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촛불' "관보 게재 연기했지만 이게 끝 아니다"
[2일 촛불문화제] '우중' 촛불문화제 끝났지만 발길 못돌리는 시민들
현장 취재 : 이경태 선대식 기자 / 총괄 : 김종철 기자
사진 : 권우성 유성호 기자
동영상 : 박정호 엄수용 / 방송 총괄 : 김윤상
편집 : 이승훈 기자
▲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문화제가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문화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함성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5신 최종 : 2일 밤 11시 15분]
장대비 속 26번째 촛불시위 막내려... 아쉬운 발걸음들
2일 밤 11시께 스물 여섯번 째 촛불문화제가 끝이 났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도 50여명 정도의 시민들이 서울 시청앞 덕수궁 대한문 앞 횡단보도를 수차례 건너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채 "고시철회" 등을 외쳤다.
40, 50대 직장인들은 <아침이슬>, <터> 등 80년대 민중가요를 부르며 추억에 젖었고, 20대 대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는 <헌법 1조>에 맞춰,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기도 했다.
대학교 3학년인 최수정씨와 피수경씨는 밤 9시가 넘어서야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장소가 어디인지 몰라, 경복궁, 광화문 사거리를 거쳐 시청에 도착했다. 최씨는 "어떻게 하다보니 전경들과 함께 왔다, 사람들이 없는 줄 알고 실망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행진하고 돌아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들이 일하고 참여하느라 힘들텐데 우리 세대가 모르는 80년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피씨는 "지난 주말 촛불 집회에 참여하려 했지만 리포트가 쌓여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밤새 인터넷 방송을 보며 채팅으로 대화를 나눴다"며 "내일도 과제를 빨리 끝내고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현웅(35)씨는 "오늘 비가 엄청 오는데도 30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오늘 고시 관보 게재를 정부가 연기했다고 하는데 질질 끌면 끌수록 사람이 더 모일 것"이라며 정부가 조속히 재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2일 저녁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6차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권우성
▲ 2일 저녁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6차 촛불문화제가 진행되자 경찰이 세종로 네거리에 경찰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봉쇄했다. 도로 바닥에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시위대가 어청수 경찰청장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 권우성
[4신: 2일 밤 9시 40분]
시청앞 광장으로 돌아온 시민들, 정리집회중
촛불문화제 마치고 행진을 시작한 2000여명의 시민들은 광화문 사거리가 막히자 종각을 돌아 명동 숭례문을 거쳐, 밤 9시께 시청앞 광장으로 돌아왔다.
시민들이 행진하는 동안 잠시 비는 그쳤지만, 시청 앞 광장일대에는 다시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민주주의를 살리자" 등을 외치며 평화롭게 행진했다.
시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정리집회에 들어갔다.
강은경(36)씨는 "엊그제와 어제, 새벽까지 남아있는 시민들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강제진압하는 것을 보고 너무 비통하고 억울해서 5살짜리 아들과 함께 나왔다"면서 "나라를 위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촛불을 켠 젊은이들을 독재정권처럼 강제진압하는 것이 대통령이 할일인가, 시민은 21세기인데, 경찰은 20세기, 대통령은 마치 19세기 대통령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현익(서울대 종교학과 06학번)씨는 "서울대 동맹휴업 투표가 오늘 오후까지였는데, 밤 10시까지 연장됐다"면서 "금요일까지 투표율이 28%였는데, 서울대 음대생의 경찰 군화 구타장면이 퍼진후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윤다인(15) 학생은 "오늘 처음 왔는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나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공부보다 여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동훈(37)씨는 "8살, 5살짜리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면서 "오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들어가려고 했지만 두 아이의 아빠로서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여기에 그대로 남았다"고 말했다.
밤 9시50분 현재 시청 앞 광장에는 200여명 정도의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일부 시민들은 "광야에서" 등의 노래를 이어 부르고 있다.
