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대의 창
위기의 실체를 진보세력의 '콘텐츠 부족'에서 찾는 담론이 있다. 진보세력이 아무런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한다는 주장이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일은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꿰뚫는 이론적 바탕에서 실천 가능한 정책적 대안을 생산하고, 그 대안을 민중과 공유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2006, 시대의 창)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www.cins.or.kr)을 준비하고 결성한 100인 가운데 초기 준비위원들이 ‘새로운 사회’를 주제로 연 좌담을 생생하게 담은 책이다. 새로운 사회가 철학적 언술에 그치지 않게 인용된 수치를 확인하고 표와 그래프를 만들어 경제, 통일, 정치의 구체적 윤곽을 그린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대세라는 주장이나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지구촌 속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신자유주의와 분단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제시한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결코 잊지 않고 그 현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려는 사유와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들이 공통으로 이룬 결실이다.
경제를 살펴보면 기존 현실을 비판하는 안티테제에 머물지 않으려고 진테제들을 설명한다. 지식기반 경제라는 용어가 최근 널리 쓰이는데 실제로는 노동 주동형 경제를 눈가림한 용어라고 지적하며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안과 정책들을 내놓는다.
정치를 짚어보면 최근 일어나는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현행 대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현재 헌법은 6월 대항쟁으로 만들어졌으나 보수정치인들의 야합이 들어가 있어 민의를 배반하는 국회,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국정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지식과 기술의 발달, 국민의 성숙된 민주적 역량을 모은 신헌법을 주장하며 국민 직접정치를 제안한다.
작년 국내 최초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행된 주민소환권으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이 책은 더 나아가 국민소환권(현행 국회의원을 그만두게 하는 권리. 열린 우리당 총선 공약이었음), 국민발안제(국민이 직접 정책 제안), 시민감사제(시민이 일상에서 관료사회 감시)와 청빈관료제(고급관료는 명예로 하며 공무활동에 대한 기본 수당 이외에는 물질적 혜택을 없게 만드는 제도) 같은 신선한 정책들을 내놓으며 정치 생활과 분리된 현재 삶에 생활정치를 주장한다.
진보의 위기, 그것은 전통적인 진보적 지식인들의 위기일망정 결코 진보를 갈망하는 민중의 위기일 수는 없다. 이 땅에 자살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까닭은 저 북유럽처럼 개개인의 인생관이 염세적이어서가 결코 아니다. 사회 약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나만 기름지게 살면 된다고 믿는 한국 사회를 깊게 톺아보며 바꿔야 하는 이 때, 이 책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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