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87년 6월을 맞이하고 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하며 불붙은 국민적 저항운동

등록|2008.06.02 08:42 수정|2008.06.02 08:42
일주일 동안 일본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한국에서는 경악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 5월 25일 전주에서 한 시민이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반대와 이명박 정부 규탄 메시지를 외치고 분신을 했다.   그리고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쓰촨성 대지진 현장 방문을  핑계삼아 도망친 사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장관고시 발표가 강행되었다. 또 절박한 생명의 위기 앞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연일 경찰에 연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미 훈방조치되었다고는 하지만 여고생도 한 명 끼여 있었다. 대체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5월의 함성, '6월 항쟁' 연상시키는 2008년 대한민국

▲ 도심 곳곳에 깔렸던 경찰들. 이렇게 열심히 달리며 1일 새벽에도 각지에서 시민들을 연행해갔다. ⓒ 전은옥


필자는 귀국 직후 사흘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고 있다. 주말 도심에서는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시민 228명을 곳곳에서 강제 연행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 폭력으로 인한 시민의 부상이 속출했다. 여성 한 명이 머리채를 잡혀 쓰러진 채 군홧발에 짓밟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폭력경찰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중국에 갔다 돌아온 이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게 촛불문화제에 쓴 양초는 누구 돈으로 구입한 것이며, 문화제 주도세력이 누군지 보고하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또 장관을 경질하겠다면서 인적쇄신을 통해 이 상황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장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 몇 사람 경질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할 만큼 이 대통령은 어리석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째를 맞았다. 취임 직후 조선일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 52%를 자랑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38%로 지지율이 하락하더니, 쇠고기 수입 장관고시 발표 직후, 20%대로 떨어졌다.

생명의 밥상을 외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간곡히 요청하던 시민들은 이제 이명박 정부의 국민 기만과 무책임에 등을 돌렸다. 밤거리에 쏟아지는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 "이명박은 물러나라"라는 탄핵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지 한 달째이지만 이미 탄핵서명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130만 명을 돌파했다. 그 이면에는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과 배신감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장관 고시 발표 이후, 대한민국은 광우병 위험이 몇 배나 높은 '30개월 이상의' 소를 뼈와 내장까지 들여오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되었다. 쇠고기 검역에 대한 어떤 권리도 다 포기한 채 모든 권한을 수출국인 미국에게 넘긴 고시 강행은 결국 국민의 생명을 포기한 것과 같다.

대통령은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게 되었다. 마음에 안 들면 먹지 말라"며 무책임한 발언을 한 바 있지만, 조미료와 각종 식품에 섞여 들어갈 미국산 쇠고기를 시민들이 일일이 구분해서 먹을 방법은 없다. 당장의 생계에도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선택의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의 메이저 신문사, 이른바 조중동에서는 촛불문화제의 배후세력을 운운하며, 광우병을 둘러싼 논란을 그저 '무식한 괴담' 정도라고 일축하고 있고, 이제는 국민들의 순수한 생활정치(홍성태 상지대 교수의 말을 빌림)에 '‘이념'과 '정치적 색깔'을 덧칠해 몰아붙이기까지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대통령 일가와 공무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열심히 먹으면 국민들이 안심하고 쇠고기를 먹게 될 것처럼 착각하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일가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열심히 먹는 쇼를 생중계한다 해도, 국민들은 더 이상 그런 식의 쇼에 속지 않을 것이다.

광우병 괴담, 배후세력 운운하며 국민 여론 왜곡하기 급급한 정부
물대포, 무력진압에 강제연행까지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독재'라 비판하고 있고, 촛불문화제의 민심을 '국민불복종 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애초 투표권도 없고 아무런 정치적 힘도 없는 10대 청소년들이 중심적으로 나섰던 촛불문화제에는 현재 대학생, 직장인,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와 가족 단위 참가자들까지 가세해, 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현 정부의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 청계천과 시청 광장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매일 밤 이러한 촛불문화제가 벌어지고 있다.