▲ 2일 저녁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촉구 26차 촛불문화제가 진행되자 경찰이 세종로 네거리에 경찰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봉쇄했다. 시민들이 차단된 세종로 네거리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과 촛불을 들고 있다. ⓒ 권우성
[3신 : 2일 저녁 8시 40분]
참가자 2000여명, 우비 입고 우산 쓰고 행진
장대비 속에 '우중 촛불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들은 저녁 8시 20분경 행진을 시작했다. 비가 많이 쏟아졌지만 2000여명(주최측 추산 3000명)이 촛불을 밝혔다.
현재 비는 멈춘 상태다. 이들은 경찰이 3개 차로를 내줘 광화문 사거리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순신 동상 앞에는 전경차로 '차벽'을 세워놓았다.
한편 시민들은 행진에 앞서 자유발언을 진행했다.
윤두리(19·대학교 1년)씨는 "비가 많이 오는 데 끝이 안보일 정도로 많이 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나는 오늘 부끄러워서 나왔다. 엊그제와 어제, 경찰이 많은 사람들을 무력진압했는 데 그곳에 친구도 많이 참석했고, 다친 친구도 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기만 했다. 앞으로 자주 나오겠다. 오늘 내일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어 양아무개(고 3)양은 "경찰의 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친 것을 보고 나 하나쯤 안가도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면서 "많이 부끄럽다"며 흐느꼈다.
이날 시민들은 관보게재가 연기된 소식을 현장에서 듣고는 "우리가 승리했다"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외쳤다.
박선영(25)씨는 지난 31일 밤 청운동사무소 앞의 연행 상황을 전했다. 그는 "90여명의 시민 중 60명이 연행되고 15명이 구로서에 연행됐다"면서 "구로서에 연행된 15명은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은 수갑을 채우고 시민들을 바닥에 눕힌 상태에서 등을 발로 밟고 목덜미를 잡으면서 강제 지문날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마이뉴스>를 통해 유명해진 '가마솥 할아버지' 최석용(72)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을 위한다면서 땅파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며 "정부는 60~70년대 정책을 쓰면 안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말했다.
이날엔 영화배우 김부선씨도 참석했다. 그는 "영화배우들이 왜 나오지 않냐고 묻지만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를 내주더라도 쇠고기는 지켜내자고 결의한 바 있다"면서 "시민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국민의 촛불 행진이 관보 게재 중단을 이끌어 냈다. 만약 이 대통령이 관보 게재를 강행을 한다면 이는 미국편에 서서 국민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야3당은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이 대통령을 국민의 편으로 이끌어야 한다."
▲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문화제가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문화제가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얘들아 미안하구나...이제 우리 어른도 적극 나서련다" [댓글 민심] 1987년 6월 항쟁 당시 '주변인',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 |
하이에나(ksgolf) [2008-06-02 오후 9:18:35] 먹고사니즘에 빠져서 인터넷으로만 상황을 보고 가끔 댓글달고 고작 추천이나 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욕찌거리나 내뱉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집니다. 지난 토요일 늦게까지 일하다가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두아이와 함께 먼저 가 있는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모든 업무 팽개치고 서울광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87년 6월항쟁 당시에 대학교 1학년으로 멋모르고 선배들 쫓아다니면서 가끔 구호나 외치고 짭새에게 잡힐까봐 시위대의 중앙에도 끼이지 못하고 주변에서 어물쩍거리면서 구호나 외치는 그런 '주변인'이었습니다. 대학생 새내기 5월축제때에 독일인이 촬영한 '5월항쟁비디오'를 본다고 전경들이 대학교를 포위하여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신히 보고야 만 '5월항쟁비디오'를 통해서 '지금껏 내가 배웠던 역사의 거짓됨을 알고 느꼈던 그 처절한 배신감'이 나름대로 시위대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게 하였던 원동력이 되었다면 ... 없는 살림에 대학에까지 빚을 내어 보내어준 어머니, 형님들의 '무사히 대학교는 졸업해달라'라는 무언의 부탁(!)