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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35살의 신입 밴드 '늦봄'

35살, 이제 시작입니다

등록|2008.06.14 17:05 수정|2008.06.14 17:05
서울 홍대 부근의 라이브 클럽 '바다비'. 공연 시작 시간 7시 30분을 조금 넘어서 도착한 난, 서둘러 그래피티가 벽면에 가득한 계단을 내려가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객석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룹 '늦봄'늦봄의 기타리스트 ⓒ 염지환

'아직 공연을 시작 안 했구나', 안도의 숨을 쉴 무렵 턱수염이 가득한 옆집 아저씨같이 생긴 '바다비' 주인이 무대 앞에 나와 공연 순서와 공연 시작을 알렸다. '곰팡이꽃', '쟌', '초이스 엘리엇'의 순서로 진행된 공연은 '88만원 세대'의 자화상을 슬쩍슬쩍 드러내며, 20대의 우울함과 격렬함을 미친소 같이 변해가는 사회에 대한 조소와 함께 연주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서 2% 부족한 뭔가를 느낄 무렵,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평균 나이 35살의 신입 밴드 '늦봄'이 등장했다. 사실, 이들을 신입 밴드나 직장인 밴드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학생과 음악 강사, 교사 등의 직업을 가졌지만, 각자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했고, 때가 됐기에 '늦봄'이라는 이름으로 뭉쳤기 때문이다.

어쨌든, '늦봄'을 응원하기 위해 온 친구들과 가족들로 가득 찼던 객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희의 세 번째 공연에 오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뒤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무대에 서니 굉장히 어색하네요. 앞에 공연하신 분들은 말씀도 잘 하시던데…. 분위기 썰렁한가요? 역시, 말보다는 연주로…. 첫 곡 '오브라디 오브라다' 들려드리겠습니다."

5명의 덩치 큰 남자들이 들어선 무대는 비좁아 보였다. 더구나, 경상도 사투리의 뉘앙스가 섞인 멘트는 무대를 썰렁하면서도 코믹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첫 곡 '오브라디 오브라다'(비틀즈의 곡과 제목만 같은 자작곡)가 흥겹게 연주되자, 객석은 환호를 보내며 이들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그룹 '늦봄'늦봄의 건반 ⓒ 염지환

그룹 '늦봄'늦봄의 베이시스트 ⓒ 염지환

그룹 '늦봄'늦봄의 보컬 ⓒ 염지환

그룹 '늦봄'늦봄의 드러머 ⓒ 염지환

'늦봄'의 음악에서 20대의 신선함이나 정열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30대가 돼서 느끼는 첫 사랑의 그리움과 삶의 따뜻한 기억들이 포크의 선율 속에 담겨 있었다. 20대에 겪었던 공허함과 도시 청년으로서의 절박함이 30대의 완숙하고 정제된 락 사운드를 통해 펼쳐졌다.   공연이 끝나고, '늦봄'의 멤버들은 "연습을 자주 못해 많이 틀렸다"고 아쉬워했지만, 글쎄, 관객인 내가 듣기에는 '열정'만으로도 빛난 무대였다.   그 열정! 온몸으로 삶을 겪고 있는 30대의 억척스러운 열정이 한국의 대중 음악계에 '늦봄'의 짙은 향기를 뿜어내기를 기대한다.  

그룹 '늦봄'35살의 열정 ⓒ 염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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