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웃으며 말했다 "저 조중동기자 아닙니다"

[촛불문화제 참가기] 추적추적 내리는 비, 새벽까지 이어진 '횡단보도 시위'

등록|2008.06.03 11:08 수정|2008.06.03 11:23
그들에게는 '마음 속 빚'이 있다

요즘 들어, 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주어진 소재에 대해 다양한 세월의 파편을 모아가며 글을 써왔던 내가 요즘은 집중적으로 취재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출퇴근을 병행하는 입장에서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밤을 지샌 뒤, 곧장 출근해 미친듯이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가며 일을 해야 하며,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잠이 들었다가 엉뚱한 곳에 내려 당황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니,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든, 참여를 하는 입장에서든 마찬가지다. 촛불문화제와 가두시위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참여'의 입장을 들어보면 그네들의 가슴 속에는 나름의 마음 속 빚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피곤 같은 것은 연행돼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감수못할 일이 아니라는 빚이다. 그리고, 시위현장을 인터넷으로 지켜보면서 느꼈던 '분노'를 잊을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참여든 취재든 공통 분모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유혹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새로운 역사를 일궈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나도 그 어려운 일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밤을 지새가며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누르는 카메라 셔터 하나에, 집으로 돌아와 졸음과 싸워가며 두들기는 키보드 자판 하나하나에 나는 그런 의미를 담고자 노력한다. 먼 훗날, "역사를 외면했다"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다.

비가 와서 '반신반의', 하지만...

2일 비가 왔기 때문에, 시청 앞 광장을 향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과연 사람들이 모일까? 게다가 이틀에 걸쳐 경찰과 엄청난 대치를 치르며 '진압'에 시달린 사람들이다. 비가 오고 있는데도, 그들은 현장에 나올 것인가.

물론, 수는 확실히 평소보다 적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3천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비가 와도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외치는 구호 하나하나에 '힘'이 느껴지더라. 맨 앞에 위치한 취재기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그 열기는 자연스레 전달됐다.

▲ 2일 저녁, 비가 오고 있음에도 가두시위에 나선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 2일 저녁, 비가 오고 있음에도 가두시위에 나선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 빈틈없이 봉쇄된 광화문 사거리 ⓒ 박형준


광화문 사거리는 여전히 굳게 막혔지만, 시위대는 거침없었다. 종각을 돌았고 명동 숭례문을 거쳐 시청앞 광장에 돌아왔다. 곧이어 '종료'가 선언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사리 돌아가지 않는다. 서로 사는 곳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친해지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가 곧 노래와 함께 율동도 나온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곧 '축제'가 벌어졌다. 아리랑을 부르고, 강강수월래를 연출하며 '분노'를 '웃음'으로, 그리고 '축제'로 소화시키고 있었다.

▲ 시청 앞 광장, 아리랑을 부르며 강강수월래를 연출했다. ⓒ 박형준


'웃음'의 열기는 곧 '횡단보도 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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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시위 장면새벽 늦은 시간, 비가 멈추고 있지 않음에도 시위참가자들은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박형준


늦은 시간까지 돌아가지 않는 시민은 족히 200명 가까이는 돼 보였다. 지난 열흘 가까이, 나도 모르게 밤샘시위현장에 잔뼈가 굵어진 나로서는 친숙한 일이다. '비'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그들은 곧장 다시금 뭉쳐간다. 이번에는 '횡단보도'다.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둘로 나뉘어진 시위대는 우산과 우의로 몸을 감싼 가운데에도 절대로 촛불을 끄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큰 소리로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저마다 내일의 일상이 있고, 내일의 시위가 또다시 예고돼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듯 밤을 지새가며 횡단보도를 오가면서 구호를 외친다.

나로서는, 막차 시간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새벽 12시 50분 경에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면서 돌아가는가 싶었던 언론 취재진도 돌아와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갔던 상황이었다. 그 시간까지 그들을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았던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찍든 말든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언론'에 민감해하는 시위대의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분노'를 못이겨 음주를 한 시위참여자가 있었는데, 시위대를 접근거리 내에서 디카로 계속 촬영하는 나를 '프락치', 내지는 '조중동 기자'로 오해한 것 같았다. 내 가슴을 향해 우산을 펼쳤다.

평소 같았으면 화가 날 일이지만, 정말 솔직하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분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비가 오면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고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가슴에 메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보신 다른 참가자들이 그분을 말리셨다. 나 역시 웃으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취재를 하는 중이라고 차근차근 해명했다. 오해는 풀렸고, 그분은 다소 민망한 웃음을 남기며 뒤로 돌아섰다.

▲ 새벽까지 횡단보도 시위에 나선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 새벽까지 횡단보도 시위에 나선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 새벽까지 횡단보도 시위에 나선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성숙한 시위'로 '과잉진압'에 맞서다

이제 시위는 해외언론에도 보도되고 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한 나머지 유력언론, 특히 '조중동'에 대한 강한 불신의 분위기가 널리 퍼지면서 누리꾼들은 시위의 실상을 해외에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BBC와 CNN에서도 한국에서의 촛불문화제와 시위를 보도하고 있다고 한다.

방패찍기·살수차와 물대포·소화기 분사…. 돌멩이 하나 들지 않은 시민들을 '집시법 위반'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이유를 들어 제압하려는 경찰의 수단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열치열'로 대응하고 있지 않았다. 일부 시위참가자가 다소 과열된 움직임을 보이면 즉각적으로 '비폭력'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그리고 '횡단보도 시위'로 밤을 지샌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반응도 주목할만 하다. 신호를 대기하며 횡단보도에 멈춰선 자동차 운전자 중 일부는, 경적 소리로 시위대의 구호에 '호응'해준다. 그리고, 시위대를 생각하며 조용히 따뜻한 음료와 김밥 등의 먹을거리를 놔주고 사라지는 시민들도 있다. 그렇게, 모두들 하나가 돼가고 있었다.

▲ 따뜻한 캔커피 음료와 김밥, 빗속에서도 시위를 멈추지 않는 참가자들을 걱정하며 슬그머니 놓고 가는 시민들이 있었다. ⓒ 박형준


막차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서울역을 향했던 나는 기사분께 여쭤보았다.

"시위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각해 시민들이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언론도 있는데, 운수업을 하시는 입장에서 정말 그렇게 느껴지세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달랐다.

"그건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죠. 서울시내가 광화문만 있답니까? 굳이 혼잡이 싫으면 다른 곳으로 향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요즘 안그래도 '조중동' 보면 무조건 치워버립니다."

뒤를 돌아보았다. 새벽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여전히 촛불을 들고 횡단보도를 오가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외롭지 않다.

▲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 것 같아서, 대화를 나누는 시위참가자분들께 촛불을 하나로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응해주시더라. 이 촛불이 역사를 일궈가고 있다. ⓒ 박형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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