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대한민국 대하드라마를 온 몸으로 끌어담다
[6·10촛불문화제 참여·취재기 ①] 2008년 대한민국 '현장', 그곳엔 나도 있었다!
▲ 6·10촛불문화제시민들이 걸으면 나도 걷고, 그들이 멈추면 나도 멈추어야 했다. ⓒ 민종원
위풍당당하게 세종로 사거리(일명, 광화문사거리)를 내려다보는 이순신장군 동상 앞은 너무 답답했다. 그리고 황당했다.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가 끝난 후 10일 아침까지 빈 시간이 생기자 경찰 측에서 미리 손을 쓴 게다.
두려움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지를 예상 못한 무지함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이순신 장군은 그 어느 때보다 더워보였고 안쓰러워보였다. 누가 누구를 지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 6·10촛불문화제이순신 동상 앞을 가로막은 컨테이너박스들1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이순신동상 앞을 가로막은 컨테이너박스들, 연단 앞에 모여 선 기자들 ⓒ 민종원
광화문에 도착한 기자는 시간이 좀 넉넉해서 잠시 교보문고에 들르기로 했다. 이미 모여들기 시작한 다른 시민들처럼 기자도 맘이 조금씩 콩닥거렸다. 그런데, 교보문고를 들어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던 기자는 내심 깜짝 놀랐다. 교보문고 안은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낯설다 싶을 만큼 모두들 차분했다. 붐비지도 않았다.
바깥 상황과 비교하여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던 교보문고 안에서 기자는 문득 천장을 쳐다보며 이른바 현 시국을 떠올렸다. 그리고 짐짓 모르는 듯 곱씹어보았다.
'세상이 거꾸로 된 것 같아.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아. 뭣 때문에, 누구 때문이지?'
▲ 6·10촛불문화제교보문고 광화문점.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소보다 넉넉해보였다. ⓒ 민종원
두려움인지 걱정인지 모를 생각을 하던 기자는 머뭇머뭇하다 다시 교보문고 문을 나서서 현장으로 들어가는 새 문으로 다시 들어갔다. 새로 들어간 문은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를 만큼 인파로 가득찰 것이기에 기자는 잔뜩 긴장을 하며 촛불문화제를 기다렸다.
5시 30분경, 이순신 장군을 등지고 연단 설치가 시작되다
▲ 6·10촛불문화제공공운수노동자 총궐기대회가 열리던 무대. ⓒ 민종원
공공운수노동자 총궐기대회 집회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사이, 같은 공간에서 촛불문화제를 이끌 연단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심판' '전면재협상'이라는 두 개의 애드벌룬은 촛불문화제 내내 연단을 장식하며 뜨거운 시민 열기를 그렇게 대신 전해주었다.
▲ 6·10촛불문화제연단에 오른 진행자 및 담당자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애드벌룬에 띄운 두 가지 현수막. "이명박심판""전면재협상" ⓒ 민종원
오연호 대표를 코앞에서 지켜보고도 본 기자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게 내심 재미있었다. 가족 인터뷰 기사로 많은 인기를 얻은 한 시민기자와 대화를 나누다 자칫 시민발언대에 나설 뻔한 아찔한 경우를 빼고 말이다.
'뿔난 여성들의 대행진'을 필두로 거리행진 시위대를 눈에 담다
▲ '한미 쇠고기 수입협정 폐기-재협상'을 촉구하는 교수와 연구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뿔난 여성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뿔을 머리에 단 한 아주머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 민종원
밤 9시 조금 전, 아마 8시 30분 좀 지난 때였던 것 같다. 이순신 장군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던 컨테이너 박스 바리케이드 앞으로 몇몇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두꺼운 스티로폼을 들고서 말이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기자는 서둘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작은 실랑이가 또 벌어졌는데, 만일의 사고 가능성을 막으려는 대책위 측 사람들과 시민들에 의해 결국 무산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밤늦게 결국 컨테이너 앞에 연단이 만들어졌다.
▲ 6·10촛불문화제컨테이너박스 바리케이드 설치 중. 저녁 8시 30~40분경 ⓒ 민종원
▲ 6·10촛불문화제컨테이너 박스 앞에 갖다놓고 무대를 설치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후 한밤중에 결국 시도해서 성공하다. ⓒ 민종원
"저기요,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컨테이너 박스 있는 데서 사진 몇 장 찍은 게 있는데 오마이뉴스에서 쓰실 만한 건가 해서요. 컨테이너 박스 앞에 연단 설치하려 한 거 아세요? 거기 누가 가 있나요?"
대답을 기다렸다. 나도 뭔가 다음 대답을 미리 생각하면서. 그런데….
"아 네, 알아요. 있어요."
아, 이런. 있단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거기 있단다.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또 조금 허망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르고 기자는 애써 그 멀고도 먼 길(?)을 굳이 헤치고 왔으니 그 자체가 허무였다. 허무개그 한 편을 그 자리에서 찍은 셈. 나중에 알게 된 건 내 머리 위 어딘가에서 오마이뉴스는 상황파악을 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를 넘겨 집에 도착한 후 확인한 건 현장을 내려다보는 오마이뉴스 방송 카메라였으니까. 허, 나 참.
몰려든 취재진, 누가 누굴 찍는 거야?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다 보니, 누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누가 시민이고 누가 (직업)기자인지, 누가 일반인이고 누가 정부 쪽 사람들인지 헷갈렸다. 안 그래도 다들 조금씩 서로 경계하는 빛도 감돌았다.
연단이 설치된 세종로 사거리에서 기자는 한동안 연단에 선 사회자와 시민들을 관찰했다. 연단 앞으로 서서히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자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어느새 그 넓은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 아무도 함부로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쥐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갈 것만 같았다. 물론 기자도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 6·10촛불문화제가족 프라치스칸 정평창보. '정평창보'는 정의, 평화, 창조질서 그리고 보존을 말한다. 네 낱말을 줄인 말. ⓒ 민종원
언제든 시민기자 신분으로 변신하여 활동하리라 생각하던 기자는 갑자기 몰려든 인파에 순간 당황하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연단 앞에서는 이미 많은 기자들이 늘어서서 수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 기자도 찍었다. 물론 기자가 시민들 틈에 끼어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쪽에서도 그들을 찍었다. 연단 위에 혹은 아래에 늘어선 기자들은 그 자체로 또다른 그림을 연출했고 사진 한 두 장 정도 담을 만한 가치는 있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기자 수는 그만큼 엄청난 시민 수를 가늠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6·10촛불문화제연단 앞에 죽 늘어서서 '전쟁' 중인 기자들. ⓒ 민종원
누가 누굴 찍는지 모를 상황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잠시 후, 기자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시민들 틈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또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자는 곧 다른 곳을 알아봐야만 했다. 어딜 가나 당연히 사람이 많을 텐데도, 이미 다 써버린 건전지를 한쪽에 두고 대신할 새 건전지를 사야했던 기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제일 가까운 곳을 찾았다가 인파에 밀려 그대로 발길을 되돌렸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들 때문에 편의점을 돌고 도는 행동은 몇 번 계속되었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이날 서울은 참 많이 바빴고 기자 역시 괜히 바쁘고 초조했다. 그리고, 초조함이 더할수록 시민의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차라리 이제부턴 집회 당일이 아닌 '다음 날'들을 마음에 그려보는 연습을 하는 게 더욱 나을 듯했다. 물론,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는 기본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정작 문제는 나라가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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