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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29) ‘심심’과 ‘무료’

[우리 말에 마음쓰기 331] ‘반드시’ ‘필요’한 것

등록|2008.06.06 09:16 수정|2008.06.06 09:16
ㄱ. ‘반드시’ ‘필요’한 것

.. 이러한 안전장치는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여가 활동과 환상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김성오 옮김-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 93쪽

 “정신적(精神的)ㆍ육체적(肉體的) 건강(健康)을 유지(維持)하기 위(爲)해”처럼 길게 늘여뜨리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튼튼히 지키자면”으로 간추리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여가(餘暇) 활동(活動)’이란 ‘쉬는날을 즐기기’쯤 될는지요.

 ┌ 필요(必要) : 꼭 요구되는 바가 있음
 │   - 필요 물품 /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 요구(要求) : 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함
 │   - 요구 사항 / 요구 조건
 │
 ├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반드시 있어야 한다
 └ …

보기글을 보니, “‘환상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라 해서 ‘필요’가 두 차례 나옵니다. 둘 가운데 하나는 덜어 줄 때가 한결 나을 테지요? 그런데 “반드시 필요한”이라는 대목에서도 ‘반드시’와 ‘필요’가 겹치기가 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세 낱말이 겹치기로 나온 셈이며, 두 글월이 겹치기인 셈입니다.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 봅니다. “이러한 안전장치는 몸과 마음을 지키고자 쉬어 주면서 꿈을 꾸어야 하는 사회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손질해 본 글을 거듭 읽어 봅니다. 뜻이나 느낌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제가 제대로 다듬어 내지 못한 탓이 틀림없이 있을 터이나, 이 글이 처음에 어떻게 쓰였는지 읽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글을 이와 같이 옮겨적었는지 살펴보아야 비로소 말길이 트일 듯합니다.

ㄴ. ‘심심하게’도 다가왔지만 ‘무료’한 적은

.. 바다를 보는 일은 차츰 덤덤해졌고, 가끔 심심하게도 다가왔지만 무료한 적은 없었다 ..  <김종휘-아내와 걸었다>(샨티,2007) 54쪽

심심할 때면 ‘심심하다’고 말합니다. ‘심심하게 다가왔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심심하기도 했지만’처럼은 말하겠지요.

 ┌ 무료(無聊)
 │  (1) 흥미 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함
 │   - 무료를 달래 줄 재미있는 일을 찾다 / 무료를 이기지 못하고 누구를 만난다
 │  (2) 부끄럽고 열없음
 │
 ├ 심심하게도 다가왔지만 무료한 적은
 │→ 심심하게도 다가왔지만 그다지 심심한 적은
 │→ 심심하게도 다가왔지만 썩 지루한 적은
 └ …

보기글에서 ‘무료’를 ‘심심하다’나 ‘지루하다’로 고쳐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듬어 놓고도 어쩐지 말이 안 됩니다. 글쎄, 뭐랄까, 웃긴달까요. 머리만 아프달까요. 이런 생각을 글로 적어 놓으면, 읽는 사람은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여야 할는지, 또 이런 생각조각들을 끄적여 놓아서, 글쓴이 뜻을 어떻게 건네거나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심심하기도 했지만 뜻이 없던 적은
 ├ 심심하기도 했지만 재미가 없던 적은
 └ …

‘심심하다’나 ‘지루하다’를 한자로 옮긴 말이 ‘무료’입니다. 이런 말은 글지식이 있는 이들이 글에나 쓰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보기글을 보노라면, 글지식이 있는 분들이 쓰는 ‘무료’가 제대로 쓰이지 않네요. 알맞는 자리에조차 못 써요.

이 자리에서는 ‘심심하다-지루하다’로 다듬기보다는 ‘뜻이 없다-재미가 없다’로 다듬어 봅니다. 다만, 이렇게 다듬어도 영 내키지 않습니다. 어설픈 말장난을 다듬어 보았자, 겉치레 가득한 글을 손질해 보았자, 흐뭇하거나 즐겁거나 반갑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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