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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편인 8살 딸이 정한 '아빠 밥 하는 날'

엄마 힘들다고 아빠 보고 '화목토일' 밥 하라네요

등록|2008.06.13 16:46 수정|2008.06.13 17:30
"에효, 밥하기 힘들다."

오늘(13일) 아침, 아침밥을 하던 우렁각시의 이 한 마디에 내 운명이 바뀌었다.

세수 하고 나오다 이 말 들은 8살 우리 딸, 갑자기 후다닥~ 거실로 뛰어가더니 '보드판' 앞에서 부스럭 부스럭 뭔가를 찾더니, 아빠는 절대 보지 말라며 자기 몸으로 보드판을 가린 채 뭔가를 열심히 쓴다.

"아빠, 이제 봐."

헉! 밥하기 힘들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우리 딸이 쓴 글은?

8살 딸이 정한 '아빠 밥 하는 날'엄마 힘들다고 아빠도 밥 하라고 하네요^^ ⓒ 장희용


즉, 엄마 혼자만 해서 힘든 거니까 이제부터 나랑 나눠서 밥 하라는 소리다.

"딸, 그런데 왜 아빠가 하루 더 많아?"
"엄마는 그동안 많이 했으니까 아빠가 하루 더 하는 건 당연하지."

"대신 아빠는 회사 가서 일하잖아."
"그래도 엄마가 더 힘들어."

딸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데, 바로 이때 이 아빠를 변호해 주는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영원한 나의 아군 5살 아들 녀석이다.

"아빠가 더 힘들어! 아빠는 회사 가서 일해서 돈 벌잖아. 그러니까 더 힘들지. 누나는 그것도 모르냐!"
"아냐, 엄마가 더 힘들어. 엄마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치 엄마?"

"아냐! 아빠가 더 힘들어. 아빠가 돈 벌어서 맛있는 것도 사 주고 그러는 거야. 그치 아빠?"
"그래도 엄마가 더 힘들어."

"아니라니깐! 그럼 넌 앞으로 아빠가 사 주는 것 먹지마."

이때 나의 속 마음은?

'오호~ 잘 한다 울 아덜! 그래 그래, 역시 울 아덜이 최고여. 히히!'

영원한 나의 아군, 울 아덜!요 녀석은 무조건 아빠인 내 편이다.^^ ⓒ 장희용


둘이 옥신각신 아빠와 엄마를 변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보드판으로 뛰어가는 아들. 누나가 보드판에 적은 글씨를 지우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행동만큼이나 잽싼 누나의 행동이 있었으니.

녀석은 보드판 앞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누나에게 붙잡혔고, 3살 위인 누나의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녀석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동생을 힘으로 제압한 딸. 하지만 동생의 차후 돌출행동에 우려를 금치 못했던 녀석은 아예 보드판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 방문을 닫아버렸다.

결국 힘에 밀린 우리(나와 아들)는 2(아빠 아들) : 2(엄마 딸)라는 동률에도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결국 난 주말 쉬는 날에만 하던 밥을 이제는 화요일과 목요일까지 하게 됐다.

우이~ 아덜이 거사가 성공했어야 하는 건데, 정말 아깝다. 아들부터 날 걸 그랬나? 히히.
덧붙이는 글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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