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꺼져가는 '출총제', 촛불로 살려내자

[국민의 촛불로 MB의 폭주를 막아라] 폐지 위기에 놓인 출총제

등록|2008.06.13 16:42 수정|2008.06.13 17:46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 사진은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리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서 한줄로 서서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범국민적인 촛불의 파도가 청와대로 넘실대고 있다. 불과 석 달 전, 한국경제의 근본틀을 수정할 듯이 야심차게 발표하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촛불의 파도에 휩쓸려 모든 것이 중단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정책은 바로 '출자총액제한제'의 폐지다. 출자총액제한제는 금산분리 완화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기도 전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기업 규제 완화 차원에서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던 사안이다. 

출자총액제한법이란?

출자총액제한법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1987년 4월에 처음 입안된 법이다. 당시 재벌들은 권력과의 두터운 연계를 토대로 한국경제의 각 분야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일례로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라는 전혀 다른 업종의 계열사가 한데 묶여 있으며 지난날 제일제당, 제일합섬,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자동차 할 것 없이 중공업, 경공업,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확장된 형태의 특이한 구조-재벌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재벌구조는 재벌들이 계열사를 확장할 때 각 계열사 사이 순환출자 형식을 빌어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면서 사업을 확장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순환출자란 A기업이 보유한 자본을 출자하여 B기업을 설립하면, 이후 B기업을 토대로 자금을 출자하여 C기업을 만들고 이를 다시 A기업에 돌려주어 원상복귀되는 형태의, 이를테면 가상의 자본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재벌 계열사들이 이러한 방식의 출자를 감행하게 되면 서류상으로는 각 계열사의 자본금과 대출금이 존재하게 되지만 재벌기업 전체를 본다면 실질소유자금이 부족하여 막대한 잉여가치가 재벌로 흘러들어가게 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우여곡절을 겪은 출자총액제한법

1987년 제정된 출자총액제한법은 당시 재벌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하였던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출총제는 자산총액 4000억원 이상의 대기업에 적용되던 법률로써 순자산 총합의 40%를 출자할 수 없게끔 규정하였다. 그나마 40%라는 고무줄 기준은 1994년 25%로 강화되기는 하였다. 예를 들어 자산총액 1조원의 기업이 있다고 하면 이 기업은 2500억원 이상을 순환출자 할 수 없게끔 규제를 받는 방식이다.
출자총액제한법이 있더라도 재벌의 순환출자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출자총액제한법은 재벌들의 극단적인 순환출자를 규제하여 재벌의 심각한 자금경색과 도산을 예방하고자 하는 차원의 법률에 더 가까웠다. 왜냐하면 재벌 총자산의 40% 이상을 순환출자한다는 것은 재벌이 양적으로만 방만하였지 자본 구성이 극단적으로 취약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정권과 유착된 전형적인 대기업의 횡포였다. 이러한 출총제는 1994년에 가서야 순자산 25% 이상을 금지하는 정도로 일정하게 강화되었다.

출총제는 1994년 개정 이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지되고 말았는데 그것은 김영삼 정권 시절 한국 사회를 강타한 IMF 구제금융 사태 때문이었다. IMF 구제금융 당시 한국 금융기관은 재벌에 대한 무분별한 대출로 상당히 부실해져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해외자본의 적대적 M&A에 의한 매각 가능성이 심각하게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출총제는 해외자본에 의한 계열사 매각이라는 사태를 막기 위해 1998년 2월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IMF를 전후한 상황에서 계열사의 적대적 M&A라는 충격적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외국자본은 개방된 한국주식시장에 진출하여 주식지분을 늘려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부활한 출총제, 그러나 솜방망이

▲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이후 출총제는 1999년 12월 다시 도입되어 논란 끝에 2001년 4월에 시행되었는데 이때에는 자산순위 30대 기업에 한정하여 순자산 25%의 출자를 규제하는 방식이었다. 

