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겨냥한 '정두언의 난' 진압되나
여당 지도부 '징계' 시사하자 정 의원측 '침묵' 모드... 갈등 재연될 수도
▲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좌)과 이상득 의원. ⓒ 유성호
정두언 의원이 12일 측근을 통해 "대통령을 위해 죽으라면 죽겠지만 (인적쇄신 문제는) 끝을 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확전 의사를 내비쳤지만, 오히려 다수 의원들이 정 의원에 비판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까지 정 의원에 대한 징계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운데 정 의원이 당내에서 고립되는 양상마저 띄고 있다.
초선모임 '사태정리' 요청... 홍준표 "해당행위 좌시 않겠다"
고승덕 의원(서울 서초을)이 주도하는 '현장경제연구회'의 12일 모임에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초청돼 참석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정 의원 측이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를 계속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일부 의원들이 홍 원내대표에게 사태를 정리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고 의원은 1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자꾸 내부싸움을 하면 국민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판단해 언론에 입장 표명을 할 생각도 있었다"며 "정두언과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의 생각이 다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석호 의원(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은 "지난 번에 한 번 얘기했으면 됐지, 또 격한 얘기를 꺼내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도 "당내에 언로가 열려 있으니 얼마든지 내부에서 투쟁할 수 있지 않느냐"며 정 의원 측의 '언론 플레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 의원에게 동정적이었던 수도권의 초선 의원들도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서울의 초선 A의원은 "정 의원을 최근 만나 '충정을 이해하지만 자꾸 그러면 대통령만 바보가 된다. 그러지 말라'고 호소했다. 정 의원이 그 자리에서는 '알았다'고 하더니 어제 또 그러더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 의원을 따르는 사람은 김용태 의원을 포함해 2~3명밖에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 의원은 12일 이명박 캠프의 모태가 된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을 만나 이상득 퇴진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이들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국포럼 출신의 후배 의원이 "형이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가 정 의원에게 면박을 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 의원을 만난 백성운 의원(경기 고양일산갑)은 다음날 오전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다, 좀 더 자숙하고 서로 자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당내 분란을 증폭시키는 행위가 계속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남소연
"극히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당내 분란을 증폭시키는 행위는 시기도 뜻도 맞지 않다. 만약 이런 행위가 계속되면 좌시하지 않겠다. 엄격하게 처리하도록 하겠다. 해당 당사자들은 자중을 해야 된다."
홍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상득 의원을 비판하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반성해 봐야 한다"며 "대선에서 승리한 뒤 2인자 행세를 하고 실세 중 실세로 있다가 이제 와서 대통령의 형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인적 쇄신'이라는 명분으로 박영준 비서관을 넘어 이상득 의원과의 정면승부를 벼르던 정 의원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린 셈이다.
A 의원도 "이재오·이방호·정두언 트리오가 공천에 개입해서 친박연대까지 만들어진 것 아니냐?"며 "인적쇄신이라는 큰 명분 뒤에서 그런 식으로 정치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상득 다음주 방일... 당내 갈등 피해 체류 연장할 수도
홍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며칠 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두언 의원을) 징계해야 하지 않냐는 논의가 나왔는데 내가 막았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 의원을 당 윤리위에 회부해 징계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한편으로, 홍 원내대표는 이상득 의원에 대해서도 "앞으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인사 문제를 포함한 시국 해법을 제시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이 의원과 가까운 인물들이 자천타천 청와대 수석 및 장관 후보로 거명되는 것에 대한 경고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자 이 의원도 '잠행'에 들어갔다.
전날까지 당 소속 의원들을 만나 억울함을 호소했던 그가 17일경 일본 부품소재산업의 국내유치를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의원이 다음 주말에 귀국하겠지만 당내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류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의원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정 의원을 지지하는 그룹이 "의원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공론화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의 관계자는 "방미단 '쇠고기 협상' 귀국보고 등 현안들이 있기 때문에 의총을 열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15일쯤 의총 소집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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