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명박 대통령, CEO가 아닌 머슴이 돼라

[길잃은 MB경제100일 ①] 김상조 교수(한성대,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록|2008.06.04 20:19 수정|2008.06.04 20:19
이명박 대통령이 6월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습니다. '경제 살리기'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벌써부터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오만한 자세 때문에 경제정책은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MB경제' 100일을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3일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되었다. 솔직히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의 성패 여부를 예측하는데 취임 첫 100일은 너무 짧다.

이럴 때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의 본능적 태도임에도, 자꾸만 역술인 흉내를 내면서 성공보다는 실패 쪽으로 점괘를 뽑아보는 것은 왜일까? '김상조 돗자리 깔았다'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으니, 성패 예측의 기준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정책의 내용이 되어야겠으나, 오늘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할 생각은 없다.

출총제와 금산분리 등의 재벌규제 완화, 한미FTA 등의 개방정책 강화, 감세 및 공기업 민영화 등의 작은 정부론, 대운하 건설 등의 토목건설공사 등등은 이미 대선공약으로 제시되었던 것이고 또 지난 100일 동안 바뀐 것도 없다.

따라서 개인적인 호불호 의견이 어떠하든 간에, 이들 경제정책 자체를 '100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칫 '유권자들은 바보다'라고 말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난 100일 동안 분명히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들 경제공약을 구체화하고 집행하는 시스템에 내재한 문제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리더십 및 경제관료들의 경제인식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예감하게 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 이명박 대통령이 2월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취임 100일도 안돼 지지율이 20% 안팎으로 곤두박질쳤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요소 중의 하나가 '시장'이다. 이른바 '평등한 자들 간의 등가(等價)교환'으로 요약되는 시장거래가 경제활동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고대 노예제나 중세 봉건제와 확실히 구별되는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명제는 언제나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시장거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 활동의 많은 부분이 기업 내부에서 이루어지는데, 기업 내부구성원들 간의 관계는 결코 '평등한 자들 간의 등가교환'이 아니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코즈(R.H. Coase)는, 기업은 지시⋅명령에 의한 권위주의적 조직으로서 시장거래의 대체물이라고 설명하였다. 다수의 주체들이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시장거래를 내부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는데, 기업이 바로 이런 의미의 조직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기업(집단)이 경제활동의 핵심주체가 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권위주의적 조직이 평등한 시장거래를 대체하는 정도는 더욱 심화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듯이, 대규모 기업의 권위주의적 조직에 익숙한 사람이다. 스스로 CEO 대통령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한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CEO와 부하직원의 관계와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성공한 CEO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거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든 국민들이 "니가 뭔데? 대통령이면 다야?"라고 외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실패한 대통령으로의 예약 티켓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허쉬만(A.O. Hirshman)에 따르면, '떠나는 것(exit)' 또는 '목소리를 내는 것(voice)'의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이 절을 떠나거나, 자기 마음에 들도록 절을 고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조직문화는 특히나 권위주의적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구성원들이 기업을 떠나기도 어렵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그러한 조건 속에서만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일단 떠나는 전략은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떠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전략밖에 없지 않은가.

더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목소리를 내는 데는 도가 텄다.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87민주화 운동 등 한국의 근현대사는 목소리를 내는 전략의 역사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초중등 학생들까지도 그 방법을 터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청계광장에서 '이명박 OUT'의 목소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 특히 10대 학생들이 이른바 신자유주의 반대 등의 이념적 구호를 외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히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매우 역설적이지만, 성공한 CEO로서의 기억은 빨리 지워야 한다. 국민은 결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부하직원이 아니라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는가? 듣지 않고서 어떻게 소통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듣기 훈련부터 다시 해야 한다.

경제관료들의 시대착오적 경제인식

▲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 거시정책과 관련해 강만수 경제사령탑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CEO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정책의 전문가는 분명 아니다. 대통령은 경제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정책의 입안 및 집행은 결국 경제관료들의 영역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사태 및 국제유가 급등 등으로 인해 대외적 경제환경이 크게 악화된 최근 상황에서 위기징후를 관리하는 안정화정책의 운영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게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 논란을 거치면서 보수진영의 전문가 인력 풀의 한계가 곧바로 확인되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자기 사람만 골라 쓰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지만,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도덕성⋅전문성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지극히 제한적임이 드러났다.

작년 대선 때 진보진영의 위기가 운위되었고, 그 핵심은 진보진영의 정책능력 부족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보수진영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문성은 둘째 치고 도덕성에서조차 신뢰받지 못하는 내각으로 성공을 기대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천수답 국정운영일 것이다.

특히 경제부처의 신뢰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기획재정부는 속된 말로 '10년 전에 멈춘 시계'를 그대로 차고 있는 듯한 낡은 인식의 인사들이 오히려 경제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환율과 재정 등 자기 소관하의 정책수단은 몽땅 단기 경기부양에 쏟아 부으면서, 아울러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에도 끊임없이 인하압력을 넣고 있다.

그 중에서 기획재정부 장⋅차관의 전매특허인 고환율 정책은 대기업에게는 막대한 수출보조금을 준 반면 중소기업에게는 수입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치명적 타격을 안겼고,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인플레 압력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도 경제성장과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서는 물가상승은 일정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더니, 급기야는 구래의 물가지수 관리대책을 꺼내들어 비웃음을 자초하였다.

요즘 경제학자들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성향을 떠나 한결같이 기획재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서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경제와 세계경제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정책은 시장주의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중상주의로 회귀했다.

한편, 새로 출범한 금융위원회도 불안하기는 매 한가지다. 금융정책기능과 금융감독기능을 통합한 전대미문의 괴물 조직을 만들어놓고서, 지난 100일 동안 한 일이라고는 '금융공기업 CEO 갈아치우기'와 '금융감독원 기능 빼앗아오기' 뿐이다.

관치금융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선 어떻게 민간과 시장이 선도하는 금융산업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금융위기를 유발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예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다. 사전적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출총제 폐지를 공언하더니 최근에는 재벌들의 무분별한 공기업 인수 움직임을 우려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심지어 하도급거래 위반 등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도 심각한 위법사항이 확인되기 전에는 조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겠다는 등 자신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해놓고서는, 재벌의 무분별함을 우려하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늘 이 글에서는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이념적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관료시스템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국민은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관료들은 과거 개발독재시절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경제정책인들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조각 수준의 전면 개각 이외에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얼리덕(early duck) 신세를 면하려면

▲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린 5월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 참가자가 '이명박 방빼'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노태우 대통령 이래 우리나라 대통령은 한결같이 최악의 경제환경에서 임기를 시작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경제환경은 좋아질 것 같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경제관료의 시대착오적인 경제인식이 결합되어 경제정책 기조를 무리하게 끌고 간다면, 그 결과는 불문가지이다.

국민들의 제 목소리내기 전략에 봉착함으로써 조기에 식물 대통령이 되거나 아니면 경제위기를 초래한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결국은 대통령 본인의 인식과 경제참모들의 면면부터 바꾸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 외에 탈출구는 없다. 보수적 경제정책에 찬성하는 국민은 있지만, 권위주의와 시대착오까지 용인할 국민은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국민들의 비판 목소리는 정책의 형식적⋅절차적 측면을 넘어 그 내용적⋅이념적 성격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러면 정말 끝이다. 이미 그 조짐이 시작되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