출총제의 제한은 이후 급격하게 완화되었다. 출총제가 재시행된 지 1년도 안되는 2002년 1월에 출총제의 적용대상은 순위 30대 기업에서 총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변경되었으며 이 가운데서도 계열사가 5개 이하인 기업집단, 3단계 이상의 출자가 없는 기업집단 등 예외조항이 생겨났다. 총자산에 대한 규제도 2004년 12월에는 5조원에서 6조원으로 상향되었으며 이마저도 2007년 4월에는 10조원으로 상향조정되었다.

그 결과 2007년 말 현재 출자총액제한법의 규제를 받는 기업집단은 7개 대기업의 25개 사에 불과할 정도로 출종제는 약화되었다. 그 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GS, 금호아시아나, 한진, 현대중공업으로 이 가운데 삼성 59개 계열사 가운데 9개 계열사가 출총제의 규제를 받고 있고 현대자동차 36개 계열사 가운데 5개사가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출총제의 규제를 받는 기업들이 순환출자한 자산총액도 2007년 21조 1700억원에 달했는데 이는 2006년 대비 3조 2000억원 가량이 증가한 형태이다.

출총제가 이처럼 단계적으로 약화된 것은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대비하여 경영권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이 집요한 여론작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또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고 있는데 이 경우 총출제의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 외국자본과의 경쟁에서 국내자본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논리를 곁들였다. 그리고 원래 출자총액제한제의 취지는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으로 경영방식이 많이 투명해졌다는 것이 대기업 측의 논리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외국자본에 적대적 M&A 형대로 합병된 재벌의 계열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기업의 지배구조 역시 여전히 재벌총수 일가가 5%에 불과한 자산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 전체를 장악하는 모순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소기업의 몰락을 낳는 출총제 폐지

갈수록 약화되던 출총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완전철폐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규제개혁 철폐의 일환으로 올 상반기 내에 출총제를 폐지할 것을 국무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다. 출총제가 폐지되면 현재 제약을 받고 있는 삼성, 현대, 롯데 등의 계열사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순환출자를 심화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명박 정부의 출총제 폐지는 중소기업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1월 28일 중소기업뉴스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 중소기업의 92%가 반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경제개혁연대도 출총제는 과도기적 규제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출총제 폐지 여부를 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출총제는 재벌그룹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희소식일지 몰라도 재벌의 진출에 희생양이 될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더욱 설 땅이 좁아지는 절망선언인 셈이다.

분명한 점은 재벌그룹들의 성장이 수출경제의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내수경제의 활성화에는 대다수 중소기업에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출총제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

4800만 국민들의 주된 고용회사는 재벌과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으로 중소기업의 활성화와 서민경제, 내수시장의 활력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쉽게 말해 종업원 5만명의 삼성반도체가 제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봐야 4800만 국민을 먹여 살리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출총제의 폐지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낳고 이는 다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으로 종속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중소기업의 하청이 심화되면 그에 고용된 일반 서민들의 업무 여건은 더욱 나빠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의 힘으로 출총제 폐지를 막아야

지금 출총제는 국민들의 촛불함성으로 그나마 18대 국회의 개원이 이뤄지지 않는 덕에 폐지되지 않고 있다. 18대 국회가 열릴 경우 한나라당은 무엇보다도 출총제 폐지를 우선해서 처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 6월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각 정당대표들과 18대 국회의원 160여명을 초청해 만찬행사를 열고 한미FTA 비준과 동의안 조기 처리,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상법상의 경영권 보호조항 등의 요구사항을 이미 주문했다.

출총제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면 MB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실제로는 대다수 중소기업마저도 외면한 '극소수 재벌 프렌들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데, 소수의 규제마저 완전 철폐해달라는 로비를 벌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날로 악화되는 민생경제지표를 외면한 채 삼성, 현대 등의 대기업에 나라경제의 운명을 내맡기려는 것인지, 자생적 중소기업이 하청화되며 발생할 고용여건 악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재벌의 자발적인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믿으라고 변명한다면 국민들이 치켜든 촛불의 파도는 더욱 높아지고 거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곽동기 기자는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