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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랑 오시오! 막걸리 공짜로 드린당께"

전주 단오제, 신명난 놀이와 건강 한 마당

등록|2008.06.09 17:21 수정|2008.06.09 18:28
전주 단오날 풍경 이모저모

ⓒ 김현


▲ 덕진공원에서 열리는 전주 단오제.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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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과 30대 아저씨의 씨름, 누가 이길까요?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랑게요 ⓒ 김현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어머니를 비롯한 젊은 동네 아낙들은 단옷날 팔팔 끓인 창포물을 식혀 머리를 감았다. 까만 창포물로 머리를 듬뿍 적시던 어머니는 "니도 한 번 감아봐라. 버짐 없어지게"하며 내 머리를 창포물 속으로 푸욱 담구며 "이제 니 버짐 같은 건 안 생길껀 게 걱정하지 말그라"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어주었다.

예전 농가에선 음력 5월 5일 수릿날(단오)에 여인네들은 그네를 뛰고, 남정네들은 씨름을 을 했다. 설, 추석, 동지와 함께 우리 민족 4대 명절 중의 하나였던 단오는 여인들의 날이기도 했다.

남원 광한루에서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 사랑을 빠진 날도 단옷날이다. 춘향이의 그네 띄는 모습에 몽룡이 반해 우여곡절 끝에 사랑까지 성취 시켰으니 단오는 남녀 간의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까지 하는 날이다.

▲ 고등학생과 어른의 씨름 장면. ⓒ 김현



그것뿐일까. 단오는 건강의 날이기도 하다. 고려가요인 '동동(動動)'의 5월령을 보면 "오월 오일애 / 아으 수릿날 아침 약은 / 즈믄 핼 장존하샬 / 약이라 받잡노이다 / 아으 동동다리 "이란 구절이 나온다. 수릿날 아침에 먹는 약은 천 년을 건강하게 해줄 약이라는 의미이다. 해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고려의 여인은 하늘의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단옷날에 약을 정성스레 달여 주기도 했다.

이것은 단옷날에 여인들이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에 윤기가 나고 부스럼 같은 것을 방지해 준다고 믿었다. 지금은 하나의 행사로 창포물로 머리 감기를 하고 있지만 칠십 줄의 할머니들은 창포의 효능을 여전히 믿고 있다. 실제로 한방에서도 창포가 항암작용이나 머리를 맑게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창포와 연뿌리 물로 머리 감으면 반들반들혀!"

단오를 맞은 8일, 전주 덕진 공원은 단오 축제로 흥성거렸다. 이번 단오는 42년 만에 '전주 단오'라는 이름을 되찾은 후 처음 열리는 축제인 만큼 시민들의 신명난 놀이가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얼씨구 지화자 좋다! ⓒ 김현



사실 전주 덕진 연못은 축제라는 이름을 걸기 예전부터 단옷날이면 전주 인근 주민들이 몰려와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못가에 가서 물맞이 놀이를 하기도 했다. 단오장이라 하여 창포 뿌리로 비녀를 삼아 머리에 꽂기도 했다. 연못의 물로 손과 발을 씻으며 무병을 기원했다.

사실 단옷날의 물맞이는 우리 몸에서 부정을 쫒는 일종의 세시의례 행위이다. 고려시대 불교의례에서 시작된 물맞이는 속(俗)에서 성(聖)으로 전환하는 정화(淨化)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전주 단오제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물맞이 행사와 건강과 신명이다.

지금도 연못 이곳저곳에서 노소의 아낙들이 발을 씻거나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옷을 무릎까지 걷고 연못의 물을 끼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소박한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 연못에 발을 담그거나, 머리를 감고 있다. 오른쪽 할머니 두 분은 매년 단옷날에 와서 머리를 감고 간다고 한다. ⓒ 김현



"뭐 하시는 거예요?"
"뭐하긴, 보면 몰러? 발 씻고 머리 감는 거지."
"이 물로도 씻으면 좋은가 봐요?"
"이 연못이 옛날부터 창포허고 연뿌랑구가 유명혀. 이 연뿌랑구 있는 물로 머리 감으면 약 된당게."
"물 더럽지 않아요?"
"더럽긴. 봐, 더러운 가. 요렇게 깨끗하자녀. 요즘 사람들은 오염되었다고 안 허는디 참말로 모르고 하는 소리여. 맹물로 머리 행구도 머리가 뻣뻣하지가 안코 반들반들 허당게. 한 번 만져 볼라우?"