▲ 시청앞 광장을 메운 촛불문화제 참가자들. ⓒ 전은옥

▲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진정 죽었는가. 6.10항쟁 21주년을 앞두고 촛불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 ⓒ 전은옥

그렇다면 이렇게 금방 후회할 거면서 민심은 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투표율 자체가 역대 최저이긴 했으나, BBK의혹을 비롯해 수많은 비리를 떠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분명히 국민 대다수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당선되었다.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서울시 버스체계 개편을 하면서 일을 잘 하는 사람으로 평가되어 왔다. 당시에도 이명박 시장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은 많았으나 국민다수는 청계천복원과 버스체계개편 등에서 결정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또 이 대통령은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추진력 강한 기업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하여 선거운동 내내 '경제 살리기'만을 외쳤는데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주면 경제만큼은 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제부터 살리고 보자는 것이 국민들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은 군사독재시절을 오래 겪다보니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부정부패와 비리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관대한' 의식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작은 장사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큰 장사하는 사람이 그까짓 거짓말 좀 하면 어떤가 하는 식의 의식이 전 사회에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97년 IMF체제 이후 한국 사회의 권력은 '돈과 시장'이 장악해 버렸다. 군사독재가 물러나자마자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장과 자본으로 권력이 넘어간 것 뿐이었다. 이른바 물신주의, 성장제일주의, 성공신화에 발목이 잡힌 채 한국사회는 흘러왔다.

그리고 사회양극화와 800만 비정규직 문제, 88만원 세대의 불안한 미래와 자영업자, 농민 등 전사회적 경제 위기가 사회를 휩쓸면서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결국 ‘돈’과 ‘경제’에 표를 던졌다. 생존에 대한 공포가 돈과 경제에 표를 던지게 내몬 셈이다.

돈과 경제에 투표, 이명박 정부 탄생, 그러나…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계획한 '경제 성장'에 서민들을 위한 경제는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 자체가 자기 발등을 찍은 일이었고, 작금에 일어나는 민심의 이반도 결국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외치던 경제살리기에는 비정규직이나 농민, 여성과 장애인, 노약자 등을 위한 경제는 없었다. 그는 쓸데없이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경제적 효과가 명백히 검증되지도 않은 대운하 건설 강행을 고집했다.

토목경기 활성화를 통해 국가경제를 살리는 것이 그의 장기인지는 모르나, 대운하가 정부의 선전처럼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장기적인 경제 대책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소수 토목재벌에게만 이윤이 돌아간 채 서민경제와 국가재정은 파국을 맞이하고 환경대재앙이 닥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주 원인 가운데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 큰 몫을 했다. 노무현 지지층은 비정규직 정책과 이라크 파병, 친시장정책에 반발했고 본래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은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양산, 자영업과 농업의 몰락 등 총체적 경제위기에 맞닥뜨리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해왔다. 강남 땅부자와 재벌, 조중동 보수언론이 애초부터 일관되게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했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실제로 '잃어버린 10년'인 것은 아니다. 두 정부의 과오는 많지만 분명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민주화가 자리잡고 많은 개혁들이 이루어진 것 역시 사실이다.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사회복지와 민주적인 정치를 위해 노력을 한 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의 말에 따르면, "민주화가 공기처럼 흘러 늘 민주주의를 호흡하며 살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고, 이제는 민주주의보다 피부에 다가오는 경제를 선택"한 것이 지난 대선의 표심이었다.

경제나 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생계는 엄정한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삶의 기본이다. 그러나 사람 없는 경제는 없다. 생명과 정의와 가치와 신념이 타락한 경제는 그 사회를 밑바닥에서부터 허물어갈 뿐이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행복을 무시했다. 대운하 건설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토목, 건설계의 대기업들 뿐이다. 노동자에게 돌아갈 이익이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등록금 천만 원 시대, 생필품 44개 종목의 물가 인상, 물·전기·가스·철도·의료 민영화 추진, 신공안정국, 영어 몰입교육, 0교시와 우열반, 전 사회를 부패로 물들인 삼성에 대해 면죄부를 준 특검, 친재벌· 친대기업 정책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서민을 위한 경제는 없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예고된 배반, 예견된 파국”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를 기업처럼 불도저 정신으로 운영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도 그 측근들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민심의 분노에 당황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장관에게 고시 발표를 맡겨두고 중국으로 도망쳤으며, 대통령의 손발들도 촛불시위가 6월 항쟁 때처럼 거국적인 시위로 이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정국을 쇄신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국민들의 마음은 이 정부에게서 떠났다.

