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30일 대전역 광장미친 소 너나 먹어! ⓒ 박병춘
하루 한 두 차례 수신하는 문자 메시지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기 시작한 게 오래 전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뉴스로만 바라보며 비통한 연대감에 젖어보지만 언제나 나는 집회 현장이 아니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살면서 시기를 놓치면 앞선 이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잡기가 참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구나 권위 있는 정부 정책을 어린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항변하는 모습을 보며 동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서 무척이나 부끄럽기도 했다.
지난 목요일(29일)엔 쇠고기 전면 개방 창시자 이 대통령이 중국을 순방 중인 가운데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쇠고기 고시를 강행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거 정말 국민을 섬기는 거 맞는 거야?'
"대전역에서 만나자!"
"선생님! 저희들 이번 주 중에 모입니다. 언제쯤 시간 되십니까?"
"응! 금요일 오후 7시에 대전역으로 모여!"
"예? 대전역이요?"
"그렇다니까!"
"네, 알겠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 전후에 제자들이 찾아온다. 이번에 만날 제자들은 벌써 34살이나 먹은 졸업생들로 철도원, 의사, 공무원, 회사원, 고시 준비생 등 모두 5명이다. 해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모이는데 대전역으로 오라는 말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대전역으로 갔다. 이미 많은 분들이 모여 '미친 소 너나 먹으라'며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양초에 불을 붙이고 대열 끝 부분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다양한 풍물패들이 열기를 돋우었다. 8시가 조금 넘어 제자들이 도착했다. 반가움을 접고 함께 문화제에 집중했다.
"정말이지 이건 아니라고 봐!"
집회를 마치고 내 집에 모였다. 식탁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겨놓고 술판을 벌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근황을 말하고, 이어서 쇠고기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고교 시절에 딱히 나서서 발언하기를 꺼렸던 제자가 포문을 열었다.
"국민이 무슨 말을 하면 들어주는 게 정부 아닌가? 이 놈의 정부는 국민이 말을 해도 들어주지를 않아. 정말이지 이건 아니라고 봐."
"야! 광우병에 관한 진실을 알고 대응해야 하는 거 아녀? 미국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광우병에 그렇게 쉽게 노출될 거 같어? 정확한 상식으로 대응해야지. 내가 보기엔 너무 분위기에 휩쓸리는 거 같아."
"야!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대상을 수술하듯 사태를 바라보는구먼! 이번 촛불 사태는 다른 데 없다고 봐. 한번 맘 먹으면 국민이고 나발이고 도외시하는 정부 행태가 잘못된 거여. 촛불이 쉽게 꺼질 거 같으냐?"
"내가 철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마다 역 광장을 지나가는데, 이번 촛불 문화제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어. 일반 대중들에게 엄청난 반성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봐. 아마 이명박 찍은 사람들 뜨끔뜨끔할 걸? 야! 너 혹시 이명박 찍은 거 아녀?"
▲ 대전역 광장 미친 소 퍼포먼스저 원 안에 누군가 앉아 있어야 한다. ⓒ 박병춘
어제 촛불 문화제 때 사회자가 그랬다. '이제 대학생들이 이 사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갈수록 대학생 참여가 많아지는 가운데 국민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민을 섬기며 경제를 살리겠다고 출범한 새 정부가 민심을 천심으로 치환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어쩌랴. 이 시대 답답한 마음 환하게 비춰주는 것은 일단 촛불 아니겠는가. 뒤늦은 참여에 반성을 한다. 동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고 들으며 시민 정신을 가다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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