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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식 해법, 고작 이것뿐입니까?

내각·비서진 사퇴 등 청와대 '해법'이 생뚱맞은 이유

등록|2008.06.10 11:32 수정|2008.06.10 11:37

▲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사흘째인 7일 저녁 서울 시청앞 덕수궁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지난해 백기완 선생이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말이 너무 길었지?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져. 왜 그런지 알아? 나이가 들면 당최 이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했던 말을 또 하고 자꾸 중언부언 말이 길어지는 거야."

요즘 이명박 정부의 반응을 보면 백기완 선생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절감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대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지만 진위는 심히 의심스럽다. 덕분에 국민들만 피곤하다. 여전히 거리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 가장 열불이 터지는 사람이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내용 자체가 아예 전달되지 않을 때 치솟아 오르는 짜증을 피할 길이 없다. 국민들은 밤을 세워가며 논리정연하게 반대 이유를 제시했고, 수면시간이 급격히 주는 것을 감수하고 오랜 시간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정부의 반응은? '잘 알겠다'만 되뇔 뿐 뭐가 달라졌는가?

완전히 이해했다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가 '국민 눈높이를 몰랐다'며 짐짓 반성하듯 가장 먼저 내놓은 대책이 '자율규제'다. 항상 '법치'와 '준법'을 강조하는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이란 것이 수출입업자들이 알아서, 그것도 한시적으로 국민건강을 책임지라는 소리다. 30개월령 미만의 내장 등 부속물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재협상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도대체 왜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받는 대가로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재협상은 곤란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면 또 모르겠다. 생뚱맞게 배후 운운이다. 한총련이 배후에서 국민들을 조종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20대 대학생 참여 저조를 질타하는 기사 제목이라도 훑어 봤다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한총련이 정권유지를 위한 만병통치약인가?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일괄사퇴 카드도 생뚱맞다. 비장의 카드라면 촛불시위에 나선 국민들을 좀 움찔거리게라도 해야 할 텐데 실소만 나온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사퇴는 '책임지고 사퇴'가 아니라 '책임 회피하고 사퇴'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정말 모를까? 게다가 재신임은 누가 묻는가? 이명박 대통령 아닌가? 총사퇴 카드는 '쇼'도 못될 공산이 크다. 국민은 '관심 없음'이다. 

동문서답, 유가환급금 제도

이 대통령 생각중?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12일 오전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 서울총회 개막식 행사도중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이제 정부는 민생정책을 제시하면 국면전환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싶다. '유가환급금 제도' 카드를 빼들었다. 7월부터 1년간 총급여 3600만원 이하의 근로소득자와 종합소득금액 2400만원 이하의 자영업자의 경우 연 24만원을 소득세 환급으로 돌려준단다.

그런데 국민 반응은 싸늘하다. 돈 주겠다는데 싫은 사람 있나? 국민들 사이에선 각각 3600만원 미만을 버는 맞벌이 부부는 48만원을 벌 수 있지만, 홀로 돈을 벌면서 부양가족이 많은 저소득층은 24만원 밖에 돌려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탈세로 연 소득을 낮춘 자영업자가 정직한 자영업자보다 환급금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85% 수준으로 맞추기로 한 법 먼저 준수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유가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화물운송관련 노동자들은 이번 정부대책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며 격앙되어 있다.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유가가 인상된 상황에서 추가 인상분의 50%만 부담해줘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대책에서 제외된 건설기계차량 노동자들의 경우 예정된 총파업으로 달려가고 있다. 

정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고유가 시대의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출혈을 감수했지만 냉랭한 반응뿐이다. 왜 그럴까? 이미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어차피 국민들의 세금으로 모아진 10조 5천억원이라는 돈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주는 시혜적 정책으로는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촛불 국면의 핵심을 회피한 채,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술수라는 냉소만 강화될 뿐이다.

이런 정치공황 상태를 그대로 놔둘 텐가?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국민의 짜증만 불러내고 있는 현 식물정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당연히 쇠고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내놓는 것이 먼저다. 촛불을 든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만 모르고 있으니 국민의 답답함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핵심은 내버려 둔 채 언론사 장악을 기도하고,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은근슬쩍 실행하고 있으며, 각종 민영화 정책도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차근차근 진행시키고 있다. 충돌이 예상됨에도 촛불시위에 맞불을 놓으려는 보수단체의 시청 시위를 좌시하고 있는 것은 '공권력도 민영화하려는 것이냐'는 냉소가 나오기에 충분하다.

지금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은 시혜성 유가환급대책이 아니라 쇠고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다.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정책도 차근차근 나왔어야 했다.

신제품의 하자를 발견한 소비자가 끊임없이 A/S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수리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환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CEO형 대통령은 여기에 뭐라고 답하겠는가? 소비자가 무식해서라고? 그런 회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그 회사가 '독점'이라는 것이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을 상대하기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에게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벌써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한국 국민의 남다른 인내심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 6월 10일, 도심에 모인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친북좌파 언론을 못 믿겠다면 변장하고 잠행이라도 하라.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라는 물음에 "그러게요. 날씨가 참 좋아요"라고 하는 이명박식 정치에 국민 인내심이 완전 소진되기 전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스트플랫폼(www.eplatform.or.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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