18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한나라당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쳤다지만 어쨌든 집권당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때까지도 민심은 "좀더 믿어보자" "그래도..."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장의 공포, 당장의 불안, 경제 앞에 나약한 우리의 영혼은 그렇게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부동산을 가진 이들도 자기 이득을 위하여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사람이 투표를 한 게 아니라 아파트, 부동산이 투표를 했다는 말들이 떠돌기도 했다. '강부자(강남땅부자)' '고소영(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출신, 영남 출신) 내각'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으면서도 꿋꿋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무엇이 두려워 중국까지 도망쳤던 것일까.
자신을 대통령으로 탄생시킨 국민들의 애타는 바람을 이명박 정부가 배반했듯이, 국민 역시 자신들이 뽑아놓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떠나기 시작했다. 예고된 배반, 예견된 파국 앞에서 정부는 국정 장악력을 상실하고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나를 잡아가라. 이러한 독재정권, 이러한 불의 앞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다“라고 외쳐대는 시민들이 밤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촛불문화제는 계속될 것이다. 촛불문화제를 불법시위로 규정하며, 처벌 방침을 밝혔다가 몇 번이고 번복을 했던 정부는 아직도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에게 "독재 이명박" "You're Fired" (당신 해고야.) "Out"을 외치는 민심을 읽기 바란다. 오늘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다양한 네티즌들의 의견에 대해 불법여부나 조사하고 캐내는 경찰도 민심을 읽기 바란다.   촛불집회에 배후는 없다. 그동안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했던 촛불소녀들의 분노와 꿈에서부터 시작된 촛불의 불씨는 이제 촛불오빠, 촛불아저씨, 촛불엄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각기 자기들만의 정치적 노선을 갖고 있는 단체가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시위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80년 5월 광주처럼, 87년 6월 항쟁처럼 그렇게 모여서 평화로운 집회를 위해 서로 토론하고 서로 격려하며, 힘내라고 물을 돌리고 사탕과 초코파이를 돌려가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행되는 시민을 보호해주려고, 같이 몸싸움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예비군 옷을 입고 나와 폭력경찰로부터 시민보호활동을 자청한 젊은이들도 환영받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을 격려하며 초코파이를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 ⓒ 전은옥

이 소중한 촛불들의 대오에 '이념'과 '정치'를 덧칠하지 말고, 정부는 어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를 전면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 평화시위를 보장하고 연행자를 전원 석방하라. 폭력경찰에 대해 강력하게 책임을 물으라.

망국적인 대운하 건설 계획도 백지화하라. 이 나라의 미래마저 짓밟는 사교육 정책과 부자들만을 위한 경제도 거두라. 의료 및 수도· 가스 민영화는 꿈도 꾸지 말라. 건강과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아무리 나쁜 부모도 제 자식에게 위험한 음식을 먹이지는 않는다.

정부는 온 나라를 부자들의 안전한 밥상과 못 가진 들의 병든 밥상으로 갈라놓았다. 그들이 지금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진화하기 위해 어떤 꿍꿍이를 준비하고 있을까 염려스럽다. 촛불문화제가 이대로 장기화되다가는 이 대통령이 못 견디고 획기적인 결단을 내리거나, 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국민은 이제 현실을 직시하며 어떤 불의 앞에서도 끝내 촛불을 밝혀야 한다. 실제 촛불뿐 아니라 마음의 촛불, 경제성장에 마비되었던 우리 안의 모든 아름다운 촛불을 다시 살려야 한다.

우리의 밥상, 우리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는 것은 이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는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 개개인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지만, 오늘도 광화문 밤거리를 수놓은 촛불 대오는 민주주의의 힘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