머리를 만져보라면서 '젊은이도 한 번 혀봐, 좋응게" 한다.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어르신들 빨랑빨랑 오시랑게요! 막걸리 공짜로 드려요!"

▲ "막걸리가 공짜랑게요. 후딱후딱 와서 드시랑게요." ⓒ 김현



"자~ 자. 어른신들 막걸리가 꽁짜요, 꽁짜. 출출하신 분들 빨랑빨랑 오시랑게요."
"그냥 주는 거여. 돈 받는 거 아니구."
"네~이, 할아버지. 여짝으로 줄을 서세요. 안주도 준비됐응게 마니마니 드세요."
"허허, 오늘 꽁짜 술 한 번 실컷 마시겠구먼."

젊은 대학생 넷이 수레에 항아리 술독 두 개를 올려놓고 구경나온 시민들에게 막걸리를 나눠주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얼굴은 즐거운 표정이 가득하다. 자원봉사자인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막걸리 수발을 들고 있다.

하루에 몇 동(항아리)이나 나가냐니까 여덟 동 정도 나간다고 한다. 종이컵에 막걸리를 받아든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들은 막걸리 한 잔씩 들이키고는 모두 넉넉한 웃음을 놓고 간다. 물론 더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다.

막걸리 옆 분수대에선 국악 한 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그늘진 한쪽에선 윷놀이 한판이 벌어지고, 잔디밭 나무 그늘에선 공연에 앞서 풍물 연습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모처럼 만의 나들이에 신명을 즐기고 있다.

연잎이 푸르른 길을 따라 가면 부채만들기, 장승만들기 같은 행사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한쪽 부스에 길다랗게 줄을 지어 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전북의 보건교사들이 시민들에게 건강 상담과 혈압 및 혈당이나 건강상태를 체크해주고 있다고 한다. 또 청소년들의 비만과 성상담도 하며 여러 가지 자료를 전시해놓고 있다.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뭔가 단오와 어울린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한 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하고 일어서는데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다리건너 저편에선 여성 소리꾼의 춘향가 한 대목이 울려퍼지고 반대편에선 색소폰 소리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며 막 물위로 올라온 푸른 연잎의 물방울처럼 구른다.

"이런 기회에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죠"
전북 보건교사 모임, 시민들 위한 의료 봉사 펼쳐


의료 자원봉사자들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건강에 대한 상담을 하고 웃으며 돌아가실 때 보람있다고 한다. ⓒ 김현

단오제가 열리는 덕진공원을 거닐다 보면 어깨띠를 두른 여성들과 종종 마주친다. 무슨 선거운동 하는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400여 명의 전북의 보건교사들이 시민들에게 건강 상담과 검진을 해준다는 홍보를 하고 다니는 모습이다.

인터뷰는 보건교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금란(55, 서신중, 이하 최) 교사와 도교육청 박선희(47, 이하 박) 교육연구사와 진행됐다.

- 어떻게 해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나요?
최 : "그동안 우리 보건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건강만 책임져 왔어요. 그런데 이젠 학교에만 머물지 말고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 단오제에 맞춰 우리 보건 교사들이 한 번 나서본 거예요."

- 주로 어떤 봉사 활동을 하나요?
박 : "여러 가지 해요. 비만 측정이나 몸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주기도 하고요. 혈압이나 혈당을 측정하여 건강상태를 알려주고 있어요."
최 : "간단한 통증 같은 것은 치료를 해주기도 해요. 혹 이혈(耳血) 요법이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우리 보건 교사들 중에서 이혈요법 전문가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즉석에서 시술을 해주고 있어요."

- 의도는 좋은 것 같은데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박 : "너무 좋아해요.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저희도 기분이 좋아요."

- 하루에 몇 명 정도 찾는지요?
박 : "어제(7일) 1000명 정도 상담하고 건강 체크하고 갔어요. 요즘엔 다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 주 연령대는요?
최 :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 보건 교사들은 몇 명이나 참여하고 있는지요?
최 : "400명이 넘게 참여하고 있어요. 파트별로 시간을 정해서 나와요. 모두 열심히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 건강 상담 외에 무엇을 하는지요?
박 : "청소년들의 비만이나 성상담, 흡연 같은 홍보활동도 하지만 건강 상담이 주가 되지요."

-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자주 하실 생각인지요?
박 : "학교에서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닿는 데로 직장을 벗어나 지역사회에 봉사를 할 생각이예요."
최 : "이젠 학교도 학교 안에서만 머물기보단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야죠. 그리고 요즘은 젊은 교사들이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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