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온 노란 가사의 스님, 촛불을 들다
"철원에서 남북통일 기원하며 여생 살고파"
▲ 맑게 웃는 모습이 꿈꾸는 소년처럼 행복해 보이는 슈게 스님. 인사동 입구에서. ⓒ 전은옥
"일본은 미국의 지배정책 아래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지난 6월 13일, 14일 양일간 서울시청광장에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슈게 텐신[酒迎 天信] 스님은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열기에 놀랐다며 "스바라시이!"를 연발했다.
"일본에서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50%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나라당도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요. 그런데 2~3개월 사이에 정권반대운동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을 깨끗하게 복원해서 그 다음에도 뭔가 깨끗하게 하지 않을까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원하는 것과 대통령의 계획이 어긋나 버린 겁니다."
▲ 청계천에서 환경문제와 이명박 정부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슈게 스님과 일행. 가운데 황색 가사를 걸친 사람이 슈게 스님이다. ⓒ 전은옥
금강산 다녀오는 길에 맺은 소중한 인연 잊을 수가 없어
일본 산묘법사에서 온 슈게 스님(82)은 지난해 6월 금강산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맺은 인연 때문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희생된 아시아인들에게 사죄와 참회, 화해를 청하는 첫걸음으로 한반도 남쪽 땅을 순례했던 '스톤워크 코리아' 행사의 마지막 일정 때였다.
금강산을 방문하고 다시 남녁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슈게 스님에게 두 명의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저희 할머니와 꼭 닮으셨네요." 고성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스님은 명함을 전해주며 두 여성과 사진촬영도 하였다. 나중에 꼭 연락하라고 당부했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슈게 스님은 자신의 어머니가 오래 전에 조선에 살았던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혹시나 일본에 돌아와 슈게 스님의 아버지와 혼인하기 전에 조선에서 낳은 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슈게 스님은 그때의 인연을 잊지 못하고 꼭 다시 한 번 그 여성들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할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는 아니었을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한다.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품고 한국을 방문한 슈게 스님은 얼굴도, 표정도 꿈꾸는 소년 같았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꿈을 꾸는 맑은 눈동자의 소년.
그러나 슈게 스님은 일본에서 핵무기 반대와 평화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는 일본산묘법사(日本山妙法寺)의 대표적인 스님이다. 그의 스승은 일본산묘법사 종파의 창시자인 니치다츠 후지이(日達藤井)다.
니치다츠 후지이 스님은 1945년 7월 16일 철원에서 미군이 쏜 총에 맞아 금강산에서 치료를 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슈게 스님으로서는 철원과 금강산이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지순례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올해로 여든 둘의 나이를 맞은 슈게 스님은 여생을 철원에서 보내며 큰 스님의 뜻을 이어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자 문제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아 그 문제도 해결지을 겸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햇볕정책은 계속해야 합니다"
▲ 스톤워크 코리아 2007 행사에 참가했을 때의 모습. ⓒ 평화시민연대 제공
슈게 스님은 올해 봄에도 히로시마에서부터 동경 치바현까지 73일 동안 도보순례를 하며 평화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해 평화의 걸음을 내딛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걷는 것은 하늘에서 내게 주신 선물이며 능력”이라면서 앞으로도 평화의 순례는 계속할 뜻을 밝혔다.
촛불문화제에 이틀째 참여하고 있는 슈게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한 것 중에는 햇볕정책을 중지시킨 것도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계속해야 합니다. 민족이 둘로 갈리어서는 안 되니까요.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라며 철원에 가서 다시 한 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빌고 오겠다고 조용히 두 손을 합장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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