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저는 1일 전경 방패에 코뼈가 부러졌습니다

왜 그날 세종로에 갔나..."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보여줄 것"

등록|2008.06.04 16:53 수정|2008.06.04 16:53
저는 유럽 환경규제와 국제수출통제를 연구하는 35세의 일개 연구원입니다. 나름대로 이 분야에 촉망받는 젊은 학도이기도 합니다.  아직 제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지만, 한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소시민입니다. 잘못된 일에 할말은 하고 살려고 하지만, 때론 모른척하기도 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간혹 내가 속한 조직내에서 도저히 잘못을 바꿀 수 없다면,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들 제 손해라고들 했지만, 이제와서 후회는 없었습니다.

얼마전에는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에 올린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의 글 때문에, 해당 부처로부터 "해명할테니 들어오라"는 전화도 받았습니다. 글의 내용은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위한 규제개선 노력은 이해하지만, 연구검토도 없이 일방적으로 "32개에서 10개로 줄이겠다"라는 식의 숫자 줄이기식으로 강행하는 것은 없애서는 안될 필수 룰(예: 전략물자관리대상)까지 없애는 결과가 되어 결국 그 불이익은 기업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것에 노발대발한다는 얘기도 거슬렸지만, 때문에 그래도 학자의 양심이라 생각하고, "민간인인데 오라가라 하는 게 그렇다"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학문을 하다보면, 때로는 욕먹을 수 있어도 정부에 쓴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껏 울분을 토하며, 문제점을 비판하고 해결책을 주장했습니다. 일개 연구원이지만. 지성인이고 지식인이면 당연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쇠고기 수입문제는 보건 뿐만 아니라 환경 측면에서도 접근가능한 문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환경문제에는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은 유럽의 경우, "불안하면 규제해도 좋다"라는 개념하에 과학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회의 때문입니다.

최근에 도입되어 올해 전세계 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의 경우도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해야 제품을 유럽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매년 200~1000종의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있지만 잠재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조작물질(GMO) 수출입과 관련한 미국과 유럽의 통상분쟁도 과학적 위해성 검증 없이도 규제토록 하는 예방의 원칙에 근거합니다. 요즘 일고 있는 나노(NANO)에 대한 문제도 그렇습니다.

대운하 문제는 제 입장에서는 매우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환경정책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아무리 대기,수질,폐기물 등 여러 분야의 선진 정책을 도입하고 잘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대운하 하나 만들게 되면 그 의미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하를 깍아서 만드는 인공적인 수로로 발생하는 환경영향(environmental effect)을 감쇄시킬만한 훌륭한 환경정책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환경을 희생시켜 얻는 이익이 과연 얼만큼 크겠습니까?

이 대통령은 '신화는 없다'에서 64년 6.3학생운동 당시 "양국간의 민족사적인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있는데 단순한 경제논리로 덮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는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는데, 우리 세대가 잠시 빌려 쓰는 이 땅을 단순한 경제논리로 덮어 버릴 수 있을지요. 대운하가 그렇게 서두를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대운하를 추진한다면, 이 땅의 환경문제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진정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세종로에 나가게 됐나

쇠고기 수입의 문제는 단지 그 하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주전 주말, 경찰이 공권력 투입으로 연행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듣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말과 글이 아니라, 행동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주 주일을 기점으로 주말마다 촛불을 함께 들고, 청와대에서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바라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어제(6월1일) 아프리카 생중계를 틀어놓으며 회사에서 야근하다, 뒤늦게 세종로로 뛰어갔습니다. 계속된 전경들과의 대치 속에, 우리 시민은 끊임없이 "비폭력"을 외쳤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려는 건 전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벽 1시경, 바리케이트를 친 전경버스 사이사이로 전경들이 밀고 나오면서 몸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가능한 충돌은 막아보려고 양측의 이성적인 행동을 호소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 시민과 전경간의 감정섞인 욕설이 오갔습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전경이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순간 "으악"하고 얼굴에 알싸함을 느끼며, 그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누군가 제 몸을 밟고 지나갔고 잠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 방패로 가격당해 피 흘리는 내 모습. 많은 사람들을 분노와 경악으로 들끓게 했던 문제의 사진이다. 나는 4일 내려앉은 코뼈를 세우는 수술을 받기로 돼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곧 추스리고, 엎드려서 (눈이 나빠서) 땅을 더듬으며, 안경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순식간에 계속 제 손에 뜨거운 액체가 쉴새없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이끌려 전경차 바퀴 뒤쪽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강한 프레시 불빛을 느꼈지만, 전 소리조차 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구급차를 불렀고, 전경들 뒤쪽에 있으니 뚫고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쓰러졌고, 제 기억엔 길게 느껴지는 한참의 시간이었지만, 119에 의해 실려 한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옮겨져 십수바늘을 꿰매는 응급처치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친구가 검색해서 찾아준 몇몇 언론사 사진에 찍힌 사진으로 그 상황을 저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4일 코뼈 수술이 예정돼 있습니다. 전경들에게 밟히기는 했지만, 다행히 코가 내려앉은 부상 외에 큰 상처는 없습니다. 물대포에 맞은 어떤 분은 앞을 못 본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저는 안경을 잃었지만, 눈을 맞지도 않았고, 광대뼈나 입을 맞지도 않아 이가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하며,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건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와 후대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 뿐입니다.

아직도 "기말고사 책임져라"라는 학생들 목소리가 귀청을 울립니다. 일을 놓고, 하던 공부를 놓고 시청, 청계천, 광화문으로 나오게 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돌이켜보면 20여년전 서슬퍼런 4.13 호헌조치 앞에서도 국민들은 모였습니다. 당시 국민의 소망은 간절했고, 분노는 뜨거웠습니다. 6.10 항쟁은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습니다.

비록 그때에는 조직적 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했지만,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시민의 높은 주인의식과 세대를 초월하는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비록 훈련된 경찰이 때리면 맞을 수 밖에 없는 맨손의 시민들이지만, 100만명, 1000만명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권을 내놓으라고 외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줬으면 합니다.  눈을 막고 귀를 닫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었겠지만, 국민을 해고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승리, 그리고 국민의 참된 승리가 돌아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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