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광장에서 생각하는 헌법의 의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부처
▲ 6월 10일, 대전역 광장에 모인 시민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장면 ⓒ 국은정
그나마 좁아진 광장 한가운데로 택시 정류장이 가로지르게 되면서부터 대전역 광장은 이제 광장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할 만큼 협소해졌다. ‘광장이 좁아진 현실 앞에 어째서 실존적인 존재인 ‘나’는 가슴이 막막하고 답답해지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생겨난 의문은 점점 더 깊은 시름을 낳기 시작했다.
▲ 6월 6일, 대전역 광장6월 6일, 대전역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 미국산 쇠고기 수업에 반대하는 인터넷 까페 회원인 청소년들이 직접 안무를 짜고 연습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국은정
여기 얼마의 공간이 있다. 공공의 편의를 위해 사용될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그 공간을 분할해야 할 상황이 왔다손 치더라도, 광장의 의미를 퇴색시킬 의도가 아니었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현명하게 공간을 분할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먼저 그 공간을 지혜롭게 활용하지 못한 설계자의 철학 부재가 한탄스럽다. 이것 역시 이 정부가 시인했던 소통의 부족 혹은 부재와 무엇이 다를까.
소통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설계된 대전역 광장은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비좁은 땅이 되었다. 노래비 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흘리고 간 음식 찌꺼기에 혈안이 된 비둘기들은 끊임없이 그 붉은 발가락에 먼지를 묻혀가며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이젠 비둘기에게도 그만큼 날아다닐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대전역 광장은 반쪽짜리다.
▲ 뿔난 아이 자신이 집회에 나온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신이난 아이는 "뿔났다, 뿔났어!" 하는 소리와 함께 촛불로 두 개로 직접 뿔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 국은정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의 촛불을 밝혔다. 그래서 반쪽짜리 광장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환하고 뜨겁다. 이들의 순수성을 의심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배후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고 임영조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갈대에겐 배후가 없다”고. 자꾸만 배후를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의 배후엔 과연 무엇이 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할 뿐, 고유가 시대에 물가상승 앞에서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흔들리는 대다수 시민들에겐 의심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만족시켜줄 만한 배후가 없다. 단지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한 불안과 가슴 속에 꺼지지 않은 양심이 굳이 배후라고 말해야 한다면 또 모를까.
▲ 촛불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촛불을 밝혔다. ⓒ 국은정
양초는 무슨 돈으로 사느냐고 물었는가. 여고생들의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가 모금함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 당신들도 직접 광장에 나와 보시라. 등허리가 90도로 꺾인 할머니의 쌈짓돈이, 수행하는 스님의 바랑에서 나온 지폐가, 군것질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고 주머니에서 꺼낸 어린이들의 용돈 몇 백 원이 모금함에 채워지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 거기 있지 말고, 직접 광장으로 나와 보아라. 아니 그보다 먼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키겠다는 그 약속부터 지켜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서민들의 지갑은 날로 얇아져가도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걱정하는 시민들이 지닌 그 양심의 두께는 여전히 두툼하다.
택시 승강장이 대전역 광장을 가르고, HID가 서울시청 광장을 점거해도 시민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또 다른 광장을 개척하고 지켜낼 것이다. 시민들의 배후를 의심하기 이전에 당신들 가슴 속에서 오래전에 잠든 양심의 배후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지금 반쪽짜리 광장과 반쪽짜리 정부를 온전하게 회복해 가는 건전한 시민 의식을 자신들의 정치 논리로 왜곡하고 호도하기 전에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할 때가 아닌가.
▲ 촛불집회 장면6월 10일 저녁. 대전역 광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대전시민들, 광장은 비좁았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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