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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잘려진 나무에 새 생명 움터오듯 오소서!

[포토에세이] 생명의 몸부림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등록|2008.06.09 18:22 수정|2008.06.09 18:38

잘려나간 아카시아 나무와 움터오는 새순다시 시작되는 생명, 그 장엄한 모습을 보며 희망을 본다. ⓒ 김민수


구청에서 동네 공원 근처의 절개지를 정리한답시고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 버렸다. 아카시아 나무뿐 아니라 원예종이 아닌 것, 본래부터 그곳에 자리 잡고 자라고 있던 모든 것들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잡초라 불리는 작은 들풀들만 그 난리 속에서도 살아남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 아카시아꽃 가득 피었을 때 그 향기가 얼마나 좋았는데…. 수령을 알 수 없어 내 어릴 적부터 그곳에 있었던 나무일까 애틋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거슬려 민원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일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말끔하게 베어 버렸다.

깨끗하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못하다. 도시인의 눈으로 깨끗하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개지 정도는 그냥 일 년 사시사철 본래 그 곳 주인들이 자라나게 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걸 참지 못하고 밀어버려야 속 시원하고, 뭔가 정리한 듯하고, 일한 듯한가 보다.

그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풀들이 한껏 자라던 곳도 제초기로 말끔하게 베어 버렸다.

새순다시 움튼 생명, 반드시 큰 나무가 되길 소망한다. ⓒ 김민수


마치 독재 시절의 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70년대 유신이 한창일 무렵 경찰은 장발 단속을 하고, 자를 가지고 다니며 치마의 길이를 재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야 겨우 까까머리에서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자를 수 있었고, 그것도 조금만 길면 가위로 깊게 고속도로를 내어 빡빡으로 깎아도 가위가 지나간 자리가 남았다.

획일적인 체제, 독재자의 눈에 만족하면 국민의 삶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던 그런 체제 속에서 이만큼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으니 우리 국민은 참으로 대단하다. 마치 잘라버린 밑동에서 새순이 올라와 큰 나무가 된 것 같다.

1987년 6월의 함성, 내게는 추억의 함성이요, 그리운 함성이지만 다시 그런 일은 없길 바랐다. 그러나 2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마치 잘린 밑동에서 나온 새순이 지난 20년간 잘 자라고 있다가 또다시 일순간에 잘려나간 느낌이다.

촛불민주의 꽃은 다시 부러져 버렸는가? ⓒ 김민수


그러나 다시 희망을 본다. 가진 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촛불 하나하나를 보면 잘려나간 나무 밑동에서 새순을 내는 생명을 보는 듯한 짜릿함과 경외감이 밀려온다.

권력을 쥔 자들은 마치 환경미화라는 명목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옛날을 추억하며, 꽃이 피면 그 향기에 취해 행복해 하는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제 맘대로 나무를 잘라 버린 사람들을 닮았다.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는 무조건 따라오라 하고, 그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들을 불순세력이나 좌파로 몰아부치고, 모든 것을 무지몽매함이라 치부한다.

촛불의 바다, 함성의 바다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 김민수


그러나 작은 불꽃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이 바다를, 이 성난 파도를 누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의 몸부림, 그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나무를 베어 버릴 수 있을지언정 나무 밑동에서, 뿌리째 뽑아 버린다고 해도 나무뿌리에서, 나무뿌리까지 다 뽑아 버린다 해도 남겨둔 씨앗에서 새 생명이 시작될 것이다. 생명, 그것은 자기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로 죽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난 민심의 바다를 아직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잠시 피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꼼수를 핀다. 화해의 몸짓으로 다가오지만 그들의 혀는 그들 속에 있는 말을 함으로(그들은 그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더욱 더 국민들을 자극한다. 국민의 인내심을 테스트라고 하는 것처럼.

생명의 몸부림, 그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지금 켜진 촛불 하나 하나는 포기할 수 없는 생명의 몸부림이다. 생명의 몸부림, 그것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그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만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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