으로 4년동안의 등록금을 받는 이른바 'ROTC 4년 장학생'이 되었을 때 '잘하면 대학교는 졸업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는 나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자괴감으로 그나마 시위대에 쭈뼛대기에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써클을 하던 친구에게 들었던 "야 너 프락치라는 소문이 있더라" 말이 저의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그당시에는 대학가에 이른바 소위 알바(!)를 하는 간첩(!)들이 대학내에 있었던 것은 일반화된 현상이었기에 저에 관한 이러한 소문이 얼핏 쉽게 받아들여 졌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소문의 진원지를 추궁한 끝에 그 소문의 발설자를 만나서 대판 싸웠습니다. 그리고 사과를 받기는 하였지만...가슴에 맺힌 그 억울함과 한이 맺힌 것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저는 3학년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ROTC후보생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회민주주의활동에는 관심과 참여를 못하게 되었고, 늘 '마음속에 빚'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군생활을 하던 중 대학교때 학생운동을 하였던 마음씨 착한 현재의 아내를 만나서 '속죄하는 심정'으로 만나서 데이트를 하던 중 사회적약자 및 민주화에 대한 '역사인식'에 대한 공감이 결국 사랑하게 되고 결혼도 하게 되어 두아이를 갖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6년간의 군생활을 끝내고 지난 2002년 노무현대통령선거를 기점으로 지금껏 '속죄하는 심정으로 생활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해왔습니다만, 최근에 들어서 사업체를 차려놓고 마음과 몸이 따로 따로여서 늘 또 한번의 '마음의 빚'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전경으로부터 쓰러진채로 전투화발로 밟히고, 채이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사무실에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정도면 본업인 공부를 하느라고 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20년전에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방패이 찍히고 구둣발에 채이고 연행되어야 하는지..왜 어른들이 잘못한 것으로 인하여 우리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리에 손에 촛불을 들고 "독재타도", "미친소수이반대"를 외치며 물대포를 맞아야 하는지...' 정말로 다시 한번 어른으로서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이시각에도 저는 사무실에 남아서 일을 하다가 서울광장의 현장생중계를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데 장대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벼락이 치는데도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는 당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부끄러움에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예전 87년도에 박종철열사, 이한열열사 등 수많은 열사들이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하셨음에도 우리는 그분들의 고귀한 뜻을 짐짓 망각하고 현실만의 안위를 위해 얼마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다시 한번 죄송스럽습니다. 사실, 이번 미친소수입반대운동과 관련하여 처음에 [이명박대통령 탄핵서명]을 한 것도 고등학생이었고, 촛불시위에 불을 지핀 것도 이른바 '초중고생'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 어른들, 대학생들이 무엇을 하였나요? 이제 우리 어른들이 나서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4.19의거때도 그러하였고, 5.18민중항쟁, 87년 6월항쟁때도 학생들이 나섰고, 나중에 어른들이 일명 '넥타이부대'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동참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고사리손으로 애절하게 장대비를 맞으며 "독재타도"를 외치다가 군화발에 밟히고, 채이고, 방패로 찍히는 부끄러움을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 어른들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보수세력들의 눈가림효과에 눈이 멀어서 투표를 안했거나 이명박을 찍는 오류를 범하여 나타난 결과가 아닙니까? 이제 며칠 후면 87년 6월항쟁의 기념일이 돌아 옵니다. 가급적 마음과 행동으로 적극 나서서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주십시다. "얘들아 정말로 너희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그리고 존경스럽기까지 하구나..또한, 지금 너희들이 행한 민주화에 대한 정당하고 가열찬 활동은 향후 너희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자부심으로 남을 것이고, 너희들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유산이니 부디 힘내자꾸나." |
[2신 : 2일 저녁 7시 50분]
장대비 속에서도 불 밝힌 촛불... 300여명 서울광장에 모여
장대비 속에서도 촛불은 켜졌다.
