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자

[사진말 (3) 사진에 말을 걸다 11∼15] 사진작가가 되고픈 아이야

등록|2008.06.08 11:10 수정|2008.06.08 11:10

자전거와 자동차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해서 쓰게 된 뒤로, 몇 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금세 찍게 되었습니다. 필름으로도 몇 만 장, 디지털로도 몇 만 장. 어느덧 외장하드를 새로 장만해야 할 만큼 사진이 모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 사진기를 거쳐서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되뇌어 보면서, 나는 얼마나 내가 찍고픈 모습을 찍고 있었는가를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 최종규


[11]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가끔 딴 사람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내가 찍는 사진이 초라하거나 뭔가 좀 모자라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 사진을 흉내내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 사진을 흉내내어 찍고 나면 뭔가 그럴싸한 사진을 얻기는 한다. 그렇지만 내 사진을 얻지는 못한다. 도무지 내가 사진을 왜 찍나, 내가 잡은 사진감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진을 왜 찍으려 하는가? 내 사진이 남이 보기에 초라하면 어떻고 모자라면 어떤가? 나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할 뿐인데 말이다.

나는 멋들어진 사진도, 그럴싸한 사진도, 뭔가 좀 이야기가 있거나 재미난 사진도 못 찍는 사람이다. 그저 헌책방 사진을 찍을 뿐이며, 헌책방을 즐겨 찾아오는 내 자신을 담고 싶을 뿐이며, 헌책방이 흘러온 자취를 있는 그대로 담고 싶을 뿐이다. 큰 곳은 큰 대로, 작은 곳은 작은 대로, 깨끗한 곳은 깨끗한 대로, 낡은 곳은 낡은 대로 찍을 뿐이다. 내 자신을 찾자. 내 사진도 찾자.

엽서 보내기자전거를 타든, 버스나 기차를 타든, 전국 나들이를 할 때면 으레 '내가 거쳐 가는 곳 우체국'에 들러서 190원짜리 우편엽서를 한 장 삽니다. 그러고는 뒤쪽에 손글씨로 "어제 오늘 이러저러하게 움직이며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적은 다음, 그때그때 떠오르는 사람들한테 소식을 띄웁니다. 사진기가 있어서, 엽서를 띄우기 앞서, 내가 무엇을 썼는가를 살짝 남겨 놓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12] 어제도 훌륭한 사진책 하나 만났다 : 어제도 기막히게 훌륭한 사진책을 하나 만났다. 젊어서는 권투선수로, 늙어서는 권투 코치로 일하다가 죽은 사람 이야기를 묶은 사진책인데 어찌나 자연스럽고 수수하게 한 사람 삶을 담아내고 보여주는지, 권투라는 운동이 사람으로서 차마 즐기기 어렵도록 끔찍하다는 이야기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맞은편을 죽도록 두들겨패야 이기는 운동경기이니, 안 끔찍할 수 있으랴). 이 사진책에는 어느 한 가지 일, 이 일이 권투이든 아니든 다른 무엇이든, 자기 온삶을 바쳐서 즐겁게 살아온 할아버지 한 사람이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몸을 부지런히 쓰면서 일하는 아름다움이 담겼다. 사진 한 장에 찍히는 사람 얼과 찍는 사람 넋을 고이 담으면 이런 책 하나 세상에 태어나는구나 싶다.

뜻밖에 얻는 사진우리 동네 한복판을 가로질러서 놓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가 넘는 산업도로’ 문제로 여러 해째 골머리를 앓습니다. 개발업체와 인천시 공무원들은,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진쟁이들이, 또 방송국과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으니, 안쪽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2미터가 넘는 쇠울타리로 둘러쳐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현장에 다가가 사진을 못 찍게 되었는데, 덕분에 공사터 둘레에 있는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리하여 뜻밖에도 공사터를 넓게 둘러보는 사진 한 장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최종규


[13] 사진작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찍는 사진 : 아이가 아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아이는 나중에 사진작가가 되고 싶단다. 그 아이는 동무보고 ‘야, 귀여운 얼굴 한번 해 봐’ 하고 말하며 사진 한 장 찍는다. 어디선가 사진작가들 하는 품새를 보고 따라했을까.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며 사진 찍는 흉내를 냈을까.

자연스럽게 찍기까지는헌책방 나들이는 1992년부터 했고 사진기는 1998년부터 들었습니다. 처음 사진기를 들고 헌책방에 찾아갔을 때는, 어느 헌책방에서고 ‘싫은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당신들이 그동안 ‘사진기 든 기자’한테 겪은 씁쓸한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가슴에 새겨진 이 얄궂은 생채기를 풀고자 여러 해 걸렸고, 이제는 제가 사진기를 들고 뭐를 찍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 주곤 합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저녁참으로 떡을 먹는 모습을 찍다가 이 사진 한 장 얻었습니다. ⓒ 최종규


[14]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으면 : 내가 좋아하는 사람, 믿는 사람, 아끼는 사람, 훌륭한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귀여운 사람, 반가운 사람, 멋진 사람, 좋은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 괜찮은 사람, 우러르는 사람, 즐거운 사람, 재미있는 사람, 나를 가볍게 해 주는 사람, 아늑한 사람, 신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라. 이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담긴 사진은 더없이 빛이 나고 그지없이 놀라우며 대단히 아름답게 찍히리라.

좋은 사람들은좋은 사람들을 찍을 때에는 좋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풍겨 주는 좋은 느낌과 냄새까지 사진에 담깁니다. 애틋하거나 살갑게 헌책방 나들이를 함께 하는 분들을 슬그머니 사진 한 장에 담아 놓고 보면, 이 애틋함이나 살가움이 저한테도 물씬 느껴집니다. 꼭 앞모습으로 찍어야 하지 않더군요. 뒷모습만으로도, 아니 뒷모습이었기에 한결 살갑습니다. ⓒ 최종규


[15]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을 엮으려면 :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을 엮으려면 그야말로 온갖 사진을 골고루 살필 줄 알며, 온갖 갈래 사진을 두루 좋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구나 싶다.

골목길 앵두나무꼭 이름을 알면서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찍어 놓고 나서 사람들한테 여쭈어도 됩니다. 사진으로 찍어 놓았기 때문에, 둘레사람들한테 여쭈며, 이 열매나무가 무슨 나무인가요, 하고 여쭙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