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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이명박 "자성해야 할 점 많다"

재협상 카드는 '시간벌기'?... 인적쇄신 폭과 시기 고심 중

등록|2008.06.03 17:08 수정|2008.06.03 17:08

▲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한승수 총리, 류우익 비서실장과 함께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취임 100일'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의 충격파가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국정 전반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절대 불가능'하다던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 카드를 꺼내든 이명박 대통령은 정국 수습책의 또 다른 핵심인 인적쇄신 대상과 폭을 놓고 막판 고심에 들어갔다.

180도 바뀐 MB "30개월 이상 소 수입않는 게 당연"... 재협상 가능성은? 

이명박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100일을 되돌아보면 오늘 본래 자축을 해야 하는 날이지만, 자성을 해야 할 점이 많다"며 '취임 100일'에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고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민의 눈높이를 우리가 잘 몰랐던 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 뒤, "오늘을 계기로 새롭게 시작하는 심정으로 일해달라"고 국무위원들을 독려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쇠고기 문제와 관련 "이 문제로 인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며 "국민들이 걱정하고 다수의 국민이 원치 않는 한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질 좋고 값싼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 "민간 수입업자들이 수입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소비자가 안 사먹으면 된다"고 했던 입장에서 180도 선회한 것이다.

앞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오전 미국산 쇠고기 고시 연기와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출을 중단해주도록 미국 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또 "미국의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 위생조건의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들끓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급한 불부터 끄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한국측의 재협상 요구에 응할지는 상당히 유동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같은 요청이 시간벌기용 '꼼수'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미국측에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사전에 어떤 물밑 접촉도 없었다고 밝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동관 대변인은 '미국과 사전 교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사전에 조율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이른바 30개월 이상 소의 수입에 대한 적절성 여부는 상당부분 주권적 판단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라며 "다수의 국민이 반대한다면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온당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지만, 국내 상황이 심각하고 한국내 여론이 어떻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만약 이런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쪽에서 충분히 수용할 것이라는, 수용이라기 보다 한국 상황을 이해하고 노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미국의 추가 요청없이 재협상을 마무리 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아니다. 미국에도 의회 있고, 수출업자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진통이 있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조율을 해나가야 하지만 진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 대변인은 정운찬 장관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미국과의 재협상 논의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 대변인은 "최악의 경우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또 "'재협상'이라는 용어는 법적인 문제가 동반되는 것"이라며 "재협상만이 금과옥조도 아닌데, 그것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상 재협상의 효과를 내도록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 미국화 재협상이 아닌 또 다른 '추가 협상'의 형태를 띨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백약이 무효'인데... 이 대통령, 인적쇄신 대상 등 고심 중

정국 수습책의 또 다른 핵심은 내각 및 청와대 비서실의 인적쇄신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가장 고심하고 있는 대목이다. '강부자 내각', '고소영 청와대'의 오명을 떨쳐버리는 효과와 함께 국민들에게 국정 쇄신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청와대 등 여권 안팎에서 거론되어온 인적쇄신의 규모는 장관 두세 명을 날리는 선이었다. 그러나 촛불시위 기세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백약이 무효'인 상황으로 접어들자, 그 정도의 '땜질 처방'으로는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장고에 들어간 이유다.

인적쇄신에 대한 요구는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거세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고위 당정회의에서 "(정부와 청와대에) 잘못한 사람이 있는데 이를 끌고가려 해선 안된다"며 "아깝고 미안하지만 책임지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인적 쇄신 등 의원들의 요구가 100% 관철되도록 하겠다. 그 이후에 정책 쇄신을 이루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특히 여당 일각에서는 장관 2~3명의 경질로는 수습이 불가능한 만큼 내각 수장인 한승수 총리와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포함되는 전면적인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인적쇄신의 시기와 폭을 두고 관측이 분분하다. 시기와 관련해서는 6·4 재보선 직후인 5일에 하자는 의견과 시간을 충분히 갖고 다음주에 하자는 의견 등이 나오고 있다.

인적쇄신 대상에 대해선 여당의 건의에 따라 '중폭의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전면쇄신안'이 힘을 얻고 있다. 거론되는 인사만 적게는 4명, 많게는 7명까지 된다.

내각의 경우 정운천 농림, 김성이 복지부 장관 등 쇠고기 협상에 직접 관여한 인사들과 김도연 교육, 정종환 국토부장관이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는 정책조정과 정무기능의 부재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전면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2일 "언제라도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특히 촛불시위 대응 과정에서 '여대생 군홧발 폭행' 등 과잉진압으로 물의를 일으킨 어청수 경찰청장 교체 불가피론이 힘을 얻고 있다. 쇠고기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원인 중 하나가 경찰의 잇다른 강경 진압이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이동관 대변인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류우익 비서실장을 비롯해 모든 수석 비서관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일괄 사의 표명은 사실이 아니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비서라는 것은 원래 언제든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그만두라면 그만둬야 할 입장이고, 총리의 제청이나 국회 청문 절차를 거치는 각료와는 처지가 다르다"며 "어떻게 보면 비서관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인사쇄신책 발표 시점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오직 인사권자 밖에 모른다. 우리가 짐작해서 얘기할 수 없다"며 손사레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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