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다네"
[새벽산책-5] 포도밭도 만나고 아침 찬거리장도 보고...
▲ 새벽나팔꽃 활짝 ⓒ 김찬순
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나팔꽃이 활짝 피었다. 새벽에 더욱 꽃을 활짝 피우는 나팔꽃의 기상나팔 소리에 깨 새벽 산책을 나왔다. 미국 속담에 '동이 틀 때의 한때는 하루의 열쇠다'는 말이 있다면, 한국에는 '새벽 바람 사초롱(매우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이란 뜻)'이란 말과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다' 등 새벽에 관한 속담이 있다.
▲ 꽃들도새벽에 활짝 피네. ⓒ 김찬순
▲ 포도밭유월의 꿈이 알알이 영글다. ⓒ 김찬순
새벽길을 산책하며 도심 속 텃밭과 그곳을 가꾸는 농부들을 만나는 때가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순간이다. 매일 지나는 동네 산책길의 텃밭 주인 아저씨는 내가 산책 나오는 새벽 5시보다 일찍 나와서 텃밭을 가꾸고 계신다. 요즘은 해가 일찍 떠서 새벽 5시라도 그리 어둡지 않다.
▲ 아저씨 벌써밭에 나오셨네요 ? ⓒ 김찬순
"아저씨, 오늘도 아침 일찍 나오셨네요?"
"그럼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 법이라네…."
늘 듣는 속담이지만, 실천하는 아저씨의 모습 때문인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텃밭에 나와, 상추과 쑥갓, 콩 밭 등을 가꾸고 계신다. 채소의 어느 것 하나, 시장에서 사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도시생활이다. 아저씨가 새벽 일찍 집에서 가지고 나오신 등지게가 오늘 따라 너무 정겹다. 그리 멀지 않는 옛날 고향에서 등지게도 메고, 똥 지게도 메고 집안 일을 도왔던 시절이 떠오른다.
▲ 등지게 너무 정겹다. ⓒ 김찬순
아침 운동은 뒤로 미루고 나도 상추를 다듬어 드리겠다고 하니, 아저씨가 말씀 하신다.
"손에 흙 묻히는 일이란 아무나 할 것 같아도, 하던 사람이 해야 하는기라…."
"아저씨 상추 좀 사도 되나요?"
"먹을 거면 그냥 몇 뿌리 가져 가시게나."
"아닙니다. 그냥은 절대 안됩니다. 아저씨, 그럼 2천원어치만 파세요."
아저씨는 망설이시다가, 큰 비닐 봉투에 상추 뿐만 아니라 다른 채소까지 가득 채워 주셨다. 나는 지폐를 건네드리기가 너무 미안해서 지폐 한 장 더 드리니, 절대 안된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난 가격만큼 주는 거여. 더도 덜도 준게 아닌거여."
식구가 없어서 이 거 다 가지고 가도 먹을 수 없다고 조금만 주라고 해도 기어이 안된다고 냉장도에 넣어 두고 먹으면 일주일 이상은 아무 걱정이 없다고 고집하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받아 돌아섰다.
▲ 밭에서너무 많이 덤으로 받아 온 상추 ⓒ 김찬순
▲ 보라빛가지꽃 ⓒ 김찬순
세상의 인심이 야박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손에 흙을 묻히고 살아가는 농부들은 마음이 이토록 선량하고 착한 것인가. 나는 너무 감동을 먹었다. 세상에 2천원어치 상추를 이렇게 많이 주는 채소장수는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묵직한 상추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서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 대문 없는,행복을 나누어 주네 ⓒ 김찬순
새벽도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달리하고 있다. 봄의 새벽은 준엄한 정결성보다는 식물성적인 윤기를 간직하고 있다. 말하자면 복숭아꽃이나 오얏꽃 가지 사이로 열리는 새벽은 부드러우면서도 찬란하다. 하지만 여름은 부드러움보다는 시원하게 찬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벽은 식물성적인 그것이기보다는 광물성적인 것으로서 냉혹할 만큼 정결한 광휘와 찬란함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겨울새벽>- '박목월'
▲ 새벽수국 ⓒ 김찬순
도심 속이지만, 아직도 옛날 골목길에는 대문 없는 집이 많다. 대문이 없는 집 마당 안쪽엔 수국도 활짝 피어 있었다. 빈 빨랫줄에 빨래집게들도 고개를 흔들며 인사한다. 손을 좀 씻겠다고, 설거지 소리나는 부엌쪽으로 외치니, 외지의 나그네인줄 아는지, 물은 얼마든지 쓰라고 한다. 정말 이렇게 인심이 좋은 사람이 다 있나. 야박한 도시 생활 도심 속이지만, 옛날 골목길의 인가들은, 우리네 그 옛날 인심 그대로인 것 같다. 나는 그 푸근한 인정에 아침 세수까지 했다. 맑은 우물가에 온 것처럼 마음이 너무 상쾌했다.
▲ 여기서아침 세수도 좀 했습니다. ⓒ 김찬순
새벽의 공기는 투명한 은빛 같다. 안개마저 끼인 도심 속 허름한 골목길에서 출근을 서두는 이웃들이 하나 둘 걸어 나오고, 마을버스도 바삐 지나다닌다. '그래 아저씨 말씀처럼 ,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다….'
▲ 새벽기찻길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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