자금 투입을 반대해 지난 4월 HK가 파산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회신고서를 접수할 때마다 남대문경찰서는 '반려처분'을 통해 집회신고를 불허했다. 남대문경찰서측에서 밝힌 '집회불허' 이유는 이렇다.

"동일 동시에 삼성생명 인사지원실에서 제출한 옥외집회 신고서와 시간장소가 경합되어 상호방해 및 충돌 우려가 있어 정상적인 처리가 어려워 반려한다."

이에 지회는 서울행정법원에 반려처분 취소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행정법원은 이를 각하했다. 결국 지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는 일단 접수된 집회신고를 반려할 근거가 없는데 이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반려해 기본권인 집회·결사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 "집회의 자유는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어"

헌법재판소(헌재) 전원재판부(주심 목영준 재판관)는 29일 한국합섬 HK 지회에서 제기한 헌법소원과 관련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집회의 사전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며 "집회신고서가 접수되면 원칙적으로 집회를 할 수 있으며 법률로써 제한할 때도 최소범위에 그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남대문경찰서는 집회신고 선순위를 다투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접수 우선순위를 준다면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신고를 모두 반려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집회의 자유를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경찰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재판부는 "접수순위를 확정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한 뒤 집시법 8조 2항에 따라 후순위로 접수된 집회를 금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시법 제6조는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신고시 즉시 접수증을 교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집회신고서를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반려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공공의 질서 유지 등을 위해 법률에 따라 사후적으로 집회금지 통고처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헌재의 위헌결정과 관련, 전국금속노조 법률원은 "그간 남대문 경찰서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어온 집회신고 반려처분이 집시법상 근거없는 집회신고 허가제 운영이므로 위헌이고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반려처분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법률원은 "집시법 개정으로 동일 장소에 대한 동시 신고의 경우 어느 신고를 우선 신고로 볼 것인가의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선순위 신고자만 집회가 가능하고 선순위 신고자가 집회를 하지 않아도 제재가 없어 기업 앞 집회를 막기 위한 허위 선신고의 폐단을 막기 위한 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삼성, 경찰서 상주하며 먼저 집회 신고"

남대문경찰서는 그동안 '법률'이 아닌 '자의적 기준'에 따라 삼성본관 앞 집회신고를 처리해 비난을 받아왔다.

작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에스원 노동자들이 집회신고를 하자, 남대문경찰서는 '민원실 소파에 먼저 앉아 있는 사람' '자정에 두 번째 기둥에 먼저 도착한 사람' '회전문에 먼저 발을 들이민 사람' 등으로 기준을 바꾸어가며 이들의 집회신고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전국금속노조 법률원은 "삼성본관은 직원들을 동원해 관할 경찰서인 남대문 경찰서에 상주하며 먼저 집회신고를 내는 방식으로 사옥 앞마당을 철저히 통제해왔다"며 "이후 에스원 노동자들이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수일간 삼성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여가며 '집회신고' 작전을 펼쳐 삼성본관 앞에서 사상 최초의 집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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