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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어줘서 고마워”

아내의 ‘음식 만들기’ 통해 어머니를 추억하다

등록|2008.06.10 15:33 수정|2008.06.10 15:33
모처럼 아내가 일찍 퇴근했다. 그동안 낮에 일하고 밤엔 공부하러 가느라 보통 밤 10시 가까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아내였다. 작년에 야간대학을 졸업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아내는 요즘 ‘간호조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간호 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 아들이 엄마와 누나가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다. ⓒ 송상호

“오늘 일찍 퇴근 했으니 얘들하고 저녁 같이 먹을 수 있겠네.”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평일에는 아이들(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과 나  이렇게 셋만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 저녁 반찬 메뉴는 아침에 아내가 끓여놓고 갔던 김치찌개와 상추쌈이 전부였지만, 모두 궁궐의 진수성찬을 먹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특히 아들아이는 아내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끝내주게 잘 먹었다. 아들아이는 김치와 돼지고기 건더기를 다 건져 먹었는데도 양에 안 찼는지 김치찌개 국물을 밥그릇에 다 부어버리고는 아주 맛있게 말아먹어 버린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야, 아들. 그렇게 맛있니?”
“예. 정말 맛있어요.”
“그래.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아내의 얼굴엔 연신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옛 어른들 말씀에 “자기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기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게 없다”는 말이 아내에게 현실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저녁을 보내고 그 다음 날, 아내가 아침에  이것저것 준비해놓고 간 반찬으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느낌이 새로워졌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반찬은 예사로운 마음으로 만든 반찬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만든 반찬에 대한 아내의 태도는 일관적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만들어 놓은 반찬(각종 찌개와 국, 무침, 쌈 등)이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어떻게 처리 되었느냐를 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내가 맛있게 잘 먹어서 반찬이 남은 게 거의 없으면 아내는 좋아했고, 반찬이 많이 남아 있으면 아내는 속상해 했다. 남은 반찬의 양에 따라 아내 얼굴의 날씨가 달라진다는 것은 남자인 나로선 그 느낌을 정확히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반응하며 좋아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그 느낌과 비슷하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어떤 때는 아이들이 반찬을 잘 먹지 않고 남기면 내가 아이들 몫을 대신해 두 배로 열심히 잘 먹을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편식을 하지 말라고 일러줘도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도 편식이 나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고쳐서 실행하는 것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지 않던가. 그렇다고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그것만큼 아이들에게 고문이 있을까 싶어서 아이들의 성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강요하지 않는 우리 집 가풍이 있기에 간혹 반찬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반찬 중에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아내가 아침에 만들어놓고 간 날은 곤욕을 치르는 날이다. 나라고 해서 싫어하는 반찬이나 잘 먹지 않는 반찬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자면 싱싱하지 않은 생선 반찬(냉동 생선), 명태 국과 찌개, 계속되는 똑같은 메뉴 등이 그렇다. 이런 날은 십중팔구 반찬이 남게 된다. 내가 잘 안 먹으니 아이들도 잘 먹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반찬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녁에 퇴근한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자신이 만든 반찬을 식구들이, 특히 아이들이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일희일비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내 어머니와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싶어 괜히 오늘따라 가슴이 짠해온다.

  비오는 휴일에 온 가족(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 형제 3명)이 집에 있을 때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뭐 맛있는 거 해줄까”라시며 무엇을 못해줘서 안달이셨다. 비오는 날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셨던 ‘부추 전, 파전’등이 지금 내 입에서 살살 녹는 것을 어찌하랴.

  자식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채신 어머니는 시장에서 복숭아 파치(팔다가 흠집 남아 정식 상품이 되지는 않지만, 먹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복숭아)를 한 보따리 사셔서 집에 있는 커다란 솥에 설탕을 넣고 삶아 몇 날 며칠을 두고 먹게 하셨다.

몇 날 며칠 우리 3형제가 먹었던 것이 요즘 말로 말하면 ‘복숭아 통조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때 좀 더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봐라. 우리는 비싼 복숭아 통조림을 날마다 먹는다”라고 말이다.

그런 음식을 해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신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런 예쁜 마음을 닮은 아내가 내 옆에 있어서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세월이 지나가도 아이들 뱃속을 챙겨주는 따스한 엄마의 마음이 여전히 아내를 통해 내 옆에 있기에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왠지 아내가 생각이 나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이 만든 맛있는 반찬 덕분에 점심 잘 먹었소.^^”

답신이 왔다.

“네, 고마워요. 사랑해요.”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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