비는 맹렬히 내리고 있다.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있는 서울광장 잔디밭에는 물구덩이가 여러 곳에 퍼져있다. 하지만 밤 7시10분부터 촛불 문화제는 시작됐다. 시민들은 우비를 걸치거나 우산을 펼쳐든 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이규동(36) 씨는 7살난 딸과 5살난 아들, 그리고 부인과 함께 서울광장에 왔다. 그는 "지난 주말 집회를 인터넷 방송을 통해 봤는 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오늘 교육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있는 교사들과 함께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로서 교육의 시장화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의료보험민영화 등 여러 가지 걱정거리들이 많다"며 "촛불문화제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표 아무개(19. 고등학생)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해서 이렇게 비가 와도 사람이 많이 오는 것"이라며 "어제 경찰이 여자들을 때리는 것을 보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청 근처 회사에 다닌다는 김종철(46)씨는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대책을 말하겠다고 한만큼 고민의 깊이를 더해주고 국민들의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며 우중 집회 참석을 당연시 했다.
그의 양복 바지는 이미 다 젖어 있었다. 그는 "광우병만 아니라 대운하 등 여러 가지 정부의 정책이 국민에게 촛불을 끄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며 "24일 집회를 나왔었는 데 경찰 역시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기본 소양이 없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문화제에서 어린이들이 촛불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1신 : 2일 저녁 7시 5분]
우산 들고, 우비 입고... 100여명 시민들 오늘도 서울광장에
2일 오후 6시 25분. 서울시청 광장에는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둥까지 치고 있다. 그러나 이미 1시간 전부터 시청광장에 모여든 1백여명의 시민들은 우산을 펼친 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시민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쪽으로 우비 200개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유대수(28)씨는 1주일 전에 강남서로 연행된 이틀 후부터 계속 서울광장에서 지내고 있다. 유씨는 "비가 오더라도 행전안전부 장관에 의해 고시가 관보에 올라가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빠질 수 없다"며 "오늘 시민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덕수궁 맞은편에서 "고시철회·협상무효"라고 적힌 손팻말을 나눠주고 있던 고등학교 2학년인 김아무개양은 "경찰이 시민들을 폭행하는 동영상을 보니 안 나올 수 없어 학교가 끝나자 마자 왔다"고 말했다.
지금 서울광장에는 우비를 입은 이들이 26번째 촛불문화제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연일 밤샘 가두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책회의는 매일 촛불문화제를 개최하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백일을 맞는 3일과 5일, 7일 잇따라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특히 오는 10일 '6.10항쟁' 21주년을 맞아 사상 최대 규모의 '100만 촛불문화제'를 연다.
민주노총은 오는 3일 미국산 쇠고기 출하 저지 투쟁을 시작한다. 민주노총은 3일 오전 9시 부산감만부두, 인천영종도계류장, 경기지역 12개 냉동창고에서 저지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기자 단상] 촛불문화제 취재 현장으로 떠나며 |
2일 오후 4시 <오마이뉴스>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약간 떨리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오늘 저녁에도 촛불문화제가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가는지 기자에게 묻고 전화를 끊었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사거리와 효자동, 동십자각, 청운동에 모인 시민들은 "고시철회·협상무효"를 외치며 청와대로 나아갔다. 경찰은 밀려오는 촛불파도를 끄기 위해 물대포를 쐈고,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다. 군화 신은 발로 시위대의 머리를 걷어찼고 소형 소화기를 시위대의 얼굴에 뿌려댔다. 그러나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혹여나 대열에서 떨어져 나온 전경을 껴안아 다시 경찰에게 되돌려줬다. 이미 물대포를 맞은 누군가의 고막이 찢어져버렸고, 누군가는 반실명 상태에 빠졌지만, 방패를 맞은 누군가는 코뼈가 내려앉았고 진압봉에 가격 당한 이마는 계란 크기 만큼이나 부어올랐지만 시민들은 '앙갚음'하지 않았다. 모두 무엇을 바꿔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경찰의 고압적인 태도에도 그들은 횡단보도를 오가며 '합법적'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라고 외쳤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 몇 명을 교체한다고 해서 지금의 국민의 분노를 풀 수 없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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